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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천주교청주교구 장봉훈 주교님께 올리는 호소문
  • 김은순
  • 등록 2018-03-29 19:45:31
  • 수정 2018-04-01 04: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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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성심맹아원 김주희 양 의문사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 집행위원 김은순 씨가 청주교구 성유 축성 미사 성찬례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 문미정



천주교청주교구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님께 올리는 호소문 편지


주교님! 교회는 오늘 파스카 성삼일을 성대하게 시작하는 날이자 사제의 날인 성유축성미사가 있는 날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소임을 사제들에게 맡기신 것을 기념하며 사제직무의 본질이 무엇인지 새롭게 성찰하면서 예수님의 신원의식을 갱신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제들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날이지만, 저는 오늘 천근만근 무겁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작년 8월 1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088회, <‘진실 방’의 감춰진 진실, 열한 살 주희의 마지막 4시간> 방송에서는, 2012년 11월 8일 청주교구 소속 충주성심맹아원 기숙사에서 열한 살 김주희 양이 온 몸에 상처투성이로 의문사 당한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순간 제 눈과 귀를 의심해야했고 온 몸이 나무토막처럼 경직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주희 몸의 상처와 상흔들은 아동학대로 인한 상처임을 부인할 사람이 없었고, 2012년 10월 30일 주희 부모님이 주희를 마지막 보았을 때엔 없던 상처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식을 억울하게 잃고 5년 동안 길에서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을 호소하는 유가족의 아픔에, 제 마음도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묵주를 들고 하루하루 교회공동체의 잘못을 위해 보속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만 하고 그냥 있기에는 제 마음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교회구성원으로서 속죄하는 마음과 부모의 마음으로 유가족의 아픔에 함께하자고 마음먹고, 작년 8월 25일 청주교구청 앞을 시작으로 매일매일 거리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마음 아프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천주교회 신자로서 교회시설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진실규명을 외치자니 그 아픔은 더 큰 십자가로 받아들여야했습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렇다고 침묵하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 도움이 될 수도 없으며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는 일임을 알기에 가녀린 촛불하나 밝히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피켓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시민들 중에 제게 돌을 던지는 사람도, 시비를 거는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마음아파하며 꼭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이 됐으면 좋겠다고 위로하고, 따뜻한 음료를 건네주며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시민들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 사람들은 온도차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전반적으로 교회 내부의 안 좋은 일들은 쉬쉬하며 그냥 모른 체 하고 기도만 하라고 나무라는 사람뿐이었습니다. 교회의 치부는 드러내면 안 된다는 인식이 그들 마음 안에 단단히 뿌리내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두려웠습니다. 나무라는 사람들의 말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대하는 사제들과 신자들의 태도에 두려웠습니다. 


상처투성이로 죽은 아이는 말없이 진실을 밝혀달라고 몸으로 호소하고 있는데, 교회는 진상을 밝히고 규명하기보다 진실을 덮고 감추기 급급했습니다. 사회법의 ‘무죄’가 교회의 결백까지 증명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마음에 새겨주신 ‘양심’, 교회는 사회법보다도 ‘양심법’이 우선한다고 교리로 가르치지 않습니까? 교회가 만들어낸 그 ‘무죄’가 교회를 고발하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세상법과 달리 ‘진실’에는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이게 교회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신앙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작년 한해 이 질문을 제 스스로에게 던지며 고뇌로 가득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억울한 주희 양의 죽음을 외면해보려고도 했지만, 이 일을 외면하곤 저의 신앙생활도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제 앞을 지나가며 말을 건넸던 수많은 시민들이 바로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저는 1995년 10월 주교님으로부터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주교님 앞에서 세례서원갱신과 신앙고백을 하고 안수를 받고, 제 신앙도 견진성사를 통해 믿음 안에서 굳건해졌습니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인지라 죄에 걸려 넘어지게 되고 그럴 때마다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해왔습니다. 


매일 거행되는 미사전례에서도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응답을 합니다. 그런데 교구는 어떻습니까? 얼마나 소통하고 계십니까? 혹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주교님께서 서있는 그 자리, 사제들이 서있는 그 자리에서 선포하는 것은 복음이지만 서있는 자리도 복음적이었는지, 삶보다는 겉모습에만 충실했던 건 아니었는지, 거룩하게 살기보다는 거룩하게 보이려고 노력한건 아니었는지, 의롭게 살기보다는 의롭게 보이려고만 노력한건 아니었는지, 가난하게 살기보다 가난하게 보이려고 노력한건 아니었는지, 오늘 성유축성미사 중 사제 서품 서약 갱신을 하면서 성찰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상처 입은 사람을 싸매주고, 갇힌 이들을 풀어주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해주는 일이 당신 사명의 핵심임을 안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신원의식을 이어받은 주교님과 사제들도 신자들도 그러해야겠습니다.  


주교님! 한 가정이 의문사 사건의 피해자가 됐고, 주희 양의 부모님은 지금 6년 째 거리에서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을 해달라고 호소하고 계십니다.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교회가 항소해 무죄를 만들어낸 충격으로 주희 할머님이 쓰러져 돌아가셨고, 교회의 높은 벽에 죽음으로써 억울함을 호소코자 어머니는 자살도 두 차례 시도하셨으며, 트라우마가 있는 가정이다 보니 큰 딸도 가출해 행방불명이고, 둘째 딸마저 자살을 시도했는데 뒤늦게 발견돼 생명은 살렸으나 이렇게 온 가정이 힘겹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알고 계셨는지요? 아마도 모르실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보잘 것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늘 피해자였고, 권력자들은 가해자가 되어 그들 스스로의 가치관에 따라 길들여지고 다스려져왔습니다. ‘권력화’된 교회 역시 똑같습니다.


신앙은 상식을 기초로 하는 삶이며,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감추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나약함과 실수를 인정하고 드러내 개선할 때 사람들도 교회를 신뢰할 것입니다.


세상의 도덕적 윤리적 잣대마저 감지하지 못하고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교회는 스스로 말씀의 감옥에 갇혀 교회가 나아갈 길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2베드 3, 15)


부디 11살 어린 생명의 무고한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피해자 가족의 한이 너무 깊습니다. 늦었지만 용기를 내시어 교구장으로서 사망사건의 책임을 통감하시고 부모님께 진정성 있는 사죄와 화해를 청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대책위와의 면담을 요청하오니 주교님의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두서없이 써내려간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제 가슴을 뛰게 하는 문장으로 이 편지를 마무리 짓습니다. 


‘저는 이 땅에서 하나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기 이 세상에 있는 이유입니다.’(복음의 기쁨 273항)


2018년 3월 29일


충주성심맹아원 김주희 양 의문사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

집행위원 김은순(프란치스카) 올림





[필진정보]
김은순 프란치스카 : 전) 천주교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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