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불평등이 만들어낸 우리 시대의 ‘괴물’
  • 지성용
  • 등록 2018-04-16 18:07:49
  • 수정 2018-10-01 16:26:30

기사수정


다음은 2017년 4월에 발간된 지성용 신부의 책 『복음의 기쁨, 지금 여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고 <가톨릭프레스> 시대의 징표 코너에 매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신문과 TV를 보면서 우리는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며 살아간다. 대한민국 사회의 경제적 지표는 세계 상위권이다. 문제는 경제적 풍요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상대적 소득격차로 인한 불평등과 박탈감을 자주, 여러 곳에서 느낀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개인에게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이 스트레스는 사회 곳곳에서 분출된다. 사회에서 분리된 ‘은둔형 외톨이’들이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부지불식간에 우리들의 아버지를, 어머니를, 아들과 딸을 괴물처럼 집어삼킨다.


정신분석학에서 괴물은 우리 내면에 있는, 그러나 우리가 바로 보고 인정하지 못한 억압된 것들의 귀환이다. 인정하지 못한 내면의 공격성, 두려움, 불안감 따위가 무서운 형상이 되어 혹은 낯선 사람이 되어 당사자에게 돌아온다. 영화 ‘괴물’에서 괴물은 도입부에서 한 생물을 사소하게 흘려 보낸 바로 그 지점에서 잉태된다. 일상을 위태롭게 하는 사회에 대한 불안, 그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에 대한 공포, 죽은 이들에 대해 못 다한 애도, 그런 감정들이 내면에서 억압된 뒤 외부로 쫓겨난 다음 괴물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사회가 불안하고 두렵다. 그런데 바로 이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는 우리들의 무관심과 우리들의 이기심도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가해자 그들은 대부분 가정폭력의 희생자들이었으며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다. 길에서 태어났다고 이름이 ‘길태’인 범죄자도 있었다. 대부분 고아원이나, 불우한 가정, 폭력가정에서 원만하지 않게 성장한 사람들이다. 그들에 대한 사회적인 보장과 책임이 있었다면, 불우한 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보살핌이 있었다면, 폭력가정에 대한 사회적 개입이 있었다면, 이들이 과연 이렇게 무서운 살인을 저지르는 괴물이 되었을까? 


오늘날 많은 곳에서 우리는 더욱더 안전한 삶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사회 안에서 그리고 다양한 민족들 사이에 배척과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 한 폭력이 뿌리째 뽑힐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못하는 민족들이 폭력을 유발한다고 비난을 받지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온갖 형태의 공격과 분쟁은 계속 싹을 틔울 토양을 찾고 언젠가는 폭발하기 마련입니다. (『복음의 기쁨』 59항)


사회 전체적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학력격차에 따라 임금 격차도 발생하며,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탄생시킨 우리나라 노동시장.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을 조달할 때 생산과정에서는 생산비가 발생하고, 유통과정에서는 거래 비용이 발생한다. 낭비를 유발할 정도라면 이런 비용은 줄여야 한다. 그 때문에 비용의 최소화는 경제활동의 기본 원칙으로 통한다. 이런 원칙을 가장 먼저 정식화시킨 사람은 19세기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다. 비용을 엄격히 통제하는 신경영기법에 힘입어 그의 회사는 당시 석유왕 존 록펠러에 버금가는 성장을 했다. 카네기 이후 ‘비용’은 이윤추구 기업들에 있어 무찔러야 할 ‘적’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줄여도 생산비와 거래 비용이 제로가 되는 경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 노력 없는 결실 없듯이 비용 없는 편익은 없다. 비용을 최소화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비용은 좋은 결실, 곧 행복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비용최소화 원칙을 아무 데나 적용하는 것은 문제다. 생산비를 줄인다고 임금 비용까지 줄이면 인간은 절대적 빈곤에 처하게 된다. 이 경우 인간들은 대부분 타락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흩어진다. 폭력, 사기, 절도는 물론 매춘에 의존하여 생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인간의 노동 없이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업은 누구보다 잘 안다. 따라서 사람을 줄일 수 없을 경우, 차별함으로써 비용최소화를 달성한다. 남녀 차별은 물론이고 요즘은 ‘비정규직’이라는 몰상식한 제도로 멀쩡한 사람들을 차별한다. 이처럼 ‘비용최소화 원칙’이 무분별하게 인간에게 적용될 때 ‘악마’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구조로 보자면 끊임없이 건축을 하는 본당이나 성지에서 교회 직원들의 횡령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것은 필연이다. 본당이나 교구청 혹은 교회기관에서 일하는 근무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대기업들의 노동현실만도 못한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신앙심만으로 그들의 기본 경제활동과 생존임금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2015년 동안 전국 15개 교구(군종교구 제외) 주보와 교구 홈페이지,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등에 게시된 구인공고 가운데 운영주체가 교구‧교구장 혹은 수도원이면서 정규직·비정규직을 표기한 구인공고를 확인한 결과 정규직 채용은 61(18.8%)건이었다. ⓒ 가톨릭프레스 DB


