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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은 그냥 씨를 뿌리고 거두시는 몫은…
  • 전순란
  • 등록 2019-04-01 10: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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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9일 금요일, 맑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내게로 오는 날은 나는 꽃으로 방을 꾸미고 마음으로 사람을 받아들인다. 밭에 나가 보니 만발한 노랑색 유채꽃이 천년의 지리산 앞에서 단 며칠의 화려함을 내보이기 부끄러운 표정인데 지리산은 빙그레 미소로 답한다. ‘너 참 아름답다.’ 나는 천기를 누설하는 이들이 주고받는 은밀한 대화에 매시간 가슴 설렌다.


부엌에서 오이 피클을 만들고 밀가루 반죽을 한다. 내일 오는 손님 저녁으로 피자를 구울 생각이다. 시골에서의 삶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고, 반대로 고달프고 힘들 수도 있지만 각기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어떤 눈으로 그 삶을 바라보는가가 행불행을 결정짓는다.


오늘 저녁에 경북 영주 하망동성당에서 보스코가 ‘사순절 특강’을 하기에 1시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늦은 시간에 아침을 먹었기에 점심은 건너 뛰면 좋으련만 그는 끼니를 건너뛰는 일이 거의 없다. 하는 수 없이 김치죽을 쑤어 간단하게 차려주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검은 승용차가 마당 안으로 들어온다. 약속한 사람도 없고 올 사람도 없지만 진이네가 산너머 블루베리밭으로 일 나갔으니 누구네 손님이라도 우리가 맞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우리 집 손님이었다.


여수의 양그레고리오 선생님이 작년 9월(30일)에 휴천재를 찾아오셨을 적에 약속하신대로, 휴천재에 심어주러 꽃나무를 한 차 실어오셨고 꽃을 함께 심을 도우미아저씨까지 모시고 온 길이었다. 유난히 아름다운 분홍색 장미가 그분의 SNS에 떠 있기에 그 장미 뿌리 좀 내려 분양해주시면 좋겠다고 지나는 말로 부탁드렸는데 약속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신 것이다.



내가 워낙 ‘꽃욕심’이 많아 꽃을 보는 대로 욕심을 부려왔는데, 스치는 바람에도 섬세하게 흔들리는 꽃잎처럼, 타인의 혼잣말을 고이 받아 당신 마음에 뿌리내려 이렇게 키워서 안고 오시다니! 감격스러웠다. 봄꽃을 한 아름 안고서 찾아온 봄 손님을 대접할 겨를도 없이, 영주에서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려면 어쩔 수 없이 떠나야했기에 소담정 도메니카에게 두 분을 맡겨 커피대접이라도 했다지만 언젠가 하루 모셔다가 맛난 음식이라도 대접해야겠다.


갈 길을 ‘상주처녀’에게 물으니 고속도로로 가지 말고 국도로 끝까지 가란다. 나 역시 고속도로 보다는 인간미 있는 국도나 지방도로를 선호하기에 그미가 일러주는 길로 갔다. 영주는 3번 국도를 따라 거창, 김천, 도메니카의 동네 상주, 문경까지 달리고 그 담엔 안동, 영주로 가는 국도를 잡는다. 봄이 한창이라 산과 들, 좁은 마을길마다 벚꽃 자두꽃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고, 논길로 달달거리는 경운기 위에서 부인은 졸며 가고 남편은 크게 하품을 하는 한가로운 정경이 넘넘 아름답다. 거창에서 지례까지 30킬로 정도를 빼놓고는 거의가 4차선 도로였고 오가는 차도 별로 없이 꼭 나를 위하여 닦아놓은 길 같았다.


영주에 도착하니 ‘계란 요리의 고수’ 배인호 신부님(봉화 주임: 얼마 전까지 사제단 총무)이 우리를 기다리다가 동행해 주셨다. 오늘 하망성당에는 안동교구 북부지구 신부님들이 모두 모여 계셨고, 우리 부부를 대접하는 저녁식사에도 함께 식사를 하고 평신도인 보스코의 강연도 다 함께 경청하셔서 안동교구만의 사제들간의 각별한 우애가 돋보인다. 총대리셨던 김신부님 말씀이 “교구 살림이 가난한데 우애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라며 당신네 교구의 화기애애함을 자랑스러워 하신다.



안동교구 북부지구 본당들의 공동주최로 이루어지는 특강이어서 이 행사를 위한 하망성가대의 특송이 먼저 있었다. 하망성당 위아래층 신자석이 가득 찼다. 경상북도의 보수당 지지층이 압도적인 지역이어서 “그리스도신자의 정치적 사랑”이라는 제목을 단, 보스코의 직설적인 사회교리가 불편하기도 하련만 그래도 시골의 순박한 신자들이어서 90분간의 강연을 조용하고 열심히들 들었다. 


씨뿌리는 사람은 그냥 씨를 뿌리고, 키우는 건 그들의 몫이고, 거두시는 일은 저 위에 계시는 분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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