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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구원은 여인에게 먼저 오고 또한 여인으로부터 오리라’
  • 전순란
  • 등록 2017-11-27 10:24:30
  • 수정 2017-11-27 10: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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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흐리다 개임


하늘은 눈이라도 한바탕 쏟아낼 기세. 이제는 가능하면 물건을 손에 들지 않고 캐리어에 실어 끌어야 한다. 젊었을 적 우이동에서 버스를 두 번씩이나 갈아타고 경동시장에 가서는 양손에 20kg씩을 들고도 끄떡없이 집으로 오던 때가 엊그젠데 ‘영자의 전성시대’도 어느새 페이지를 넘겼나보다. 이번에 휴천재 텃밭에 양파를 심으며 20kg 들이 퇴비자루를 나르는데, 물을 먹어 30kg 가까운 무게가 되어선지 열댓 포 들어다 밭고랑에 깔고 나니까 팔을 들 수가 없었다.


읍내 병원에 가니 전형적인 ‘테니스엘보 고장’이라며 일하지 말고 당분간 팔을 쉬란다. ‘돈 있으면 빵 사먹으라’는 인사 같아 귓등으로 흘려듣는다. 하지만 어제 오늘 바퀴 달린 가방에 물건을 실어 끌고 다니면서 인류가 바퀴를 발견한 일이 얼마나 고마운지, 내가 그 최대의 수혜를 보는 것 같아 원시시대에 살았을, 그 무명의 발명가가 고마워진다. 좀 지나면 지팡이나 밀차가 그리도 고마워질 테지…



보스코가 60세 후반 나이였던 10여 년 전 이러저러한 통증을 호소했었다. 손가락 끝에 개미가 스멀거리는듯하다는 둥(선내과 선생님은 말단까지 피가 안 통해서 그렇다고 말단순환제를 처방해주셨다), 걸핏하면, 나만 보면, 어디가 아프다고 하소연해 “여보, 나 아프다는 말 싫어해. 내가 좋아하는 줄 알고 하는 말이지?”라며 놀리곤 했는데 요즘은 내 입에서 ‘아구구!’하는 비명이 거듭 나온다. 병뚜껑 열기나 무거운 물건 들기는 ‘나약한 남자’ 보스코에게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늘 기도(같은 날 하느님 품에 들게 해주십사는)하는 대로 이루어질 전조 같아서 고맙기도 하다.



지하철을 거듭 갈아타며 ‘숭실대역’에서 내려 레미안 아파트촌 함신부님 댁에 갔다. 지난 월요일 진주에서 뵈었을 때 주일미사에서 보자고 하셔서, 또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볼 겸 간 길이다. 이대사, 윤교수, 문선생, 임수경 전 의원 등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함신부님 미사에서는 1,2독서와 복음을 함께 소리내서 읽고 각자에게 마음에 꽂히는 구절을 찾아 왜 그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지 얘기하는 ‘성서 나눔’을 한다. 오늘 재미있는 일은 우리 커플과 문선생 커플이 둘 다 같은 구절을 제각기 꼽았다는 점이다. 하느님께서 양떼를 보살피시다 ‘부러진 양은 싸매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버리겠다.‘는 구절을 문선생 부부가 같이 꼽았다. 


부인 측에서는 자기가 ‘살찐 양’처럼 남편을 구박한 것 같다고 자백하여 실생활에 무능하고 살림을 힘들게 하는 남편을 대신하여 가정을 꾸려가면서 남편을 건사한, 어머니 같은 마음을 엿보게 했다. 그 대신 남편 측에서는 가졌다는 자들, 힘세지만 오만하고 불의한 권력자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빌었노라고 답하였다. 


그러니까 새 하늘 새 땅을 꿈꾸는 꿈돌이로 민주화 운동에 ‘평생 투신’한 남편대신 가정경제에 ‘평생 투신’한 아내의 눈물겨운 사연이 눈에 선하다. 운동하다 잡혀간 남편의 옥살이에 흘리는 한숨과 눈물, 주변의 눈치와 질시는 또 어떻고? 비록 부부가 운명공동체라지만, 내 주위를 보면 사회운동에 오로지 투신한 남자들 곁에는 무명으로 가려져 오로지 집안건사와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여인들의 희생이 있다. 역시 구원은 여인에게 먼저 오고 또한 여인으로부터 오리라는 확신을 다시 심어준다.


오늘 처음 만난 ‘통일의 꽃’ 임수경 전 의원(외대에서 보스코의 강의를 듣기도 했단다)은, 30여 년 전 평양대학생축전에 참석했다 감옥에 갇혔을 적, 두 살 많은 언니가 “하느님은 우리가 이겨 낼 수 있는 만큼만 어려움을 주신다더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감옥에서도 그 뒤의 심란한 삶에서도 그 말이 힘이 되더라고 하였다. 하느님은 이겨낼 만큼의 어려움만 주신다기보다 어려움 있을 적마다 그때그때 이겨낼 힘을 주시다보니 그렇게 느껴진다는 게 내 체험이다. 하느님이 짐을 대신 메고 가시고 나는 그 짐에 손만 대고 따라가는 형국이랄까…



우리는 식당으로 자릴 옮겨 점심을 먹으면서, 일행이 새 대사님에게 할 일을 이리저리 주문했다. 점심을 함께한 나의 후배 김애영 한신대 교수가 강변 전철역까지 우리 부부를 데려다 주면서, 나의 모교 한신대의 최근 사태도 들려주었다. 


다섯 시 반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그그제 퍼진 자동차에 시동이 걸릴까? 기아가 먹힐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그 일이 순조로워 살살 달래가며 휴천재로 돌아오니 밤 10시. 반달로 커져가는 산달이 우릴 맞아준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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