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평양 다녀온 특사단에 갈채를 보내며
  • 전순란
  • 등록 2018-03-07 10:40:06

기사수정


2018년 3월 6일 화요일, 맑음


어젯밤엔 잠을 이를 수 없었다. 주변에 여러 ‘갱년기 여인들’이 호르몬 불균형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다 보면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긴 터널을 지나서야 깜박 잠들었다 깨는 걸 반복하는데, 나는 그 반대로 생각에 생각을 쌓다가 와르르 무너지면 거기서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느라 가물가물한 잠마저도 싹 달아났다.


사람이란 참 이해 할 수가 없다. 어떻게 여자 하나로 자기를 그렇게 철저하게 파괴하는 길을 걸었을까? 어제는 북한 특사단이 평양을 갔는데 안희정 지사의 사건이 너무 커서 국가대사가 묻혀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하며 ‘왜 하필 어제였을까?’ 원망도 했다. 그러다 ‘여당 대선주자 0순위’인 그가 대선 마지막 주간에 이런 일이 터졌다면, 아니, 6월 지방선거일 일주일 전쯤에 터졌더라면 얼마나 가공할 결과를 가져왔을까? ‘차라리 어제였던 게 고맙다’고 생각을 바꾸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시내를 갔다가 군내버스로 돌아오던 길 소담정 도메니카한테 들렀다. 정치적 견해가 같아 늘 동병상련을 하는 우리 둘은 서검사의 jtbc 인터뷰 이래의 미투운동을 얘기하다 파괴력이 너무 큰 어제의 인터뷰에 통탄을 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그 일의 의미를 찾느라 머리를 맞대고 긴 시간을 보냈다. ‘이런 사건도 어딘가 무슨 뜻이 있다.’ ‘그런데 그 뜻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다 좋은 것도 없지만 다 나쁜 일도 없다.’ 그 속에 들어있는 뜻은, 우리 둘이 결론짓기를, ‘겸손한 자세’다.


저녁에 평양을 다녀온 특사가 가져온 발표문을 듣고 보스코와 나도 손뼉을 쳤는데 뉴스가 끝나고 전화한 도메니카도 환호를 하고 가슴이 벅차 주체할 수 없어, 함께 기쁨을 나누려고 전화를 했단다. 한반도 전쟁을 막으려 가는 특사단 등뒤로 온갖 저주를 보내던 자유당과 조중동은 전국민의 박수갈채를 보면서 어떤 심경일까? 하루 사이에 우린 지옥과 천국을 오갔고, 저자들은 ‘증오의 지옥’에서 ‘절망의 지옥’으로 옮겨간 셈이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그 일을 달리 생각해 본다. 사드로 인해 중국관광객이 급감했다고 난리. 그런데 그들이 안 오는 제주엔 자연이 오랜만에 숨을 쉬고 있었고, 사람들이 오가는데 평온이 있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아줌마 얘기가, 그들이 안 오자 일이 훨씬 쉬워지고 호텔은 깨끗해졌단다. 중국인이 안와 롯데, 신세계, 동아면세점이 문을 닫는다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그런 대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이명박이나 쓰레기 같은 권력에 어떤 기여를 하고 거기서 성원받은 권리로 무슨 짓을 했는지 보면 돈은 절대 돌고 돌지 않았다. 종교에서도 한기총 대형교회들은 어떤가? 골목상권까지 싹쓸이하는 대기업상권과 뭐가 다른가? 우이동 골짜기 골목골목에 주일이면 교인(두당 십일조 헌금뭉치) 마지막 한명까지도 출교(出敎)버스로 쓸어 담는 저 대형교회의 탐욕! 


그리스도의 가난과 고통과 죽음과 부활은 거기에서는 안 일어난다. 어느 정신 나간 성직자가 주창하는 ‘무지개의 원리’? 하느님의 교회는 돈 놓고 돈 먹는 야바위꾼 놀음이 아니다. 골고다의 십자가와 죽음이 있어야 드디어 오는 부활이다.




11시에 부산 ‘달맞이성당’ 성모회 회원들이 4월에 있을 성모회 피정을 우리 공소에 와서 보스코의 강의를 듣고서 하겠다며 사전 답사차 도착했다. 네 명 정도가 온다 해서 점심준비를 하던 차에 우리 식구까지 9명이나 되어 식재료 부족으로 외식을 하기로 했다.




보스코는 오늘 중으로 배나무 가지치기를 끝낸다고 속도를 내고, 나만 손님들 모시고 토마스네 펜션을 둘러보고, 서암정사를 가보았다. 지리산 골골이 봄은 이미 문앞까지 왔는데 머지 않아 매화와 진달래 그리고 벚꽃으로 문을 활짝 열어 상춘객을 맞을 일만 남았다. 


오도재를 넘다 지리산 전망대에서 모처럼 맑은 얼굴을 한 천왕봉과 중봉 하봉도 만났다. 오도재에서는 구불구불 열두 구비를 돌아 함양으로 가서 상림 가까에 있는 늘봄가든에서 오곡밥정식을 먹었다. 허기진 시각이라 만나게 밥을 먹고는 상림도 걷고 4월 그때쯤엔 벚꽃 터널이 될 병곡길도 둘러보았다.




‘달맞이본당’ 식구들은 달을 맞으러 부산으로 달려가고 나는 바쁠 것도 없는 늘보 군내버를 타고 동네와 동네를 들러 휴천재가 언덕 위로 올려다보이는 문정으로 돌아왔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