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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땅’ 찾은 최초의 교황, 프란치스코 이라크 순방 2일차, ‘우르’평원 찾고, 이슬람 수니파 최고지도자와 만나 끌로셰 2021-03-10 20: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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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염원했던 종교간 대화는 ‘만남의 문화’를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 평원’을 방문하는 일을 넘어, 이라크인들을 정치적·영적으로 이끄는 이라크 시아파 최고지도자 알리 알시스타니 대아야톨라와 직접 만나는 자리로 이어졌다.


특히 알시스타니 대아야톨라와의 만남은 비록 서로의 대화가 공개되지 않는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순방 앞뒤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처럼 이슬람교와 단순한 종교간 교류를 넘어서 ‘아브라함의 형제’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교황, 알시스타니 대아야톨라에 “위대하고 현명한 하느님의 사람”


▲ (사진출처= < Bagdad Today > 영상 갈무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6일 오전 나자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 일정으로 알시스타니 대아야톨라를 예방했다. 이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은 UAE에 이어 이라크를 순방한 최초의 교황이자, 최초로 양대 이슬람 종파 최고지도자를 만나는 역사를 세웠다.


교황의 이라크 순방 가운데 대아야톨라와의 만남은 이라크 수니파 측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를 반영하듯, 통상 알시스타니는 앉은 채로 방문객을 맞이하지만 이례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서서 직접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발을 벗고 알시스타니의 방에 들어가 소파에 앉았고, 그와 함께 차를 마시며, 통역사와 알시스타니를 보좌하는 그의 아들 모하메드 리다(Mohammed Rida)를 대동한 채로 30분으로 예정되어 있던 시간을 훌쩍 넘어 약 50여 분간 대화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라크 순방을 기획했던 칼데아 가톨릭교회 총대주교 루이 라파엘 1세 사코(Louis Raphaël I Sako) 추기경과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 아유소 기소(Ayuso Guixot) 추기경도 함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알시스타니 대아야톨라의 대화에 관해 교황청은 “상호 존중과 대화를 촉진하여 이라크와 인류 전체의 선에 기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종교 공동체간의 협력과 우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교황청 공보실은 입장문에서 “교황께서는 알시스타니 대아야톨라께 시아파 공동체와 함께 지난 수년간의 폭력과 큰 어려움에 맞서 인간 생명의 신성함과 이라크 국민들의 단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약자와 박해받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것에 감사를 전했다”고 발표했다.


대아야톨라 측도 입장문을 발표하고 교황과의 대화에서 알시스타니가 “종교 지도자와 영적 지도자들은 이 비극을 끝내는데 큰 역할을 해야 하며 특히 강대국들과 같은 당사국들에 지혜와 상식을 우선하여 전쟁의 언어를 없애나가기를 권고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알시스타니 대아야톨라는 강대국들이 “자유와 존엄 가운데 살아갈 사람들의 권리를 희생시켜가며 자기 이익을 우선해서는 안 된다”며 “이라크 그리스도인들 역시 평화로이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일 로마로 돌아가는 기내 기자회견에서 알시스타니 대아야톨라가 “위대하고 현명한 하느님의 사람”이라며 “그가 우리 만남 가운데 매우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만남은 내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주었다”고 강조했다.


우르 평원 종교간 기도회, “평화에는 승자, 패자가 아닌 형제자매가 필요해” 


▲ 이라크 이슬람, 토착 종교 대표들과 나란히 선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출처=Vatican Media)


이슬람 시아파 최고지도자와의 만남에 이어 교황은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여겨지는 우르 평원으로 향했다.


칼데아에 위치한 우르는 수메르 왕국의 옛 수도다. 성서에는 창세기 11장 28절에 아브라함의 계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우르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창세 12, 2)고 약속하고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드러내며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창세 15, 7)라고 말한다. 즉, 아브라함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세 종교에 있어서 우르 평원은 결국 이슬람, 유대교, 그리스도교의 ‘발상지’라고 해도 무방한 셈이다.


▲ 우르 평원의 모습(사진출처=LB2S SNS)


우르 평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 지어진 거대한 신전인 지구라트(ziggurat)가 보존되어 있는 지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날 교황은 이라크 그리스도교·무슬림 지도자들을 비롯해 이라크 소수민족들을 만났다. 특히 우르 평원 종교간 기도예식에는 야지디교와 마찬가지로 만다야교의 ‘교황’으로 불리는 셰이크 사타르, 야지디교의 영적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 셰이크 파루크와 조로아스터교, 카카이교, 바하이교 등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뿌리를 둔 이라크 토착 종교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렇게 아브라함 종교가 한데 모인 종교간 행사에서는 가톨릭교회 성경의 창세기 12장 1-8절이, 이슬람 경전 꾸란 14장 이브라힘(수라) 38-42절이 아랍어로 음송되었다.