교회는 대부분 주말에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토요일, 주일은 가족들과 제대로 지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임금체계나 연봉테이블, 계약문제를 보면 한 가정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임금으로는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노동삼권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이미 시대의 상식이 되어버렸는데, 교회 관련 병원이나 교구청 혹은 본당 사무직 노동의 조합이나 노동자 단결권은 없다. 조합자체를 봉쇄 한다.


300명이 넘는, 피어보지도 못한 꽃들이 바람에 실려 세월의 저편으로 흘러가 버렸다. 모두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 받으려 했던 자들이 낸 헌금과 기부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종교의 사회적인 책임과 ‘종교자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정치가 종교와 결탁하고, 자본이 종교와 결탁할 때 얼마나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준 사건이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남미 최고의 잘사는 나라, 나아가 미국과 어깨를 견줄 만한 세계 5대 부국에 꼽혔다. 넓디넓은 땅에서 경작한 곡물과 초원에서 키운 가축을 제1차 대전으로 황폐화한 유럽에 싣고만 가면 엄청난 돈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에 그 부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89-99년에 집권한 메넴 (Carlos Saul Menem Aki: 1930- )은 아르헨티나를 극도로 피폐화시킨 주범이다. 그는 열심한 가톨릭교회 신자였고 정권과 교회는 긴밀한 유착관계에 있던 터였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국영기업 해외매각 등 어설픈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메넴의 정책은 국영항공, 국영통신업체, 은행, TV채널, 라디오방송, 일정구간의 도로, 석유채굴권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것도 모자라 주민등록증 발급사업, 심지어 국세청의 업무까지 외국기업에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는 외채 1400억 달러라는 참담한 현실이었다. 국민총생산이 1200억 달러임에도 국영기업을 판 돈 1600억 달러를 1천명의 부자들이 고스란히 외국으로 빼돌렸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인구의 절반이 빈곤층이다. 하루에 평균 50여명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죽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악이 발생하는 근원에는 정치적 부패와, 종교의 체제 유지협력, 가진 자들의 독식, 나눔 없는 나뉨, 그로 인한 불평등 심화와 사회적 폭력의 증가, 불안과 두려움의 증폭, 불신용, 불관용이 있고 이로 인해 사회적 통합은 저해된다. 결국 흩어진 공동체의 힘은 더 이상 공동체의 미래에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데 가톨릭교회가 적극 협조 했다는 것을 우리는 과연 ‘신의 섭리’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영화 속 괴물은 죽지 않는다. 속편을 예고하는 대사를 남겨둔 채 사라질 뿐이다. 인간 내면에는 원초적 불안과 공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괴물은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공동체 구성원이 두려워하는 권력의 대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자본, 종교, 이념, 등이 괴물이 될 수 있다. 괴물의 폭력성은 지역감정이나, 세대, 이념, 인종적인 문제에서 더욱 커다란 파괴력을 갖는다. 불안한 사회일수록 더 많은 괴물을 낳고, 두려워하는 사회가 더욱 공격적인 괴물을 창조한다.


▲ (사진출처=영화 ‘괴물’ 스틸컷)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