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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히다”
  • 최진 기자
  • 등록 2015-12-21 14: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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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들이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꼽았다. 교수신문은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한해를 평가하는 5개의 사자성어 후보를 놓고 대학교수 88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59.2%인 524명이 ‘혼용무도’를 선택했다고 20일 밝혔다. 


혼용무도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으로 나라 전체의 예법과 도의가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상태를 말한다. ‘혼용(昏庸)’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일컫는 말로, 각박해진 사회 분위기의 책임을 지도자에게 묻는 말이다. ‘무도(無道)’는 사람이 걸어야 할 정상적인 궤도가 붕괴한 야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논어(論語)’의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유래했다. 


혼용무도의 표본으로 역사학자들은 중국 진(秦)나라의 두 번째 황제 호해(胡亥)를 든다. 진나라 환관 조고(趙高)는 진시황이 지방순행을 나갔다가 갑자기 병사하자 유서를 조작, 호해를 후계자로 옹립하고 뒤에서 국정을 농단했다. 호해는 조고의 농간에 귀가 멀어 실정과 폭정을 거듭하다가 즉위 4년 만에 반란군의 겁박에 자결했고 진나라는 멸망했다.


혼용무도를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교수는 “연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온 나라의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무능함을 보여줬다. 중반에는 여당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며 추천 배경을 설명했다.


혼용무도의 뒤를 이어 2위에는 ‘사시이비(似是而非)’, 3위는 ‘갈택이어(竭澤而漁)’, 4위는 ‘위여누란(危如累卵)’, 5위에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후보에 올랐던 사자성어들은 모두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한국사회를 걱정스러운 상황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지혜로운 지도력이 없음을 개탄했다.


2위를 기록한 ‘사시이비’는 ‘겉은 옳은 것 같으나 속은 다르다’는 뜻이다. 사시이비를 추천한 석길암 금강대 교수는 “최근 정부정책을 보면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거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근거를 왜곡하거나 없는 사실조차 날조해 정당성을 홍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정상화를 부르짖는 정부의 정책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고기를 잡는다’는 뜻의 ‘갈택이어’는 3위에 올랐다. 갈택이어는 목전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세태를 비판하는 뜻이다. 이를 추천한 남기탁 강원대 교수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없애버리려는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당장은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더라도 장기적인 발전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을 빗댔다”며 추천 사유를 밝혔다. 


4위에 오른 ‘위여누란(危如累卵)’은 ‘달걀을 쌓은 것 같이 위태로운 형태’라는 뜻이고, 5위인 ‘각주구검(刻舟求劍)’은 ‘판단력이 둔하여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다’는 의미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교수들의 전공과 세대, 지역을 안배한 추천위원단이 사자성어 22개를 추천한 뒤 교수신문 필진이 5개로 추려, 이를 전국의 교수들에게 설문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후보로 선정된 사자성어 외에도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내려 한다’는 뜻의 ‘건목수생(乾木水生)’과 ‘목이 마르고서야 우물을 판다’는 뜻의 ‘임갈굴정(臨渴掘井)’, ‘소에게 거문고를 탄다’는 뜻의 ‘대우탄금(對牛彈琴)’, ‘멸망한 은나라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뜻의 ‘은감불원(殷鑑不遠) 등 비판적인 사자성어들이 올 한해를 설명하기 위해 추천됐다. 또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묘사하기도 했다.


교수신문은 “이 같은 교수들의 비판적인 시각은 한 해 동안 이어졌던 다양한 사건·사고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며 “정치적으로는 성완종 리스트와 해외 자원개발 비리 등의 여러 의혹이 거듭 제기됐지만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국제적인 경제외교 흐름에 동참하지 못한 채 ‘뒷북외교’를 펼쳤고, 노동법 개정이나 열정페이 논란 등에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며 정부의 올 한해 행적을 평가했다. 2014년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른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선정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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