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활동 지원사업(이하 청년수당) 정책에 대한 협조를 구하겠다며 요청한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 대해 청와대가 9일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서울시와 복지부가 협의할 사항이고, 이미 복지부가 청년수당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거부의 뜻을 밝혔다.
8일 박 시장은 청년문제를 두고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대립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청년수당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청년수당은 지난해 서울시가 청년정책 종합계획으로 발표한 ‘2020 서울형 청년보장’ 정책 중에 하나로 기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청년수당은 300여 명의 청년들과 청년 단체들을 통해 고안됐지만, 복지부는 취업과 창업에 직접 연관이 있는 활동에만 정책을 국한하라고 수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서울시가 정책 수정안을 올렸지만, 복지부는 모두 ‘부동의’를 통보했다.
결국, 서울시는 3일 저소득 취업준비생 3,000여 명에게 6개월간 50만 원씩을 지급하는 ‘청년수당’을 지급을 시작했고, 복지부는 첫 지급 바로 다음 날인 4일 직권취소 결정으로 맞서며 법정 싸움을 예고했다.
정부는 우리 사회에서 ‘약자화’된 청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청년수당 기획에 직접 참여했던 권지웅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9일 ‘민중의 소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여당이 ‘약자화’ 된 청년의 현실을 보지 못해 청년수당 정책 취지를 공감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고용노동부가 기존에 진행하는 ‘취업성공패키지’ 제도는 지출이 불가피한 교통비, 통신비, 학습 비용 등을 지원하지 않아 부모님께 도움을 받거나, 부모님의 도움을 기대하기 힘든 저소득층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로 구직비용을 충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 위원장은 “올해 9급 공무원에 22만 명이 지원해 21만 8천 명이 떨어졌다. 청년들은 떨어질 걸 알면서도 지원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우리 사회에서 ‘약자화’된 청년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현금 주면 술이나 마신다’는 비아냥거림은 청년 참여자뿐 아니라 시민 전체를 미숙하고 우매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복지부의 직권취소 결정에 대해 “지자체가 새로운 정책을 낼 때마다 청와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며 “서울시의회 조례에 근거를 두는 지자체의 사업을 정부가 막는 것은 월권행위이며 청년수당을 사법부로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복지부의 대응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정부 직권취소로 청년 미래까지 취소처분
청년참여연대는 청년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오히려 지자체의 청년지원 사업을 무산시키고자 하는데 절망감을 느낀다며 정부의 직권취소 결정을 비판했다. 이들은 청년수당이 청년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하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서울시의 정책을 흠집 내고 직권취소 결정을 통해 청년 미래까지 취소처분을 했다고 주장했다.
청년참여연대는 “박근혜 정부 들어 9차례 청년 일자리 대책이 발표됐지만 질 좋은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청년들은 저임금·불안정 아르바이트 노동에 내몰리게 됐다”며 “정부는 지자체가 시도하는 보완정책을 트집 잡기보다 그동안의 정부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더욱 실효적인 청년정책을 제시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박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장관의 뒤에서 입을 다문 채 숨지 말고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인 청년정책에 대해 본인의 입장과 생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말로만 청년을 외치지 말고 청년들의 절규에 답하라”고 규탄했다.
노동시장에 뛰어든 청년층은 늘어났지만, 일자리는 음식 숙박업종 등 임시직에 몰려
5일 한국노동연구원이 출판한 ‘2016년 상반기 노동시장 평가와 하반기 고용전망’ 보고서의 내용도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올 상반기 노동시장에 뛰어든 청년층은 늘어났지만 새로 생긴 일자리는 음식 숙박업종 등 임시직에 몰려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청년층(20~29살)은 상대적으로 노동시장 진입이 활발해 취업자와 실업자가 모두 늘어났다. 취업자 수는 6만8000명 증가했지만, 실업률도 0.7% 포인트 증가했다. 청년층 취업이 두드러진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은 임금과 복지 수준이 다른 산업에 비해 낮은 편이고, 그 와중에도 상용직보다는 임시직이 빠르게 증가했다. 임금이 높고 상용직을 주로 채용하는 제조업의 경우에는 청년층 고용이 저조했다.
보고서는 “취업한 청년층의 산업이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에 몰려있고, 이들의 일자리 질이 좋지 못한 임시직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이 확인된다”며 “노동시장으로의 진입 여부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이들이 결국 핵심연령층으로 노동시장의 중추 역할을 맡아야 함에 주목해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