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사법개혁,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나
  • 곽노현
  • 등록 2025-10-28 19:19:53

기사수정





법원은 모든 법적 분쟁에서 개인권리와 법질서의 최후보루다. 사법부의 가장 확실한 성공지표는 재판의 공정성과 전문성, 신속성에 대한 소송당사자와 일반시민의 신뢰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소송당사자는 물론이고 시민 모두는 권리가 침해될 때 충실한 심리와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다르지 않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런 기대의 현실적 충족수준은 사법 신뢰도나 만족도 조사로 드러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각종 사법신뢰도 국제비교평가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한다. 시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사법제도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으로서는 불편하고 세계를 향해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들이 믿고 맡길만한 선진 사법제도를 만들어내야 하는 본격적인 사법개혁 과제를 피할 수 없다.


사법개혁의 핵심목표는 법을 내세운 공권력의 지배나 법조엘리트의 지배가 아니라 사심과 욕망 없는 보편지성으로서 법의 지배를 확립하고 국민들에게 공정하고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충실한 재판을 받을 사법적 권리를 강화하면 다른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덩달아 강화된다. 사법적 권리는 권리침해를 배제하고 피해를 복구함으로써 모든 권리를 살아있는 현실로 만드는 으뜸권리이기 때문이다. 간과되기 쉽지만 사법개혁이 정치경제개혁보다 더 근본적이고 토대적인 이유다.


우리사법부는 국제기준에 비춰보면 ‘갈라파고스’ 사법부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선진국의 사법부라고 자부하기 어려울 만큼 일종의 갈라파고스 상태를 면치 못한다. 선진국들의 보편적인 기준에서 볼 때 한국사법부는 고립되고 낙후한 별종이다. 소득기준 상위 20대 선진국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인구대비 판사 수가 적은 나라는 일본을 빼고는 어디에도 없다. 대체로 우리나라에 비해 2배는 기본이고 3배 안팎이 더 많다. 우리나라처럼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대법원장 1인에게 전속시킨 ‘제왕적대법원장’의 나라도 어디에도 없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호주, 네덜란드, 스웨덴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개도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매년 정기인사 때마다 대법원장의 전보명령에 따라 법관 수백 명이 진행 중인 재판을 일제히 중단하고 다른 임지로 떠나는 진풍경도 우리나라밖에 없다. 재판과정에 배심원이나 참심원으로 참여하는 일반시민의 수가 연간 1,500명도 안 되는 시민의 사법참여 꼴찌국가도 우리나라다. 대법관과 고위법관들이 퇴임하고 변호사 개업을 하는 나라도, 이른바 전관예우가 횡행하는 나라도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우리사법부는 경쟁주의 교육시스템의 최고우등생들이자 시험능력주의의 최후승자들로 구성돼있다. 누구도 우리나라 판사들의 지적역량과 학업능력, 성실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어째서 이렇듯 우수한 엘리트집단이 모인 사법부가 국제기준으로 보면 갈라파고스 신세를 면치 못하고 덜 진화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판사집단이 못 나서는 아니다. 최고엘리트집단이 그럴 리 없다. 비교사법정보에 어두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매년 외국사법제도 연구목적으로 국비유학을 다녀오는 판사 수가 적지 않다.


판사들이 우리나라의 예외적이고 위계적인 사법시스템에 길들여지고 순응한 결과다. 갈라파고스 섬에서 법복귀족으로 특권을 누리며 사는 것에 익숙해진 결과다. 선진외국의 정의로운 사법제도를 모르지 않지만 대법원장이나 동료법관들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결과다. 이런 현상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먹고 사법부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이른바 고시세대와 연수원세대일수록 심하다. 법조엘리트사회의 정점으로 갈수록 사법시스템의 구조적, 제도적 문제에 눈감고 본인의 권력엘리트성에 크게 눈뜨며 기성권력을 향해 더듬이를 세우는 권력순응파와 기득권옹호파가 된다. 결과적으로 대법원과 대법관은 지금의 갈라파고스 사법시스템을 혁파하고자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대법원 개혁이 가장 고난도 사법개혁 과제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다.


