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27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특조위 대회의실에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 명예훼손 사건과 비정상적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을 이용한 여론 조작 의혹 등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행사의 사회를 맡은 김현숙 특조위 조사과장은 “‘세월호 참사 가족과 유가족, 피해자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피해자인데, 왜 참사 이외의 것으로 또 피해를 받고 아파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어 전문 용역을 통한 조사에 착수하게 됐다”라며 “예산이 없어서 전수를 조사하지는 못했지만, 이 조사만으로도 많은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모욕죄, 실형처벌 단 2건
‘피해자 명예훼손 사건’을 발표한 김인희 조사관은 피해자들이 참사로 인한 충격에 이어 광범위한 모욕과 명예훼손을 당했지만, 현행법의 한계와 사회적 시스템 부재로 인해 이들을 도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김 조사관은 “피해자들을 명예훼손하거나 모욕했던 게시물은 무수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통해 실형을 처벌받은 사례는 단 2건”이라며 “이 사건들 역시 언론에 큰 이슈가 됐던 사건에만 국한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희생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음란물유포죄가 발견되는 사건에서는 학생들을 비하하거나 희생 여고생들을 성적대상화 해 모욕하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명예훼손이 적용된 사례로는 ‘학생들이 안전규칙을 지키지 않아 참사가 발생했다’, ‘단원고 학생들은 성적이 나빠서 죽는 것이 낫다’ 등이 있었고, 음란물유포죄가 적용된 사례에서는 ‘희생자들이 사망 전 에어포켓에서 성행위를 했다’, ‘희생 여고생과 성행위를 하고 싶다’ 등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음란물유포죄가 적용된 사례는 3건에 그쳤으며, 사자명예훼손죄가 적용된 사건도 2건에 불과했다.
생존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죄가 적용된 것은 2건이다. 하나는 지난해 초에 있었던 ‘어묵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당시 5세였던 생존자를 성폭행하고 싶다는 취지의 게시물을 올린 사건이다. 김 조사관은 “이 사건들 역시 언론에 큰 이슈가 됐던 사건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이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이 언론보도와 인터넷 게시물을 통해 숱한 모욕을 당해왔음에도 피해 구제를 위해 나서지 못하고 숨죽여왔던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가족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죄가 적용된 사례로는 ‘아이들 시체로 벼슬하려고 한다’, ‘거액의 돈을 챙기고 평생 혜택을 누리려고 한다’ 등이 있었고 이 밖에도 ‘사상적 문제’, ‘종북좌빨’, ‘선동꾼’ 등의 내용이 뒤를 이었다. 김 조사관은 “유가족이 피해자인 사건에서 그나마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었던 것(34건)은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가족협의회가 꾸려지고, 임원들이 나서서 고소·고발을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 사건이 기소되고 재판을 받은 것은 단 45건에 불과하다. 지금도 세월호 관련 기사에 악성 댓글이 부지기수로 달리고, SNS에 셀 수 없이 많은 모욕성 글들이 생성되고 있는 현실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다”라며 “이마저도 4건은 공소기각, 선고유예, 무죄로 끝났고, 30건은 벌금형이었다. 11건의 사건만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그 중 9건은 집행유예로 끝났다. 실형으로 이어진 것은 언론의 주목을 받은 2건뿐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추가적인 피해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참사로 인한 충격,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슬픔, 참사의 이유를 찾느라 정작 자신을 방어할 여력이 없다”며 “현행법상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으면 기소할 수 없는 친고죄이고,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을 찾지 않는 이상 제지할 방법이 없다”며 이들을 도와줄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 “언론보도 근거한 모욕, 가장 고통스럽다”
피해자의 언론보도 피해실태를 발표한 김은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참사 피해자에 대한 언론의 취재 형태 변화와 신중한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다양해졌지만, 그 매체가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언론의 보도이기 때문에 언론은 특별히 ‘확산’과 ‘왜곡’ 현상을 고려한 보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설문조사에 응했던 피해자 163명 중 대부분(81.7%)은 언론보도를 정정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 피해 구제방법으로 대처를 한 사람은 11%에 그쳤다. 피해자들에게 언론 신뢰도는 세월호 참사 당시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2년이 지난 후에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뢰도 하락 요인으로는 ‘구조 성공으로 보도한 후 말을 바꾸는 언론보도’, ‘특례입학과 관련한 언론의 거짓 기사’, ‘인터뷰 내용 중 자극적인 내용 일부만 보도된 것’ 등의 답변이 나왔다. 피해자들은 언론 보도를 기반으로 하여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인터넷 게시물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응답했고, 최근 세월호 존치교실을 이전하는 문제에서도 언론이 왜곡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여론형성 했다”
"SNS의 파급력은 이전보다 굉장히 높아졌다. 뉴스에서 보도된 내용이 SNS와 커뮤니티에서 퍼지면 뉴스가 다시 이것을 받아 보도한다. 부정적 여론은 이렇게 증폭된다"
아울러 특조위는 이날 세월호 관련 키워드를 가지고 SNS를 분석한 결과, 일부 계정에서 비정상적 방법으로 여론 조작을 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특조위가 빅데이터 분석을 의뢰한 <한국인사이트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피해자들에 대한 악의적인 여론은 SNS에서 조직적으로 형성됐다.
