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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지 맙시다 : 공동체 안에서 사목자들의 진정성
  • 지성용
  • 등록 2018-06-04 14:28:32
  • 수정 2018-06-11 18: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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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17년 4월 발간된 지성용 신부의 책 『복음의 기쁨, 지금 여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고 <가톨릭프레스> 시대의 징표 코너에 매 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사목자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신자들이 스스로 조정할 수 없는 문제들만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들이 하고 있거나 할 수 있는 조정에 사목자가 개입하면 그 공동체나 본당은 구성원 전체가 리더가 되는 공동체로 성장할 수 없다. 


잘 발달된 공동체일수록 지도자 없이도 문제를 해결해 낸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사목자의 눈에 어떤 부족함이 보여도 다른 공동체의 일원들이 그것들을 알아 챌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흔히 유약한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겠지만 이런 기다림은 꼭 필요하며 지도자가 통제욕구를 버려야만 비로소 가능해 진다. 역설적이게도 공동체 형성과정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사람은 가장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다.


사제와 수도자들은 자신이 이미 사회적 분위기와 인식 아래서 ‘들어 높여진’상황이기 때문에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벽해 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적어도 ‘그렇게 보여야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완벽주의는 어떤 측면에서든 위험한 것이다. 더구나 영성이나 도덕적인 부분과 같이 인간 삶의 총체적인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은 사실 영적이고 도덕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완벽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실패와 약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건강하지 못한 태도나 속임수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패나 약점이 드러나면 어떤 사목자는 화를 통제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화를 묻어버리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수도자는 특정상대가 아닌 무고한 사람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어떤 성직자는 상대와 대면하지 않고 폭식, 흡연, 음주, 약물남용, 혹은 무자비한 자책으로 스스로를 파괴한다. 


이처럼, 화를 인정하고 건강하게 표출하는 법을 찾지 못하면 화는 비정상적으로 병들거나 비생산적인 출구를 찾는다. 따라서 스스로 화를 지배 하지 못하면 화는 사목자 자신과 주위 신자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 화를 낸다고 해서 반드시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화를 키워 곪게 만들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왜곡된 감정으로 변이를 일으키게 되고 이는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화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성직자나 수도자들에게는 중요한 심리적, 영적 지점이다. 이것은 인간관계나 환경 또는 자기 자신에게 무언가 잘못된 일이 일어났다는 신호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화는 다른 감정들과 차단된다. 실제로 거기에는 성숙을 위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실수들도 반드시 있기 마련인데 그것들을 은폐하다가 온전한 자기 성장에 실패하는 경우들이 많다. 


다른 이들의 기대, 가령 신자들이 사제와 수도자에 대한 기대는 이 같은 태도를 더욱 더 확고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사제와 수도자들은 이 같은 은폐를 더욱 강화하고 교구나 수도회의 장상, 언론과 공동체가 자신에게 언제나 완벽을 요구하며, 무엇인가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을 강력히 비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자신의 약한 면을 숨기거나 외면하려 하지 말고, 또 남을 치유하려 하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타인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그들의 즐거움과 고통을 모두 끌어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잘 구별할 수 있도록 식별해야 한다. 변화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21) 그리고 다시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라디아 6,9) 우리 모두에게는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누군가에게 화가 나 있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주님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시다. “주님, 저는 이 사람에게, 또 저 사람에게 화가 납니다. 저는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내가 화를 내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사랑을 향해, 그리고 복음화를 향해 내딛는 아름다운 발걸음입니다. 오늘 기도합시다! 우리 스스로 ‘형제적 사랑’이라는 이상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 (『복음의 기쁨』 101항)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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