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평화가 국경을 뛰어넘은 ‘공감’으로 이어져
올바른 역사관이 ‘공유’되는 한-일 대화의 장 열어야
한일공동평화수업, 평화를 담다
최근 극장가에서 화제가 된 영화 ‘박열’에서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는 남편 박열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에 저항한다. 국적을 초월해 조선의 독립운동에 헌신한 것이다. 정부의 폭력을 거부하는 무정부주의자였던 그녀는 조국의 모순을 꿰뚫고 평화롭지 못한 세상에 맞섰다. “인권과 평화,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은 세계 어디나 비슷할 것”이라는 조은경 근영중학교 수석교사의 생각은 박열과 가네코가 뜻을 같이할 수 있었던 이유와 맞닿아 있다. 오늘날에도 ‘공감’으로 하나 된 의지가 모였다. 조은경 선생님이 일본인 선생님들과 이끌어가는 ‘한일공동평화수업’이 그 주인공이다.
조 선생님은 2005년부터 올해까지 13년 동안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주제로 '한일공동평화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벌써 그동안 진행된 수업이 17회에 달한다. 한일공동평화수업은 조 선생님이 스즈키 히토시, 니시무라 미치코 선생님과의 만남이 인연이 되어 가능했던 일이다.
요코하마중학교 교사를 지낸 스즈키 선생님과는 2003년 도쿄에서 열린 ‘한일 평화교재 실천교류회’에서 처음만나 인연이 되었다. 스즈키 선생님은 1994년 안중근 기념관 방문을 계기로 연구를 이어왔고 일본 학생들에게 ‘동양 평화론’을 강의한다. 조 선생님은 10년 전 동경에서 열린 한중일 지식인들이 주축이 된 ‘국제이해학회’에서 츄오대 소속 미치코 교수를 만난다. 윤동주 시인의 모교 동지사 대학 출신인 그는 평화 관련 저서와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조 선생님의 설명이다.
‘평화’는 조 선생님이 광복에 헌신한 많은 독립운동가 중 특별히 ‘안중근 의사’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게 된 계기였다. 안 의사는 조선을 침략하고 동양의 평화를 파괴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막기 위해 의거를 행했다. 조 선생님은 “안 의사의 일생, 정신과 의로움은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전했다. 안 의사가 한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꿈꿔온 노력은 한일공동평화수업에서도 지향하는 가치다.
국제정치의 현실을 고려할 때 평화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군함도는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이 명시되지 않은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잘못된 역사가 일본 사회에 알려지는 상황이지만 조 선생님은 “일본의 학생들도 정확하게 역사를 배운다면 안중근 의사에 공감할 것”이라며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을 진실하게 가르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국경을 넘은 평화와 인권의 가치
조 선생님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 특히 동아시아의 교육자들과 힘을 합해 한일공동평화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 주제는 주로 독도, 안중근 의사,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한국을 사랑하고 희생한 사람들, 조선통신사, 세계의 인권문제, 그리고 유럽의 역사와 아메리카의 역사·문화에 대한 것들이다.
올해 3월에 진행된 한일공동평화수업은 ‘안중근 의사님 고국에 언제 돌아오시렵니까’라는 주제로 3차에 걸쳐 진행됐다. 학생들과 함께 안중근 의사 자서전과 전기를 읽고 안중근 의사에 대한 재판의 불공정성과 유해의 조속한 발굴 및 송환 그리고 평화와 공존을 위한 우리의 과제와 노력을 되새겨보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활동지를 작성해보고 학생들이 토론과 발표, 자유발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의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모든 순국 선열에 대한 편지쓰기로 수업을 마무리했으며, 각자 안중근 기념관이나 군산역사박물관, 김제아리랑문학관을 견학하기로 했다. 또한 모둠별로 평화 신문을 제작 중에 있다고 한다. 조 선생님은 “그동안 역사 수업을 학부모나 일반인에게도 공개해 왔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평화를 이뤄내기 위해 노력할수록 동아시아의 난제가 빨리 풀릴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 선생님은 세계 각국의 지식인을 초청해 인권과 평화, 환경, 다문화 등에 대해 강의를 하는 문화교실(Cross-Cultural Awareness Program, CCAP)수업도 12년째 진행하고 있다. 중국, 인도, 포르투갈, 루마니아, 브라질, 네팔 등 세계 각국 지식인들이 근영중학교를 방문해 여러 가치들에 대해 명강연을 펼쳤다.
올해에는 한민족학교인 모스크바 1089학교 엄 넬리 니콜라예브나 교장이 근영중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그녀는 지난 1937년 구 소련에 의해 극동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애환이 담긴 ‘까레이스키 이주사’가 올해 80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그 역사의 산 증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엄 넬리 교장은 근영중학교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까레이스키 이주사와 그 후손들이 이국땅에서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를 보존했던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조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 초청하다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학생들이 너무나 좋아하고 저마다의 꿈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면 피곤함을 잊는다”고 말했다.
“일본 친구와 함께 한일공동평화수업을 듣고 싶어요”
한일공동평화수업은 실제로 학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2016년 수업을 들은 근영중학교 최시온 학생은 “작년에도 수업을 들었지만 여전히 유익하고 재밌다. 영화 ‘귀향’을 보고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스즈키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일본에도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 친구들의 역사 인식도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기회가 된다면 일본 친구들과 함께 한일공동평화수업을 듣고 싶다고도 말했다.
같은 해 수업을 들은 문주영 학생은 “수업을 듣기 전에는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대강 알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한국인이 안중근 의사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동영상을 보고나서는 나라도 정확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또한 일본 친구들은 안중근 의사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겠지만, 언젠가 안중근 의사의 다른 업적도 알아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해 수업을 들은 박지민 학생은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가해자인 일본과 피해자 할머니들 간의 문제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한일공동평화수업을 듣고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수업은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인권과 평화에 대해서도 제고하게 한다”고 말했다. 또한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더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한일의 미래를 향한 길
스스로를 비롯해 이웃까지 존중하고 사랑하는 하루하루가 모이면 평화로운 역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이해하며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화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일공동평화수업은 이론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업이 아니다. 조 교사는 “양국의 청소년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노력 뿐 아니라 민간교류의 힘이 합쳐질 때 양국이 대화의 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제언했다.
안중근 평화기자단 - 이정원·신혜리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