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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쓰레기!”
  • 전순란
  • 등록 2018-04-11 1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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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0일 화요일, 맑음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 연작 소설’은 최근에 읽은 다른 책들에 비해 독자들을 빨려들게 만드는 최고의 마력을 갖고 있다. 600페이지를 깨알 같은 글씨로 써서 나처럼 나쁜 눈으로 보려면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지만,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엘레나의 친구 릴라(주인공)의 매력에 빠져 어젯밤에도 밤잠을 설쳤다. 


‘그만 자야지’ 하는 남편의 지엄한 경고에, 두 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누워서도 나폴리의 우중충한 건물, 먼지 풀풀 나는 거리,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억센 나폴리 사투리로 시끌벅쩍하는 젊은이들이 눈에 선해졌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그들의 사랑과 우정, 증오와 음모, 남구의 태양으로 불타는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말려들며 도통 잠이 안 왔다. 우리에겐 ‘진짜 그럴까?’ 하는 일이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나폴리에서는 모두 가능하다!


4권 2,400 페이지를 소화하려면 김원장님처럼 몇 달 걸려 숨을 고르며 천천히 읽어야 할 게다. 이번에 빵기가 오면 걔의 성장기와 맞물린 지방의 이야기니까 걔한테 줘 보내고 나는 한 질 따로 구입할 생각이다. 



누가 순식간에 기웠을까 연두에 회장 둘린

군데군데의 산벚꽃

햇살 옮겨 구름 무늬 펼치는

신록 다채 저 초록 新衣를 보아라

환하게 드러나려다 감춰지는 실밥!... (김명인, ‘봄산’)



마을에 벚꽃이 지자 앞산에서 산벚이 마구 피어오른다. 단풍은 산정에서 마을로 찾아내려오지만 산벚은 마을에서 산꼭대기로 찾아올라간다. 벚나무에서 버찌가 익을 무렵이면 버찌를 삼킨 새들이 산으로 날아간다. 새는 기저귀도 안 차고 화장실도 따로 짓지 않으니까 그것들이 앉았다 날아간 자리에서는 벚나무가 돋고 먼 훗날 산벚이 하얗게 피어오른다. 


지구상에는 다른 물길과 전혀 닿지 않는 호수에도 신기하게 물고기가 사는데 까닭을 모르겠단다. 새들이 다른 곳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다 발이나 날개에 물고기 알을 묻혀 생명을 나르는 것으로 추측한단다.


새들이 먹고 싸면 저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는데, 새들의 깃털과 다리에 묻어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며 번식하는데, 인간이란 종자는 어디를 가든 자연파괴와 눈꼴사나운 쓰레기를 남긴다. 서울집 옆의 근린공원에서 쓰레기를 줍곤 하던 보스코가 내린 결론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쓰레기다!”였다. 초목은 스러지면서도 향기를 발하고 자연은 언제까지나 '있는 그대로' 인데 사람이 남기는 모든 흔적은 쓰레기로 주워담아야 하더란다. 


아파트촌 쓰레기 못 치운다고 대통령 지지율까지 떨어졌단다. 집에서도 종이 쓰레기 반만큼의 비닐 쓰레기가 나온다. 지금까지는 종이를 낱장까지 분리수거하여 재활용으로 내놓았고, 심지어 서울까지 싣고가서 이웃 아저씨 리어커에 실어주었건만 이젠 수거료가 떨어져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니 적어도 휴천재의 종이 쓰레기는 태워야겠다. 저 탐스런 나무가 베어져 종이가 되고 거기에 숱한 지식과 소식을 실어왔으므로 정성껏 분리해 내놓아서라도 숲의 나무들에게 사죄를 하고 싶었는데...  종이를 태우며 마음이 무겁다.


휴천재 마당 끝 축대에는 아직도 작년에 돋았던 잡초들이 우북한 건초를 남겼고 저것들이 뒤덮은 곳엔 다른 초목도 꽃도 버티지를 못한다. 사위질방이 휘감았던 연산홍은 가지가 말라 죽었고 나팔꽃이 기어오른 장미는 포박에 헐떡인다. 엊그제 맘먹고 낫 두개를 사온 터라, 오전 내내 보스코와 내가 전쟁놀이를 했더니 오후에는 축대가 말끔해졌다.


내일 남해 언니네 가는데 호도파이를 사가려고 산청과 함양 제과점에 두루 문의를 해도 파는 데가 없다. 시골에서는 남사스러워선지 고급스러워선지 파이를 찾는 고객이 아예 없단다. 내일 결혼기념일을 맞는다는 언니가 파이를 엄청 좋아한다던 말이 생각나서 저녁에는 아예 내가 파이를 구웠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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