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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왜 이렇게 생소할까, 늘 푸르던 저 하늘이?
  • 전순란
  • 등록 2017-05-17 10:19:35
  • 수정 2017-05-17 1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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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6일 화요일, 맑음


왜 이렇게 생소할까, 저 푸르던 하늘이 늘 회색빛이었고 우울한 날들이었는데? 갑자기 푸른 하늘의 흰 구름 사이로 내리 쏟는 태양과 그 빛을 받아 찬란하게 웃는 여리디여린 풀잎과 나뭇잎새들을 바라보노라면, 그동안 보냈던 우리의 암담했던 세월과, 출구가 보이지 않던 절망에 갇혀, 우린 우리가 지닌 상처만 들여다보며 떨고 있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희미한 촛불을 들고 두려움을 떨치며 거리로 한발 내딛었다. 내 기억으로 그 시작은 저 2013년 9월 23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최한 ‘국가정보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 시국기도회’에서 처음 켜진 촛불이었다. (관련글)




그렇게 촛불과 촛불이 하나 둘 모이자 어둔 세상은 점차 밝아졌고 아픈 사람이 나만이 아님을 알고 양옆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상대방의 상처를 서로 싸매주며 거리에 선 우리는 더는 외롭지 않았다. 숙였던 고개를 꼿꼿이 들고 우리가 한발한발 내 닫자 한걸음한걸음 뒤로 물러서던 저 무리들(오늘이 하필 저자들이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훔친 날이라니)! 우리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민초라는 힘없던 풀, 더는 빼앗길 게 없을 때 무한히 솟아나는 힘, 지난겨울 차디찬 비바람 속에서 민중이 알아버렸다, 보스코 말마따나, 두려움은 실체가 아니었고 우리가 키워냈던 허구였음을! (관련글)


4대국 특사가 막 임명되더니 바티칸 특사도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오늘 중앙일보 인터넷판에 떴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님이 특사로 가시면서 보스코도 함께 간다(울 엄마가 늘 하시던 말처럼 ‘가방모찌’로). 바티칸에 워낙 건물도 복도도 방들도 많아 예전에 그곳 골목골목을 좀 익혀 두었던 보스코가 필요했을까? 땅은 없는 데(바티칸 시국의 땅은 겨우 우리 경복궁만하다) 국민은 많은 나라, 그러니까 마음으로 교황님을 따르는 13억 인구를 전 세계에 퍼뜨려놓고 다스리는 나라. (땅 없이 맘으로만 이뤄진 나라라면 하늘나라 비슷하달까?)


‘종들 중에서도 종노릇 해야’ 사람 마음을 차지한 주인이 된다는 이치를 가르치신 분의 제자들이 모인 곳(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리고 그 가르침을 유난히 잘 깨달은 언행을 보이는 제자 프란체스코 교황님을 찾아가 이 땅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하면 진정 ‘국민의 종’이 될까 한 수 가르쳐 주십사 해서 배워오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아마 치킨게임을 마다 않는 못된 김정은과 더 못돼 보이는 트럼프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안고, 둘의 목덜미를 친절하게 붙잡아, 호되게 박치기를 시켜서 제정신이 돌아오도록 할 만한 유일한 정치가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일 게다. 어쩌면 특사로 보내는 모든 나라 중에 문대통령이 가장 많이 떠올리고 가장 많이 닮고 싶고, 가장 많이 조언을 받고 싶은 분이 교황님 아닐까?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공터를 빌려 도봉구는 주민들에게 ‘한평농장’을 해마다 분양한다


오전에 보스코를 태우고 혜화동 가톨릭대학 도서관에 갔다. 보스코를 위해 도서관에서 주문해준 책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노후를 지리산 속에서 번역하고 농사지으며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하는 시간을 선택한 게 그에게는 큰 축복이다.


문교수님이 우이동 집에 묵으러 온지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오늘은 새 일터가 기다리는 카나다로 돌아가셨다. 자기가 옳다고 뜻하는 일은 끝까지 이뤄내는 그 끈기로 그곳에서도 남은 여생을 잘 마무리 하리라 본다. 그분이 떠나기 전에 4·19탑 앞 꽁보리밥 집에서 꽁보리밥과 파전을 함께 먹었다. 나물과 물김치 된장찌개와 고추장을 꽁보리밥에 버얼겋게 비벼 한 입 가득 넣고 음미하며 먹다보면 눈물 나게 그리운 음식, 가슴 저리게 가고 싶은 이 땅이 생각나리라.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를 시켜 들고 우이동 골짜기 명상의 집에 잠시 들렀다. 보스코에게 광주 피정의 집에서 강의를 부탁했던 서신부님이 원장으로 와 계셨고 지금은 다섯 분 수도자들이 살고 있는데 문교수님의 추억이 있던 곳이라 잠깐 들렸다. 우리가 발걸음을 디딘 곳이 누구와 함께 했던 때는 기쁘지만, 많은 경우 장소만 남아있고 사람이 사라진 자리엔 슬픔만이 그 공간을 채운다. 2시 30분 문교수님을 싣고 수락산역을 떠나는 버스를 보며 내가 슬픈 이유가 바로 그렇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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