대법원이 반대하면 정치권이 존중했으나 이번엔 다르다


대법원은 이 글에서 주장하는 모든 사법개혁안에 일단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이 아주 높다. 대법원이 확실하게 반대하면 아무리 국민이 원하는 사법개혁안이라도 정치권은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 오랜 정치 관행이었다. 사법영역에서 최고전문가를 자임하는 대법원의 입장을 비전문가인 정치권이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판사출신 국회의원들이 전투적으로 대법원의 입장을 옹호한 것이 대법원 필승의 공공연한 배경이었다.


실은 현실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대법원은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뇌물죄와 명예훼손죄 사안을 다루며 국회의원의 정치생명을 좌지우지한다. 거대정당이건 유력정치인이건 대법원의 입장에 반대하며 날뛰다가는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법원이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피력하는 사법개혁안이 번번이 국회에서 좌절된 가장 현실적인 이유였다. 요컨대, 어떤 사법개혁안도 기득권 수호의 관점에서 대법원이 반대하는 순간 국회의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이번은 다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실패에도, 윤석열의 전임 대법원장 ‘수거’대상 지정에도, 윤석열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난입폭동사태에도, 지귀연 부장판사의 기상천외한 윤석열 구속취소결정에도 굳게 입을 닫았다. 그러나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재명의 선거법 상고심에선 근대사법사에 유례없는 빛의 속도로 유죄취지로 뒤집으며 대통령선거 개입야욕을 드러냈다. 다행히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으나 더 이상 절차를 진행하지 못해 이재명의 대통령 선출을 막는 데 실패했다.


군대를 동원한 친위쿠데타에 실패한 윤석열이 탄핵받고 구속기소된 것처럼 대법원을 동원한 사법쿠데타에 실패한 조희대 역시 그래야 마땅하다. 현재의 대법관 증원 중심 사법개혁 논의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절대다수 대법관이 집단 자살골을 넣어 수세에 몰린 비상하고 예외적인 정치상황에서 집권여당의 주도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법원의 공식의견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온 정치관행이 이번에는 깨지겠지만 그럴수록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본격적인 사법개혁안을 내놔야한다.


국민들은 대법원에 권리구제 최종심 역할을 바란다


그렇다면 어떤 사법개혁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불러올 수 있을까? 사법개혁은 첫째, 제대로 된 하급심 재판과 상고심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2023년 한 해 동안 대법원에 접수된 본안 상고사건은 총33,254건으로 민사본안이 12,152건, 형사본안이 21,102건이었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1인당 연간 2,771건, 월간 231건, 근무일 하루당 10건 넘게 결정해야 간신히 감당가능한 건수다. 이러니 대법원 재판은 13인 전원합의체 재판은 고사하고 4인 소부 재판도 겉치레일 뿐 사실상 주심대법관의 단독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대법원은 엄격한 상고허가제를 통해 상고사건의 1% 정도만 걸러내 전원합의체에서 제대로 처리하는 미국이나 영국의 대법원을 몹시 부러워한다. 어떻게든 그렇게 바꾸자는 입장이지만 우리국민들은 대법원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각종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국민들은 대법원이 통일적 법해석이 필요한 사안이나 판례변경이 필요한 사안 등 정책적으로 중요한 상고사안만 골라서 처리하는 이른바 정책법원 역할을 하기보다는 개별 상고사건에서 하급심의 법리오류를 걸러줌으로써 소송당사자의 권리보장에 만전을 기하는 최종법률심 역할을 해주기를 일관되게 바란다. 그래야 소송당사자들이 억울한 마음 없이 재판결과에 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대법원에 올라간 사건이 주심대법관 1인의 판단에 좌우되거나, 심지어 재판연구관의 판단에 좌우되는 건 우리국민이 바라는 바가 더더욱 아닐 것이다. 대법원 소부재판의 ‘3분 주심단독재판’ 실상을 알면 알수록 대법원 소부재판을 정상화해야할 필요성을 누구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우리나라보다 판사 수가 2~3배 많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법관 수를 대폭 증원해서 최종법률심으로서 제대로 역할 할 수 있게 해줘야 맞지만 그와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하급심법관을 대폭 증원해서 하급심재판의 충실화를 도모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상고사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5천200만 인구에 법관 3,200명이 있으니 인구 10만 명당 한국의 법관 수는 6.2명에 지나지 않는다. 대조적으로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산하의 유럽사법효율성위원회의 2024년도 유럽사법시스템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유럽평의회 회원국 44개국(2개 옵서버국가 포함)의 인구 10만 명 당 직업판사 중위(median)수는 17.6인이다. 21개국은 17.6인보다 조금이라도 많고 21개국은 17.6인보다 조금이라도 적다는 뜻이다. 중위 값 이하 유럽 나라들도 영국과 아제르바이젠, 덴마크(6.5인)를 제외하면 조지아(9.1인), 노르웨이(10.5인), 프랑스(11.3인), 스웨덴(11.7인), 스페인(11.9인), 이탈리아(12.2인), 벨기에(14.4인), 스위스(15.0인), 네덜란드(15.0인), 터키(17.4인)으로 우리나라(6.2인)보다 대체로 2배 안팎이 더 많다.


