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춘권은 왜 테러 이야기를 썼을까? 그는 “테러, 그리고 전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생명도 내 아버지의 목숨만큼이나 소중”한데 그 악순환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벗어나 “정치학자로서 생명의 소중함과 폭력의 무의미함에 대해 얘기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현대사에 숱한 테러가 있었지만 특히 2001년의 9·11테러는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대한 현대 사회의 취약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세계 군비의 거의 절반을 혼자서 지출하는 국가에 대한 공격을 감히 어느 국가가 꿈꿀 수 있었겠는가! 국가가 상상하지 못한 일을 그러나 테러 집단은 실행했다. 단순한 종이칼로 무장한 일련의 테러리스트들은 최첨단 감시 체계와 가공할 무기 체계로 포장된 미국의 불가침성이라는 신화를 세계무역센터 건물만큼이나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그 충격이 상상 밖으로 컸기에, 언론과 학자들은 현대사를 9·11테러 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구분하며, 9·11테러에 ‘시대의 전환점’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 흐름에는 ‘테러 자체’의 무게보다도,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 즉 9·11테러에 대한 의미 부여와 반격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상 ‘9·11’로 대변되는 새로운 테러 공격의 가능성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진즉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옛 소련이 무너지고 동서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뒤 국가 간 갈등과 분쟁 ‧ 전쟁은 사라져간 반면에, 세계 곳곳에서 종족과 종교 갈등이 폭발하여 참혹한 내전이 일어났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들이 ‘서로 조심’하기도 하고 또 자신들의 우산 아래에 있는 나라들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 측면이 있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분쟁에는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가 통제를 벗어나서 사회 각계각층에서 분출하는 욕구의 충돌’을 막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냉전 시기 세력 확장을 위해 미 ‧ 소(美蘇) 두 나라가 세계 곳곳에 지원하거나 판매했던 무기들이 정부 통제를 벗어나 민병대 등의 손에 들어간 것도 테러가 대형화 ‧ 세계화된 배경이다.
세계화(저자는 ‘지구화’라는 표현을 쓴다)가 넓고 빠르게 진행되면서, 지역 간 격차가 점차 크게 벌어지고 과거 ‘20:80’으로 상징되던 ‘부자와 빈자’의 비율이 ‘10:90’을 넘어 ‘5:95’로 심각해지면서 마지막 생존 수단으로 테러 집단을 선택하는 이들을 양산해내기도 하였다. 세계화는 또한 테러 집단들이 서로 쉽게 연결되어 동시 다발 테러를 계획할 수 있게 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이런 원인과 배경은 무시한 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켜 탈리반과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고 빈 라덴과 후세인을 제거하는 등 겉으로는 테러의 원천을 없애버린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오히려 테러 행위를 급진화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9·11테러 이전 “명백한 정치적 상징성을 띠는 이른바 ‘하드 타깃(hard target)’이 테러의 대상이었던 반면에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의 테러는 소위 ‘소프트 타깃(soft target)’에 대한 무차별 공격의 양상으로 변모”하여 테러 집단의 비대칭적 ‧ 무차별적 공격을 오히려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한 국가의 국경 내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테러리즘의 경우 테러리스트들은 보통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해 지역 주민 다수의 지지를 염두에 두었고, 따라서 이 지지를 훼손할 인명 살상을 의도적으로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서 일어나는 오늘날의 지구화 시대의 테러리즘”은 과거와 달리,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 설정한 사회를 충격과 공포의 상태로 몰아넣음으로써 그 사회의 정치권력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등장하는 것을 의도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최대의 무차별적 인명 살상은 사회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하는, 테러 행위의 목표 자체가 된다.”
이것이 ‘최대한의 인명 희생을 전략으로 하는 메가테러리즘’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다양한 집단들이 일으키는 새로운 형태의 테러리즘은 동서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압도적 군사적 우위에 기초해 질서 유지자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세계 질서 전쟁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이 크다. (9·11 이전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코소보와 보스니아 내전, 그리고 9·11 이후 부시 행정부 시절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종교적으로 이슬람, 지역적으로는 아랍 지역이 테러리즘의 온상처럼 된 데에는 178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략 이래 서구의 지배를 받으며 겪었던 역사 ‧ 문화적 반감과 함께 급속한 인구 증가와 이농(離農)의 동시적 진행으로 도시에서 “일자리도 없고, 따라서 삶의 전망 역시 가질 수 없는 청년 계층을 양산”하여 “테러리스트들을 충원해주는 정치적 늪”이 되는 데 더하여, 서방의 지원을 받는 이 지역 정권들의 정치적 억압 및 경제적 무능도 상승 작용을 일으켜 민중의 반감을 확대한 데다가 다른 개발도상국들에 비해 아주 낮은 아랍지역의 교육 수준도 이곳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싹터서 자라는 조건을 만들었다.
아브네리(Uri Avnery, 이스라엘 평화활동가)가 “설령 백만 마리의 모기들을 죽이더라도, 여전히 모기들이 사는 늪지가 있는 한 또 다른 백만 마리의 모기들이 나타날 것이다.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서는 모기를 만들어내는 늪지를 말려야 한다”고 했듯이, 테러리즘 발생의 원인을 없애지 않고서 군사행동만으로 테러를 없애겠다고 하는 미국과 그 우방국들의 처방은 결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세간에 만연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 테러인데, 그 상황을 더 악화시키면서 ‘테러 종식’을 외치는 것은 미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위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세계질서 재편에 힘을 기울이게 된 배경이 무엇일까? 여기에는 달러화의 불안정, 유럽에서 유럽 통합과 유로존(Euro-zone) 등장에 따르는 영향력 감소, 중국의 정치 ‧ 경제적 강대국 진입 등으로 증대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어쨌든 미국은 발칸 전쟁을 통해 유럽에 ‘힘’을 보여주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중앙아시아에 군사적으로 교두보를 확보하였으며 그 지역에 풍부한 석유 ‧ 가스 자원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졌다.
메가테러리즘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안보 위험의 하나다. 그러나 이 위험은 9·11 테러 이후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테러의 근본 원인, ‘지구화의 관철이 수반한 사회적 균열’을 제거하거나 제거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없이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에 기초하여 미국 중심의 일방적인 위계적 세계 질서를 실현하겠다”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폭력을 낳는 사회적 원천을 뿌리 뽑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궁극적으로 메가테러리즘은 그것이 등장한 원인들이 소멸될 때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메가테러리즘에 대한 대응 전략은 원인에 대한 치유라는 원칙 아래 수립되고 지속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제안은 ‘고통의 원인을 소멸시키는 진리인 멸성제(滅聖諦)’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러면 고통을 소멸시키는 길(道聖諦)은? 저자는 평화 연구자 갈퉁(Johan Galtung)이 말하는 ‘착취의 부재, 경제적 ‧ 사회적 발전, 다원주의, 정의와 자유, 인권의 실현’이 그 길이라고 제시한다.
※이 글은 2016. 3. 22. 《법보신문》 <이병두의 책안의 세상 책 밖의 세상>에 게재된 ‘테러리즘, 군사대응으론 한계. 폭력 낳은 구조 바꿀 때 소멸’의 확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