이경현 한국인사이트연구소 연구원은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보상이슈를 중심으로 본 트위터 전파양상을 분석한 결과, 특정 계정이 기계적으로 부정적 내용의 글을 확산시키는 정황이 확인됐다”며 “‘조장 계정’이 관련 글을 올리면 90여 개의 ‘조원 계정’이 이를 확산시켰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세월호참사의 보상이슈와 관련한 5개의 키워드(보상·지원·혜택·특례·특혜)를 선정해 세월호 참사 당시와 4개월 후, 1주년 시기를 나눠 표본 조사한 결과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특정 기간에 두드러지게 증폭됐으며, ‘세월호 혜택 리스트’가 만들어져 전파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트위터 계정 간의 관계도 조사에서 비정상적인 활동을 한 ‘혐의의심그룹’을 조사한 결과 2개의 ‘조장 계정’과 97개의 ‘조원 계정’이 발견됐다. 99개의 계정 중 데이터가 유실된 3개의 계정을 제외한 나머지 96개의 계정은 모두 ‘트윗뎃’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윗덱’은 트위터상에서 여러 개의 계정을 동시에 관리하고 같은 내용의 글을 빠르게 늘릴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의 여론 조작에도 사용됐다.
이경현 연구원은 “서로 소통하며 그물망처럼 이어진 그룹과 달리, 서로 간의 교류도 없이 한 계정만 바라보며 일방적으로 따르는 비정상적인 계정 수십 개를 발견했다”며 “비정상적인 패턴을 보이는 계정들은 모두 ‘트윗덱’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전체 트위터 이용자 가운데 1.2%만 사용하는 ‘트윗덱’을 비정상 계정에서 사용했다는 사실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여론을 형성하려 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비정상적인 활동을 한 ‘조장계정’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당시 본인과 본인의 복제 계정을 활용해 세월호와 관련한 부정적 이슈를 생산하고 전파했으며, 세월호 참사 발생 4개월 후에는 ‘조원 계정’을 활용한 여론 부풀리기에 들어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계정 확산을 통해 인지도를 획득한 ‘조장 계정’은 트위터상에서 ‘영향력자’로 인지돼 다른 계정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전파됐다.
이 연구원은 “SNS의 파급력은 이전보다 굉장히 높아졌다. 뉴스에서 보도된 내용이 SNS와 커뮤니티에서 퍼지면 뉴스가 다시 이것을 받아 보도한다. 부정적 여론은 이렇게 증폭된다”라며 “실제로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긍정적인 내용이 부정적 내용보다 4배 정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며 5대5 정도로 팽팽하게 보도한다”고 말했다.
“언론사 정정보도 해도 ‘특례입학’, ‘배·보상’ 기사 떠돈다”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는 뉴스의 소비 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언론의 피해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기자는 과거 종이신문 시절에는 정보의 생산과 소비가 일치됐지만, 최근에는 생산과 유통이 분리돼 언론의 보도가 파편화되고 개별적으로 읽힌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월호 기사를 보고 고통을 당했다는 피해 학생 모두 네이버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내용을 접했다. 언론으로부터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말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뉴스 소비문화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사가 파편화되기 때문에 언론사가 정정보도를 한다고 해도 SNS에는 ‘특례입학’과 ‘배·보상’ 기사만 떠돌게 된다. 언론이 잘못 보도하고 왜곡 보도할 경우, 보도한 언론의 해결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을 이번 보고서에서 잘 알 수 있다”며 “더 큰 문제는 언론사 보도를 바로잡는다 해도 그것을 나르는 SNS나 커뮤니티까지 바로잡기 힘들기 때문에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에 대해 대안이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