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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촛불민심’이 사명을 다한 이 밤에…
  • 전순란
  • 등록 2017-05-10 10: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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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9일 화요일, 비


아무리 가물어도 내일 하루만은 참아달라고 어젯밤 빌었는데 오늘 오후에 온다던 비가 새벽같이 내린다. ‘톡 톡 톡’ 빗방울 지는 소리에 눈을 뜨니 4시 18분. 오던 잠이 싸악 달아나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희뿌연 어둠이, 먼 산을 배경으로 그리다 만 수채화에 빗줄기가 덧칠을 한다. 오늘밤 광화문 광장에서 JTBC가 개표방송을 한다는데…


이럴 땐 자칭 ‘날씨녀’(하느님께 떼를 써서 자기 뜻대로 날씨를 바꾸는 여자) 미루가 등장해야 하는데… 그니는 ‘문빠’답게 새벽부터 촛불을 켜고 예수님과 천지신명과 지리산 마고할메에게 하루 종일 빌고 또 빌 게다, ‘엄지척’의 주인공이 과반득표를 하기를… 5시 30분에 도메니카는 매일미사 참례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면사무소엘 갔고, 나는 아침기도 중에 주모경을 보탠다. 문 후보를 위한 9일기도가 오늘 아침으로 끝이 났다.



미루의 기도


어제 온 ‘평화신문’을 펼친 보스코가 “이 신문, 참으로 평화로운 신문이다”라며 탄식한다. 세상이 아무리 ‘디비져도’ 성모신심, 순교정신, 기도하는 가정이나 얘기하면서 대선을 앞두고 신앙인의 정치적 본분과 투표하는 영성에 관해서는 이번 호에 한 꼭지도 싣지 않았다는 한탄이다. 오히려 대구에서 나오는 ‘가톨릭신문’이 수년간 꾸준히 사회복음을 독자에게 펴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이 사랑으로 멸망하고 사랑으로 구원받는다”던 아우구스티누스, “무엇보다도 정치적 사랑으로 멸망하고 정치적 사랑으로 구원받는다”는 베네딕토 교황의 가르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이란 아예 말장난인데…


북한의 김국장이라는 여인이 유럽으로 날아갔고 트럼프의 측근도 그곳으로 갔다는 일본의 통신,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정상회담을 요청한다는 기사가 솔깃하다. 인격이 못 받쳐주는, 허영에 찬 사람일수록 겉으로는 협박 공갈을 하면서 남이 여태 못한 일을 해내려는 야심이 있어 제발 북미관계정상화라도 ‘저질렀으면’ 부디부디 두 손 모아 빈다.




오늘은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투표를 하는 날이어서 오후 1시에 면사무소에 참관을 갔다. 오전에 이미 많은 노인들이 다녀갔으므로(65% 투표) 오후에는 몇 사람 안 올 것 같다기에 사흘간 내리 읽고도 미처 못 끝낸 책(「두 도시 이야기」600페이지) 마지막 부분을 펴들었다. 비는 쏟아지고, 간간이 들어오는 사람들 숫자를 세면서 타지역보다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며 면사무소 마당에 차가 들어올 때마다 머릿수를 헤아린다.


6시가 넘자 유권자가 거의 안 온다. 비오는 날 어둑해진 시간에 글자도 모르고 걷기도 힘든 할메들이 오가기엔 무리다. 우리 투표소는 7시 30분에 마무리하자는 분위기. 충성도가 유난한 ‘민주당 참관인 전순란’이 8시까지 한명이라도 기다리자는 원칙을 내놓았더니 눈치를 준다. 휴천면에서는 투표자 643명, 투표율 73.3%로 끝났다.



▲ (자료출처=경향신문)


8시에 출구조사가 발표되었다. 문재인 41.4%로 1위라는 소식에 박근혜 쫓아내며 몇 달 간 맘고생한 피로가 확 풀렸다. 대구와 경북 경남에서는 여전히 홍준표가 1등이라니…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놓고서도 그 당에 투표하는 이 지역 유권자들, 참 염치가 없다. 감빵간 박근혜가 수갑을 차고 출마했더라도 “아이고, 불쌍한 우리 공주님” 하면서 기탄없이 또 찍어 줄 듯하다.


빵기한테서 “엄마, 축하해요”라는 국제전화가 왔기에 “얘, 문 후보가 55% 이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쉽구나” 했더니 “금고기야, 금고기야”하면서 나를 놀린다. 미루는 황금알 낳는 거위면 배를 가르고 금고기라면 회를 쳐서라도 과반수를 끌어내자는 문자를 보내왔다.


투표함을 봉해서 관광버스에 싣고 마천으로, 인월로 해서 함양체육관 개표장에 인계하고, 인수증에 사인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편이 끊겨 희정씨가 휴천면사무소까지 실어다 주고 거기 세워둔 내 차로 집에 오니 10시 30분. ‘촛불 민심’이 사명을 다한 밤이니 편히 발 뻗고 자련다.


문대통령의 당선은 노대통령의 부활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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