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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고개를 돌리게 하는 명동 성당
  • 전순란
  • 등록 2016-10-24 09: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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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2일 토요일 흐림


아침에 일어나 다리 한쪽을 들어 본다. 어제 산길을 10km는 걸었는데도 두 다리가 안녕하시다. 그제 광화문부터 인사동으로, 동대문으로, 다시 종로에서 동대문으로 그 오염된 공기 속을 헤매고 다니던 훈련을 미리해둔 터여서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걸으니 내 몸이 외레 고마웠을 꺼다. 주말이면 줄서서 둘레길 걷는 서울사람들로 북한산은 온통 몸살을 하지만 그것도 대도시 사는 인간들이 나름대로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이리라. 오빠에게 전화해서 대동문에 갔다 왔노라고, 단풍이 아름다우니 이번 주말에 대동문에 올라가라니까 오빠는 소요산엘 간단다.



오빠 동창들은 함께 어딜 갈 땐 1만원 회비를 걷는데 조금만 많아져도 참석을 어려워하더란다. 남자 나이가 70전후면 건강과 경제문제로 많이 힘들어한다. 박봉에, 이른 퇴직에, 자녀들의 학비와 결혼을 뒤치다꺼리하고 나면 남자들의 노년은 참으로 가련해짐을 주변에서 목격한다. “엄마 아빠가 건강하고, 안 싸우고, 연금으로 살아가서 고맙다”고, 그 덕분에 자기가 맘 놓고 가난한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일할 수 있다던 우리 큰아들 말이 새삼스럽다.


오빠도 짜기로 따지면 소금보다 더한데 이번에 90만원이나 들여 MRA와 시티를 찍어 온몸을 샅샅이 뒤졌단다. 지난 8월말, 지하철을 탔다 어지럽고 토기가 느껴져 동작 전철역에서 내리고는 정신을 잃었단다. 전철역 벤치에 쓰러져 1시간 30분간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30분 간격으로 지하철 역원이 와서 들여다보고 가는 게 전부더란다.


우리 가족 전부가 그 얘기에 분노하며 “119를 부르고 신고를 했어야지, 뇌졸증이면 분초를 다투는데 90분을 방치하다니!”라고 흥분하자 오빠는 술주정뱅이나 노숙자인가 싶어 그랬을 거라고 너그럽게 이해를 한다. 평소 작은 일에도 크게 열 받는 오빠가 (MRA검사대로, 밤알 크기의 흰 덩어리 부분이 뇌에 있다더니) 화내는 신경이 망가져 저렇게 너그러워졌나 싶다.


오늘 오후 명동 가톨릭교육회관에서 ‘새천년복음화연구소’라는 단체의 심포지엄이 있었다. 보스코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 복음화에 따른 제3천년기 선교영성”에 대한 심도 깊은 발제를 했다. ‘예수 믿으쇼!’를 떠벌일 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사회를 정의와 평화의 세계로 건설하는 ‘사회의 복음화’가 현교황이 설파하는 ‘새로운 복음화’라는 요지였다. 논평은 한신대 김항섭 교수가 아주 예리하게 잘했다.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유희석 신부,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원장 김동원 신부의 발표도 있었다. 무속신앙에 자비가 어떻게 반영되는지 발표한 류희석 신부의 발표와 김혜경 박사의 자신에 찬 논평을 들으며 여자가 저렇게 똑똑한데 왜 연단 위에 여섯 명 중 여자는 단 한명인가 의아했다. 학계에서, 그것도 가톨릭학계에서 여성이 자기 몫을 찾기는 아직도 멀다.



보스코가 혼자 다닐 수 있는 강연장에는 함께 안가고 그를 모셔갈 기사가 필요한 곳에만 가기 때문에 오늘은 안 가려 했는데 내 페친 명숙씨가 꼭 보자고 해서 명동엘 갔다. 거의 4년만이다. 


4년 동안 달라진 것은 명동 길에 차가 없어졌고 그 자리를 사람들이 그만큼 가득 메우고, 그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마치 내가 우리나라 명동에 온 것이 아니라 그들 나라에 내가 간 듯 낯설었다.


성당 밑 주교관 자리에는 아주 생소한 건물이 들어서서 자본주의의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한때는 ‘민주화의 성지’였다가 이제는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은 얼씬도 못한다는 생각에선지 성당과 거창한 주교관이 눈에 띄자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건물이 보기 싫어 그동안 이곳을 안 왔고 오늘도 명동엘 오기 싫었나 보다. 보는 사람이 고개를 돌리게 하는 성당과 교회… 안타까운 일이다. 


거창한 개신교회 건물을 가리키며 저게 자기가 다니는 교회라고 자랑하는 인간들이 혐오스러웠다. “하느님과 재물은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지만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제자’라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분보다 훨씬 영악해서, 보스코 말마따나,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면 만사가 형통한다는 이치를 너무 잘 깨달아버렸고, 그리고 당당히 그 이치대로만 살아가는 중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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