중부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은 판사 수가 10만 명 당 20인이 넘는다. 루마니아(22.9인), 독일(24.7인), 슬로바키아(25.7인), 리투아니아(26.1인), 헝가리 (27.7인), 폴란드(28.0인), 체코(28.2인), 오스트리아(29.4인)가 그렇다. 인구 10만 명 당 판사 수가 30인이 넘는 나라도 적지 않다. 불가리아(33.9인), 그리스(37.3인), 세르비아(39.1인), 슬로베니아(40.7인)가 그런 나라들이다. 유럽 최고의 선진국인 독일의 판사 수는 우리보다 4배, 오스트리아는 4.7배가 많다. 유럽의 중위 값만 해도 우리보다 2.8배나 많다. 우리나라 판사는 유럽 판사 3인 몫, 독일 판사 4인 몫, 오스트리아 판사 5인 몫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게 현실적으로 사법의 품질 저하와 불만족 증대로 귀결되지 않고 가능할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판사들이 아무리 우수해도 사건에 치이면 충실한 심리를 기대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소송당사자들의 사법 불신을 사게 된다. 대체로 1심 재판은 찔끔찔끔 5분씩 1달 간격으로 여러 차례 진행된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3년에는 소액사건이 아닌 민사사건의 경우 판결까지 평균 298일, 10개월이 소요된다. 1심 재판이 공판중심으로 충실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에 소송당사자와 변호사의 만족도와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럽 국가들과 비교수치는 우리나라의 법관 수를 지금보다 최소한 2배로 늘려야 하급심의 충실한 재판과 설득력 있는 판결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하급심재판을 충실하게 진행하면 상고사건이 자연스레 줄어들어 대법원재판도 충실을 기할 수 있다. 우리국민들은 대법원에서는 물론이고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도 충실한 심리와 정의로운 판결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만 법관의 절대적 부족으로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법관 수를 먼저 2배로 늘리려면 상당한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재판의 지연과 불신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그 수십 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대법관이 100명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4인 소부재판의 허울아래 사실상 3분 주심단독재판으로 진행되는 현실의 대법원재판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법관을 얼마나 늘려야 좋을지는 토론대상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법원장 포함 14인 대법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엄격한 상고허가제를 도입해서 연간 200건 이내의 중대한 사건만 심도 있게 처리하자는 대법원의 개혁안은 상고사건의 99.5% 이상을 사실상 2심제로 끝내자는 방안이라 국민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아주 낮다. 그보다는 대법관을 100명으로 늘려서라도 사실상 주심대법관의 ‘나홀로’ 재판시스템을 3~5인 재판부의 집단지성에 의한 재판시스템으로 바꾸되 전문재판부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만들어서 대법원재판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강화하자는 개혁안이 더 지지를 받을 것 같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민형사사건을 다루는 대법원 외에도 행정, 노동, 사회보장, 재정조세 등 전문분야를 다루는 최고법원을 4개나 더 두고 있으며 대법원도 분야별로 19개의 재판부를 두고 있어 고도로 전문화돼있다. 연방대법원은 민형사 상고사건만 다루는 데도 불구하고 대법관을 153명이나 둔다. 행정, 노동, 사회보장, 조세사건을 각각 다루는 전문화된 4개의 연방최고법원들을 다 합하면 대법관이 320명이 넘는다. 이탈리아는 대법관이 많기로 유명해서 350명이다. 프랑스도 대법관을 120명이나 두고 스페인에는 80명이 있다. 영미법계 국가들이 9인 안팎의 소인수 대법원을 운영하는 것과 달리 유럽 국가들은 다인수 대법원을 운영하는 데가 많다. 대륙법계 국가들은 영미법계 국가들과 달리 대법원과 별도로 헌법재판소를 운영하기 때문에 대법원이 이른바 정책법원의 역할보다는 권리구제 최종심 역할에 충실하길 바란 결과일 것이다.


