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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담이라는 아주 낯선 곳을 찾아서
  • 전순란
  • 등록 2015-09-13 13:53:22
  • 수정 2015-09-15 12: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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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2일 토요일, 맑음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이라는 곳이 지도상에 있다는 것은 알아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봉담-비봉’인가 하는 고속도로 표지판이 따로 붙어 있어, 마치 기찻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기차가 밤을 새러 기지창으로 가는 철길처럼 외길이 한 가닥 나 있었다. 언젠가 친구 윤길수 목사를 보러 화성에 갔다가 마치 지구별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별에 착륙한 지구인처럼 이곳저곳을 헤매던 기억이 있다. 경기 남부 온 땅이 논밭은 흔적 없고 아무데나 함부로 지어 올린 공장들로 어디 한 군데 눈 돌릴 곳 없이 삭막하기만 했다는 기억이다.


오늘도 천주의 섭리 수녀회 수녀님들이 전국에서 모여 보스코의 강연을 기다리는 곳을 찾아가는데 마치 착륙지점을 잘못 찾은 우주선처럼 화성(火星)의 둥근 표면을 구르고 구르다 기지국에 우연찮게 당도한 느낌이 들었다.


우이동에서 네비를 치니까 61km, 시속 60km로 달려도 한 시간이면 갈 거리였다. 어느 길로 가면 제일 무난할까? 우리 다섯 형제가운데 일년내내 24시 택배차를 몰면서 길에서 사는 호연에게 물으니 “누나, 어디가 막히는지 가늠을 못하니까 ‘김기사’를 데리고 가는 게 제일 좋아. 경기도는 전천후지만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조금 나을지도 몰라.”란다.


“그래, 김기사, 어디 한번 가 볼까?” 그런데 별로 복잡하지 않은 주말이라 생각했는지 시내 한복판으로 그러니까 경동시장, 성수대교, 순환도로, 과천으로 우리를 끌고 가더니만 거기서부터는 무슨 ‘도시고속화도로’라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얼키설키 이어진 길로 한정 없이 뺑뺑이 돌리는 것이었다. 무려 두 시간 30분 만에, 우리가 늦을세라 발을 동동거리는 관구장 수녀님의 걱정에 간신히 맞추어 10시 25분에 도착했다.





그곳 산자락에는 천주의 섭리 수녀회만 아니고 수원가톨릭대학교, 한국외방선교회, 갓등이왕림성당(한강 이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무려 127년 된 성당이었다!) 등 온통 천주교 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녀회 한국진출 50주년을 내년에 맞아 주로 (본당 아닌) 기관에 근무하는 수녀님과섭리 동반자 섭리 가족회 회원 90여명이 모여서 어제부터 사흘간의 특별교육을 받으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펴시는 사회복음을 듣고자 보스코를 초빙한 자리였다. 본당에 근무하는 수녀님들은 월-화-수 후속 프로그램이에참석한단다. 창설자가 저 유명한 독일 케틀러 주교여서 일찌감치 교회의 사회교리에 눈뜬 수녀회였고, 그래서 보스코도 강연을 하면서 힘을 주고 받았다.





오전 강연 후 점심을 관구장 서아우구스티나 수녀님, 30년 지기 이아가다 수녀님(보스코가 처음 번역한 퀴블러로스 자료 문제로 우이동을 방문했는데 그날이 갓난아기 빵고의 목욕날이어서 아기의 목욕을 도왔노라고 기억을 더듬으신다), 20여 년 전 김병상 신부님을 모시고 지리산을 찾아와 우리랑 천왕봉을 함께 오른 수녀님들과 한 식탁에서 먹으면서 환담을 나누었다.


보스코가 강연을 하는 동안 나는 휴게실에서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었다. 오후 강의가 3시에 끝나고 우이동으로 돌아오던 길에는 ‘김기사’를 해고하고 우리의 평소의 동반자 였던 네비를 재고용했지만 토요일 오훈데도 차량은 여전히 모든 도로에 가득해서 귀가시간도 두 시간 반 걸렸다. 저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만 몰려 있어 다행이지 만일 지리산으로 몰려오면 어떡할까 하는 게 보스코의 엉뚱한 걱정이다.



관구장 서수녀님이 챙겨주신 밤을 김치냉장고에 넣으려다 보니 2kg 들이 밤 봉지가 하나 아직도 남아 있다. 구례 허데레사씨가 작년에 부쳐준 밤이다. 한 개도 안 상하고 싱싱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데레사씨 근황이 궁금해서 전화를 했더니 그니도 남편도 냉장고의 저 밤 봉지보다 안녕하지 못해서 우리의 기도가 절실한 처지였다. 저 밤을 키워 보내느라, 우리에게 철따라 보내주는 쌀 농사짓느라, 늦가을이면 아예 절여서 배추를 보내주느라 내외간에 골병이 들지 않았는지... 세상에 고마운 두 분을 위해 감사와 청원의 기도를 함께 드린다.


저녁 늦게까지 그 밤을 깠다. 이렇게 까서 락앤락에 담아 놓으면 보스코가 그 어려운 집필 작업을 하면서 다람쥐처럼 야금야금 한 개씩, 그것도 어금니로 조금씩조금씩 베어서 먹는다. 밤중에는 시아 시우 두 손주와 스카이프 통화도 했다. 헤어진지 열흘도 안됬는데 "함무이, 언제와요? 빨리 좀 와요." 라는 소릴 들으니 또 보고싶고 너무 반갑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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