코로나19와 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3일간의 이라크 순방을 무사히 마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형제애를 강조하며 이라크에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 외에도 중동, 무슬림, 소수민족을 우리의 ‘형제자매’라고 선언했다.
무기 소리가 잦아들게 하소서!
5일(현지시간)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무스타파 알 카디미 이라크 총리의 환영을 받아 대통령궁에서 바르함 살리흐 이라크 대통령과 만남을 가졌다.
2019년 UAE에서 만나 종교를 빙자한 모든 폭력에 맞설 것을 선언한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는 이날 “내 형제인 교황”에게 메시지를 보내 “그의 역사적이고 용감한 이라크 순방은 모든 이라크인들에게 평화, 연대,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며 그의 순방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를 염원했다.
이날 살리흐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를 빙자한 극단주의적 폭력에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고 이러한 테러 행위를 멈추기 위해서는 종교인들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특히 살리흐 대통령은 “2010년 바그다드 성당 테러 이후 무슬림들이 그리스도교 형제들을 도우려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으며, 이라크 군인들이 바닥에 떨어진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교회로 향하는 모습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을 향한 담화에서 이라크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하나로 묶어주는 아브라함의 땅이라는 점과 ‘진정한 종교의 가르침’이란 대립과 배제가 아닌 평화와 공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교황은 “지난 세기 동안 이라크는 다른 인종, 종교와 더불어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평화로이 공존하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근본주의에 기반한 테러와 종파적 분쟁에 시달려왔다”며 그 중에서도 “몰상식하고 야만적 행위에 죄 없는 피해자이자, 종교를 이유로 박해받고 죽임 당하면서 이들의 정체성 자체와 생존까지 위협받았던 야지디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쿠르드족 방언인 북부쿠르드어(쿠르만지)를 사용하고, 옛 메소포타미아 종교에 기원을 두고 있는 유일신 종교인 야지디교를 믿는 야지디족은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당시 문화동화 정책에 따라 많은 탄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에 IS가 이라크 북부를 공습하여 점령했을 때는 니네베 평원이 위치한 니나와주 신자르 산 근방에 살고 있던 야지디족 인신매매와 인종학살로 1만 명이 무차별적으로 사망하거나 납치를 당하면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야지디족이 피난을 가면서 디아스포라가 발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로지 같은 인류 구성원으로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때만 우리는 진정한 재건 과정을 시작하여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 더 정의롭고 인간적인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라크 당국자들에게 “여러분은 형제애적 연대의 정신을 증진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부패의 상처와 권력남용, 불법과 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와 동시에 정의를 세우고, 정직과 투명성을 기르고 이에 맞춰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국가가) 안정되고 건전한 정치가 발달하여 모든 사람에게, 특히 이 나라의 수 많은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라는 희망을 내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촉구했다.
수많은 파괴 행위와 잔혹함에 대해 용서를 구하러 속죄자로서 이곳에 왔다. 무기 소리가 잦아들게 하소서! 이곳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무기가 널리 퍼지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지역민을 외면하는 외부의 이해관계, 이념적 이해관계가 종식되어 평화의 일꾼들 목소리가 들리게 하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이 기본권을 누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어느 누구도 2등 시민으로 취급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교황은 연설을 마치며 “이라크 가톨릭교회 역시 모두의 친구가 되어 대화를 통해 평화라는 대의에 다른 종교들과 함께 건설적으로 협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주 오래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과 이들의 국가적 헌신은 모든 이에게 끊임없이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 풍요로운 유산이다. 온전하게 권리와 자유, 책임을 누리는 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이 공직 생활에 참여하는 모습은 건전한 종교·인종·문화 다원주의가 나라의 번영과 조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혈 사태는 종교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다
당국자들과의 만남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날 두 번째 일정으로 바그다드 시내에 위치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시리아 가톨릭교회 대성당(Sayidat al-Nejat Cathedral)을 방문했다. 이곳은 2010년 미사 중 알-카에다 관련 단체의 테러로 사제 2명을 포함한 48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의 장소다.
이날 성당에 들어서는 교황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아랍 문화권에서 일종의 환호성으로 쓰이는 ‘자가리트’(zagharit) 소리로 환호했다.
교황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 대성당에서 이라크 교리교사 및 평신도, 수도자와 주교·사제단을 만나 “전쟁을 종용하는 행위, 혐오 태도, 폭력, 유혈 사태는 종교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다”고 못박고 종교인이라면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라크 신자들에게 “꾸준한 기도와 일상 속에서 사도직에 충실함으로서 생겨나는 희망이 좌절이라는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효과적인 백신”이라고 비유했다.
교황은 “지난 세기동안 여러분과 여러분의 동료 시민들은 전쟁과 박해의 결과와 기반시설의 부실함에 맞서 경제적, 개인적 안정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에 나서야했고, 이는 주로 국내실향과 수많은 사람들의 이민으로 이어졌다”며 이렇게 사회가 파편화되는 가운데서도 “여러분 개별교회의 교육 사도직과 자선 사도직은 교회공동체 생활을 비롯해 사회 전체의 생활에도 소중한 자원이 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교황은 칼데아 가톨릭교회, 시리아 가톨릭교회처럼 서로 다른 전례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가톨릭교회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교회들의 모습을 양탄자에 비유해 “이라크에 있는 여러 교회들은 서로 엮여 아주 아름다운 하나의 양탄자를 이루는 형형색색의 실과 같다”고 말했다.
교황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 대성당에서 테러로 사망한 이들에게 “시복 절차가 진행 중에 있다”며 “그들의 죽음은 전쟁을 종용하는 행위, 혐오 태도, 폭력, 유혈 사태는 종교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에게 강력히 상기시켜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