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17년 4월에 발간된 지성용 신부의 책 『복음의 기쁨, 지금 여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고 <가톨릭프레스> 시대의 징표 코너에 매 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신앙은 십자가와 어느 정도 닮아있습니다. 신앙은 어느 정도의 모호함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신앙의 확고함을 약화시키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들은, 결국 명확한 이유와 논거 수준을 넘어서, 이러한 (적극적) 동의의 관점에서만 이해되고 진정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그러한 관점이란 사랑해야 할 자매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모든 종교적 가르침이 궁극적으로는, 친근함, 사랑 그리고 증언을 통해 마음의 동의를 일깨워주는, 가르치는 자의 삶의 방식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의기쁨』 42항)
‘가계정화(淨化)’라고도 불리는 가계치유는 조상의 죄가 후손에게 육체적, 정신적, 영성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가계치유기도문’과 ‘미사(성체성사)’를 통하여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사라지는 듯 했지만 이 문제는 ‘미사예물’의 형식으로 다시 신자들 간에 암암리에 은밀하게 도사리고 있다. 곧, 자신의 가계(家系) 안에 어떤 조상들이 무엇인가 한(恨)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 있거나 혹은 조상들이 지은 죄가 있을 때 그것의 좋지 않은 영향이 현재에 미치기 때문에 미사나 기도를 통하여 그러한 것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 당시에 ‘가계치유기도’ 모임을 통해 ‘가계치유를 위한 기도문’이 작성되어 전국에 유포되었고 일부 신자들은 기도회나 강의를 통해 ‘가계치유설’을 유포하고, 몇몇 신자들은 그에 따른 미사예물을 거두어들여 사정의 전후를 알지 못하는 사제들에게 미사를 부탁하는 사례들이 발생했다.
이는 교회의 오랜 전통인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죽은 이들을 기념하는 미사성제(연미사)의 본질을 왜곡하며, 교회의 전승(Traditio)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가지게 했다. 미사예물을 정성스레 준비하여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 형제, 자매, 친지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특별한 때(위령성월이나 민족의 고유명절, 기일 등)에 미사지향을 두는 것이나 조상들을 위해 연도를 바치는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러나 미사의 횟수나 미사예물의 금액, 곧 예물을 많이 바치고 더 자주 미사를 지낸다고 해서 그 동안 가계에 문제되었던 모든 것이 다 치유되고 모든 고통이 사라지게 되어 만사가 형통(亨通)한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가계치유’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그릇된 신앙생활이다. ‘환경 탓’, ‘조상 탓’으로 모든 문제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삶과 신앙의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고, 창조주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더 큰 죄일 수 있다. 죄와 환난의 책임을 조상에게 돌리고, 더군다나 저주의 배후에 ‘마귀’가 있다는 설명은 건전한 신앙생활을 미신과 무속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 모든 종교는 ‘고통이란 어떻게 피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겪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인간실존 그 자체이며 자연의 법칙인 고통을 외면하고 피해 가겠다는 가계치유의 기도와 신앙은 그 근본적인 방향이 잘못 설정된 것이다.
교회의 세례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교리인데, 가계치유에서는 ‘죄가 (소멸되지 않고) 유전된다’는 논리의 신학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새로운 생명의 표징이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고, 죄(원죄와 본죄)를 씻어내는 것이며,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씻겨진 죄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란 믿음은 세례성사의 (은총)효과를 부정하는 것이며, ‘원죄’를 넘어선 ‘조상 죄’의 대물림은 인간에게 더욱 큰 죄의 부담을 주어 사랑과 위로, 기쁨과 희망을 주어야할 신앙이 그 본질을 잃어버릴 위험에 놓이게 된다.
우리나라의 가정 해체 현상과 가정의 위기는 심각한 사회문제임과 동시에 그릇된 신앙을 유발시킬 수 있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회 공동체는 상처 받은 가족 구성원을 위한 다양하고 폭 넓은 프로그램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가족치료와 상담을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가족 복지 정책과 가정 사목을 위한 교구의 정책을 보다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혼자와 재혼자를 위한 프로그램의 준비, 도박 중독과 알코올중독자 가정을 위한 배려, 가정 폭력으로 고통 받는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독거노인과 편부모, 조손(祖孫) 가정에 대한 배려 등을 교회 정책 안에서 연구하고 구체적인 사목의 대안을 제시해야할 것이다. 그것이 시대의 징표이고, 신자들의 요구이다. 학교, 병원, 성당 등의 여러 가지 시설물들을 신축하는 것이 교회의 발전이 아님을 교회당국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최근 교회의 대형화, 중산층화 경향은 마음으로, 영으로 가난한 이들의 자리를 교회 내에 마련하지 못한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 가계치유 모임에 참여하는 신자들 가운데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놓여 있는 사람, 오랫동안 불치병이나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 마음에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 사회적인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 대부분은 현실에서 당하는 고 통에서 치유와 위로와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했던 사람들이다.
교회 공동체는 그러한 점에서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고통에 놓여있는 사람들과 연대하여 그들의 고통에 함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천을 마련하고, 누구 에게나 열려있는 신앙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그 본질적인 복음 선포임을 다시금 깨닫고, 비싼 땅값에도 아랑곳 않고 신설 본당을 신축하는 어리석은 일들을 그만 멈추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건전한 신앙생활을 위협하는 신심행위의 식별(識別)과 대응을 위해 그리스도 신자들은 스스로 성경에 대한 지식과 함께, 오랜 종교체험과 역사체험을 통해 쌓아온 교리와 신학에 대한 지식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신자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구는 신자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제 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기성교회의 문제와 중산층화 되어가는 교회 생활문화에서 소외되고 상처 받은 이들이 그릇된 신념과 선전에 미혹되어 복음의 본질을 놓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