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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이하니 통신원] 네팔 청년 꺼멀리의 꿈
  • 이하니
  • 등록 2016-01-08 17:50:57
  • 수정 2017-05-30 18: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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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과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햇수로 9년째다. 맨 처음 대안적인 국제개발을 꿈꾸며 한 비영리단체의 활동가로 파견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네팔에서의 ‘오래된 미래’를 꿈꾸며 호기롭게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나는 시간이 갈수록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좌절했고 수많은 의문들로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활동이 결국 함께 하는 아이들,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영향을 미치는지, 그 방향성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스스로 그 답을 찾기 전에는 어떤 일도 다시 시작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이토록 수많은 혼돈의 시간 속에서도 나에게 변함없이 남은 건 바로 ‘사람’이었다. 네팔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은 나에게 스승이자, 친구, 또 가족으로 함께 해주었다. 비록 그 관계 안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 또 받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지금까지 네팔에서의 삶을 계속 고민하고 이어오게 된 것은 바로 이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 하나 귀하고 고맙지 않은 인연이 없겠으나, 그 중에서도 꺼멀리는 나에게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 2008년 ‘베시’라고 하는 카트만두(수도)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처음 만났던 그녀는 내가 활동하던 단체가 지원하던 청년조직의 일원이었다. 당시 우리는 청년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위해 활동할 수 있도록 함께 토론하고, 방법을 모색해 갔다. 청년들은 농사로 바쁜 부모들을 대신하여 동네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길 원했고, 이들의 관심은 방과 후 교실을 시작으로 도서관 운영까지 연결되었다.


▲ 전형적인 도시근교의 농촌 마을인 ‘베시’ 모습 ⓒ 네팔 이하니 통신원

 

▲ 전형적인 도시근교의 농촌 마을인 ‘베시’ 모습 ⓒ 네팔 이하니 통신원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 10대 후반이던 꺼멀리는 어느덧 20대 중반이 되었고, 자원봉사자에서 한국단체의 현지 코디네이터로 성장하며 마을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단순하지만 깊은 힘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내가 산만한 고민들로 괴로워했던 것과는 달리 동네 아이들, 주민들을 만나며 즐거워했고, 때때로 부딪히는 어려움들도 특유의 유쾌한 웃음소리로 날려버릴 수 있는 건강한 청년이었다. 3년 전 결혼을 한 후에도 남편을 설득해 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꺼멀리에게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을 위해 일하는 데에는 어떠한 계산이나 논리적으로 풀어야할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 시원한 청량음료 같은 웃음소리를 가진 꺼멀리. 에너지 넘치는 당찬 여성이다. ⓒ 네팔 이하니 통신원


그렇게 활동해 오던 지난 해, 베시마을 활동을 지원하던 단체의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종료되며 꺼멀리는 갈림길에 섰다. 기존에 했던 활동을 커리어로 삼는다면 일자리는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여전히 마을에서 동네아이들을 위해 활동하기를 원했다. 아이들 역시 도서관이 계속 운영되길 바랐고, 꺼멀리를 찾아와 그들의 바람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어쩌면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우직하게 마을활동을 지속하길 원하는 꺼멀리의 마음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다.


▲ 마을 공립학교 내에 자리 잡았던 이전 도서관 ⓒ 네팔 이하니 통신원


꺼멀리는 예전처럼 아이들이 틈나는 대로 들러 좋은 책을 읽고, 일주일에 한번은 도란도란 모여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길 원한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부모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털어 놓을 수도, 집에서는 물어볼 수 없는 숙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다. 지금 당장은 아이들을 위해 문을 열지만, 천천히 청소년들,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에게도 필요한 정보와 교육을 제공할 수도 있겠단 행복한 상상도 해본다. 그리고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꺼멀리는 자신의 텃밭을 도서관 터로 내어 놓았다.


▲ 꺼멀리 텃밭에 새로운 도서관을 짓기 위해 측량하는 모습 ⓒ 네팔 이하니 통신원


물자가 풍요로운 우리의 눈에 방 한 칸만 한 대나무, 함석판으로 지어진 이 공간이 보잘 것 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곳에서 수많은 가능성들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마을 밖 세상을 자본주의적 이미지로 가득 찬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던 아이들에게 책은 전혀 다른 세계와의 만남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소위 ‘저개발국가’인 네팔에서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실천도 함께 해나갈 계획이다. 


지진 앞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바보 같이 고민만 하던 나에게 꺼멀리의 우직한 의지가 용기를 주었다. 미약해 보이는 시작일지 모르나 외부의 계획과 지원에 따라 언젠가는 끝이 나야만 하는 프로젝트 방식이 아닌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이 활동이 자리 잡기까지 아직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마을에서의 활동이 네팔 사회와 연결되고 나누어질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외부지원 없이도 유지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준비를 함께 해보려고 한다.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의 아이들, 또 더 나아가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접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네팔의 건강한 청년 꺼멀리의 꿈을 응원한다. 그 꿈이 지금은 아주 작은 씨앗의 모습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건강하게 자라나 잎이 무성한 나무가 되어줄 것이라 믿고, 소망한다. 


▲ 꺼멀리 텃발에 작은 도서관을 짓기 위해 시작된 모금 캠페인 사이트.


<꺼멀리의 텃밭에 작은 도서관을 짓기 위해 지난 11월 말부터 시작된 모금 캠페인 사이트를 공유합니다. 지난 한달여 동안 진행된 내용을 담은 영문 업데이트 내용도 전해드릴 계획입니다>


모금 캠페인 사이트 바로가기  http://igg.me/at/Hox1cNZyTBs 



[필진정보]
이하니 : 타문화와의 경계에서 어떻게 하면 더불어 잘 살수 있는지 고민하다보니 8년 째 네팔에 머물고 있는 활동가이다. '꺼멀리의 텃밭에 작은 도서관 짓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 상황과 소식들을 지속적으로 전해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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