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대축일(2023.9.20.) : 지혜 3,1-9; 로마 8,31-39; 루카 9,23-26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대축일입니다. 조선 시대에 평신도들이 이 땅에 자생적으로 복음 진리를 들여와 세워진 천주교회는 조정과 유림의 박해를 받아, 1791년의 신해박해를 시작으로 1866년의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무려 2만여 명이 치명한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103위의 순교자들은 이 모든 치명자들을 대표하는 신앙 선조들로서, 1984년에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처음에 시작된 이스라엘 땅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비롯해서 로마 제국의 박해에서도 순교자를 배출하였고, 그 후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박해와 순교의 역사는 이어졌는데 아마 박해 없이 복음이 전파된 사례는 없을 것입니다. 이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복음의 씨앗이 되어 후대에 더욱 풍성한 선교적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가까이는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서도 박해를 받았고 순교자를 배출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라마다 민족마다 그 결실에 크고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땅에 복음 진리가 들어와서 신자들이 순교하기까지 다른 민족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적어도 세 가지의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진리를 찾던 구도자들이 선교사의 직접적인 도움이 없이 자생적으로 교회를 창립했다는 점입니다. 간접적으로는 이웃 나라 중국에까지 서양 선교사들이 파견되어 선교 활동을 벌였고, 그 결과로 저술된 한역서학서들이 조선에도 들어올 수 있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가운데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克)은 자연의 하늘이나 추상적인 ‘리’(理)와 ‘기’(氣)의 관념으로만 해석하라고 강요되었던 하늘 ‘천’(天)자를 인격적인 ‘천주’(天主)로 알아보게 함으로써 주자의 성리학 일변도의 경색된 조선의 학풍을 무너뜨리는 방아쇠 효과를 발휘하였습니다. 교회의 시작에 있어서 진리를 추구하는 이 구도의 전통이 서양의 물질문명의 혜택만을 입으려던 다른 민족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었습니다.
둘째는 처음에 양반 선비들로부터 시작된 신앙의 씨앗이 중인과 상민 그리고 천민 등 일반 백성에게 뿌려지자 마치 메마른 들판이 불이 붙듯이 하나의 사회 운동처럼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조상제사금지령으로 인한 박해를 조정으로부터 받게 되자 신앙을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살던 곳을 떠나 전국의 심산유곡으로 흩어져 교우촌을 세우며 신앙을 퍼뜨렸습니다. 그 배경에는 그리스도 신앙의 복음이 전해지기 이전,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하느님 신앙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고려조의 불교와 조선조의 유학의 탄압을 받아 미신(迷信)이나 무속(巫俗)으로 천시되어 왔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드러난 외양이었을 뿐 이 땅에 살던 백성의 마음속에는 하느님 신앙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그리스도 신앙의 복음 진리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들이게 했고, 게다가 무수한 귀신들의 존재를 천주님께 대한 신앙으로 분별하는 지혜까지 발휘하게 했습니다. 이른바 영적인 위계질서의 식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막연한 종교심이 정확한 신앙심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이렇듯 교회가 뿌리 내리는 데 있어서, 모래알 같이 부서지기 쉬운 개인들 각자의 신앙이 아니라 단단한 찰흙처럼 오랜 종교전통과 공동체가 뒷받침된 신앙이었기 때문에 순교 행위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셋째는 이렇게 교우촌에서 복음을 살면서 기도하고 협동하는 교우촌의 질서가 교회의 맥이요 뿌리가 됨에 따라서 순교자들도 용감하게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했지만, 박해가 종식된 후에도 이 순교의 영성을 본받고 계승하려는 후대의 신앙인들에 의해 천주교회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교우촌이라는 신앙 공동체의 전통이 약했던 다른 나라나 민족들과 다른 점입니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앙이 깨우쳐준 진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순교자들은, 박해로 인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내세에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철썩같은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고, 언젠가는 신앙의 자유 속에서 현세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세울 수 있으리라는 강한 희망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이들의 순교는 이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심을 증거한 고귀한 행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박해를 받거나 치명할 걱정 없이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기 때문에 세속화된 세상에서 하느님을 마음껏 증거할 수 있는 은총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후대의 교회와 신앙인들이 순교자 성월을 마련하여 해마다 기억하고,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본받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는 한국천주교회가 거의 유일하게 특별합니다. 교회의 열매인 민족 복음화의 과업에 대해서도 기대를 걸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생명이요 부활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영원히 살리라” 하고 약속하신 바 있는데, 이 진리에 따라 살고 죽은 신앙인들, 특히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순교 성인들을 통해서 이 약속을 실감하게 하십니다. 순교 성인들은 그들을 기억하는 우리의 삶과 신앙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박해 백 년, 민족의 고난 백 년이 지나고 이제 민족 복음화 과업을 순교 정신으로 이룩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교회의 시작인 복음의 씨앗이 특별했고, 교회의 뿌리인 교우촌이 우리 교회 성장의 맥이 되어 주었으니, 교회의 열매인 복음화도 풍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 교회 현실에서 대단히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말씀과 성사와 사랑이라는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에 충실한 교우촌을 세우는 일입니다. 말씀에 맛들인 교우들이 서로 통공하는 말씀의 교우촌, 성사적 열망에 가득 찬 교우들이 서로 연대하는 성사적 실천의 교우촌,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사랑의 교우촌을 세웁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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