교황은 우르 평원에서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비롯한 모든 신앙인들을 향해 “다양한 종교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기 이 집에 모여 함께, ‘인류가 모든 후손에 호의를 베풀고 환대하기를, 인류가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땅위에서 평화 가운데 걸어가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꿈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라고 선언했다.


교황은 수많은 별들이 모두 함께 모여 하늘을 환히 비추는 것처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우리 옆에 있는 형제와 절대로 떨어지지 말 것을 권고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처럼 “인간은 전능하지 않고, 혼자서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자기 자신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며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종교정신”이라고 말했다. 


하느님에 대한 가장 큰 신성모독은 형제를 증오함으로서 그분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이다. 적대심, 극단주의, 폭력은 종교를 배반하는 행위다.


교황은 “테러가 종교를 남용할 때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며 “명확히 오해를 걷어내는 것이 우리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교황은 아브라함이 자기 땅, 집, 가족을 버리고 한 민족의 아버지가 된 것처럼 “우리를 집단 안에 가두어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서 형제를 발견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관계와 애착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남들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종종 찾아온다”며 “우리가 겪고 있는 풍랑 가운데 고립도, 군비 경쟁과 장벽 경쟁도, 돈을 숭배하는 것도, 소비광풍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황은 전쟁, 팬데믹과 같은 전 세계적 재난을 극복하는 길은 “평화의 길”이라며 “평화의 길에서는 특히 풍랑 가운데서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이를 위한 공평과 도움을 담보하는 정의 없이는 평화란 없을 것이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서는, 타인이 우리가 아닌 ‘그들’이 되서는, 서로 대항하는 동맹이 분열을 늘려 누군가와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평화란 없을 것이다.


교황은 “평화에는 승자도, 패자도 아닌 과거의 불통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분쟁에서 일치로 나아가는 형제자매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평화를 추구하려면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별들을 바라볼 용기가 있는 사람, 하느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물리쳐야 할 적이 없다”며 “이런 사람이 물리쳐야 할 유일한 적은 적개심뿐”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서로를 배척하고 대립하게 만드는 적개심이 종교 정신에 어긋나기에 “특히 증오의 도구를 평화의 도구로 탈바꿈하는 것은 모든 신앙인의 책무”라고 말했다.


평화는 ‘체념하지 않는 사랑’


▲ (사진출처=Photo Pool Vatican Press)


6일 저녁 바그다드로 돌아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요셉 칼데아 가톨릭교회 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는 칼데아 가톨릭교회 전례로 봉헌되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 최초로 칼데아식 미사를 봉헌한 교황이 되었다. 이날 미사에는 살리흐 대통령도 자리를 지켰다.


교황은 “보통 더욱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지식과 기회를 얻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밀려난다”며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용인할 수 없는 불평등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불평등을 초래하는 속세에서의 부와 명예와 정반대되는 예수의 ‘참행복’을 실천하려면 “특출난 일을 하거나 우리 능력 이상의 모험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가운데서 증언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증인이 되어야 한다. (일상 가운데) 증언하는 일이야말로 예수의 지혜를 실현하는 길이다. 


교황은 일상 가운데의 작은 실천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참행복의 정신을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1코린 13, 4)에서 찾았다.


이 구절은 “하느님의 인내를 이야기하고 있는 구절”이라며 “역사를 통틀어 인간은 하느님과의 동맹을 계속해서 배신해왔고, 같은 죄에 빠져왔으나 주님께서는 질려서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매번 우리에게 충실하시어 용서하고, 다시 시작하셨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와 같이 “매번 다시 시작하는 인내야 말로 사랑의 제일가는 가치”라며 “사랑은 악에 맞서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은 체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번 순방에 동행한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Pietro Parolin) 추기경은 순방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두 종교지도자간의 만남이 “이라크를 대표해야 할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사이에 형제애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교황의 이라크 순방 가운데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 이라크 교황대사를 지냈던 페르난도 필로니(Fernando Filoni) 추기경 역시 교황과 알시스타니 대아야톨라를 “다리를 만들 준비가 된 두 기둥”이라고 표현하며 이 둘의 만남이 종교간 대화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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