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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흙 속에 묻힌 게 아니라 국민의 마음에 심겨진 백남기 농민
  • 전순란
  • 등록 2016-11-07 10:31:20
  • 수정 2016-11-07 10: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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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6일 일요일, 흐림.


지난 여름 주일미사 때 문정공소에서 울려 퍼지던 풍금 소리가 더는 안 나고, 먼지 쌓인 전자오르간이 치는 사람 없이 제대 위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떠났으니 이제는 그 오르간도 주인에게 들려줘야 할 시간이다. 보스코가 아침을 서둘러 먹고 공소에 내려가 기계를 풀어 가방에 넣어 차에 싣고 오 신부님께 돌려드리려 성심원으로 주일미사를 갔다. 신부님은 중국여행에서 돌아와 피곤하신데도 오늘 미사를 집전하셨다.



미사 중에 중국에서 한센병 환우가 모여 사는 정착 마을을 돌아본 얘기를 해주셨다. 12명이 사는 산 속 시설은 우리의 70년대 시설과 비슷하여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고, 그래도 좀 잘됐다는 정착마을엔 300여명이 살고 있었는데 그곳도 우리나라의 정부지원 이전의 수준이더란다. 12명이 모여사는 곳이 여인숙이라면 300명 모여사는 곳은 여관 정도, 우리 성심원은 그에 비하면 호텔수준이란다.


신부님이 준비해 간 선물을 그 자리에 나온 분들에게 드리니 “여기도 못 나온, 우리보다 더 불쌍하고 더 없는 사람들에게 드리시죠”라며 서로 아끼고 사랑하더란다. 그분들을 프란체스코 가족수도회 수녀님들이 돌보고 계신다니 역시 제일 어렵고 힘든 곳이 주님의 종들을 필요로 한다. 용돈이라고는 마카오의 마태오리치재단에서 매달 주는 1인당 50위안(8000원)이 전부였지만, 놀라운 일은 환우도 수녀님들도 모두 만족하고 행복한 모습이더란다. “지금 이곳의 어르신들조차 ‘옛날이 더 좋았다’고 하시는걸 보면 행복은 가진 것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오늘 강론 중에 하느님의 자녀답게 “좋은 말만 하고” “좋은 일만 하라”는 사도의 말씀을 풀어가시는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절대 좋은 말이 안 나오니 어쩌나? 미사 후 함양에 가서 보스코는 머리를 깎고, 점심으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는데 옆칸에서 식사 중이던 남자교우 7~8명이 함양본당 신부님도 같은 강론을 하셨는지 좋은 말만 하고 살기가 얼마나 힘드냐는 말을 나누고 있었다. 더구나 요즘 이 정권의 작태를 보고 좋은 말만 어찌하노...




보스코와 내가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의 장례위원에 들어 있는데도 어제 장례식에 못 올라갔으므로 오늘 5시에 망월동 구묘역에 안치될 매장식에 참석하려고 광주로 떠났다. 망월동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에 고향 보성 본가(13대째 살아온 곳이란다)와 논밭에서의 노제, 광주 금남로 노제와 화장을 마치고 망월동으로 운구하는 중이었다.


유가족과 유골함이 도착하고 짧은 하관연도를 바친 후 안치되었고, 그 위에 가족이 성수를 뿌리고 흙을 한 삽씩 덮었다. 할아버지가 땅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에도 옆에서 장난을 치는 손주를 보며 몇 해 전 노대통령의 장례식 때 철없이 놀던 그분의 외손녀 생각이 났다. 저 형편없는 여자의 정치에 절망할수록 노대통령 생각이 간절하다.




백남기 어르신, 마지막 가는 길이 이처럼 의미있고 아름다우니, 유족에게는 미안하지만, 가시는 길이 외롭지는 않으셨겠다. 임봉재 언니는 그분이 떠나시며 세 가지 기적을 보았노란다. 첫째, 우린 그분이 살아나실 기적을 바랬는데 그분은 전혀 다른 기적을 준비 했더란다. 둘째, 그분은 317일 견디어 숨지실 때를 절묘하게 선택함으로써 민초들을 깨웠고(어제 광화문의 20만명의 인파를 보라), 셋째, 우리나라 국민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전세계에 보여줬단다. 언니는 어제 서울에 올라가 백남기씨의 장례와 여정을 같이 하고 있어 오늘 장례 후 우리가 이곳 묘역에서 원지까지 모셔가기로 했는데 산청 가농회원들이 와서 그분들과 함께 갔다.



고인은 오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이 사악한 정권의 손에 죽어갔다. “하느님에게는 모두가 살아 있다”는 말씀대로, 우리의 시선에서야 땅속으로 묻혔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의 가슴에 깊숙이 한 알의 씨앗으로 남으리라. 김주열,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망월동 구묘역에 묻힌 그 많은 열사들처럼 그분은 흙 속에 묻힌 게 아니라 국민의 마음에 심겨진 것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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