우리대법원에는 재판연구관 수가 대법관 수에 비해 9.3배나 많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력법관 100명과 헌법연구자 30명, 모두 130명이나 되는 재판연구관들이 대법관의 업무를 지원한다. 상고사건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대법관 수를 늘리지 않으려니 재판연구관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재판연구관이 재판하는지, 대법관이 재판하는지 헷갈릴 정도로 대법관의 재판연구관 의존도가 높아진 게 문제다. 반면 2024년 현재 독일연방대법원에는 대법관 153명에 재판연구관이 75명이 있을 뿐이어서 1인당 지원판사가 0.5명에 지나지 않는다.


혹자는 미국처럼 큰 나라도 대법관을 9인밖에 두지 않는데 대법관 대폭 증원이 무슨 소리냐고 핏대를 올린다. 모르는 소리다. 미국은 50개의 지방(支邦)국가(state)로 구성된 연방국가(union)다. 미국연방대법원에 대법관이 9인만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전역에는 연방대법관 9인 외에도 50개 주의 주 대법관 344명을 포함해서 총353명의 대법관이 존재한다. 단일국가인 우리나라의 14인 대법관은 미국에서 연방대법관 9인과 주 대법관 334인, 합계 대법관 344인이 수행하는 최종심의 업무를 단독으로 수행한다. 이 점은 독일, 오스트리아, 인도, 브라질, 멕시코 등 다른 연방국가들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연방국가의 대법관 수를 우리나라의 대법관 수와 비교하기 위해서는 연방의 대법관 수 뿐 아니라 지방(支邦)의 대법관 수를 모두 합산해야 맞다.


대법관 권위가 떨어지고 대법관 사이에도 위계가 생긴다?


대법관 수를 더 늘리면, 예를 들어, 50명, 100명으로 늘리면, 대법관의 권위가 떨어져서 안 된다는 비판이 있다. 대법관의 권위추락 방지와 희소가치 유지는 대법원이 한사코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그러나 대법관의 권위는 최종심이라는 특성과 공신력에서 나오는 것이라 대법관의 수와는 별 관계가 없다. 분명한 것은 국민이 대법관의 권위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대법관이 국민의 권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대법원이 최종심답게 최대한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발휘하기를 바랄 뿐이다.


대법관 수를 늘리면 대법관들 사이에 일종의 직책과 위계 구분이 발생하기 쉽다는 점도 중요한 비판논거의 하나다. 예를 들어 대법관이 50명만 돼도 재판부를 여러 개를 두지 않을 수 없고 이 경우 재판부장 대법관을 따로 둘지를 결정해야한다. 독일연방대법원의 경우 재판부가 19개라 재판부장도 19인인데 재판부장 대법관은 따로 임명절차를 밟는다. 대법관 사이에 위계를 최소화하려면 선임 순으로 재판부장을 맡으면 된다. 이렇게 하면 모든 대법관이 임기 후반에 일정기간 재판부장을 맡겠지만 후임대법관과 직책이 다를 뿐 직위가 다르진 않을 것이다. 대법관 사이에 위계를 두는 방식은 최대한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대법관 수가 20인을 넘으면 사실상 전원합의체를 운영할 수 없어서 문제라는 비판도 들린다. 중대사건에 대해 심층적 심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다인수 대법원은 소인수 대법원의 전원합의체에 버금가는 여러 형태의 대재판부를 운영한다. 독일연방대법원의 경우 민사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장과 13개 민사재판부의 부장대법관으로 구성된 대재판부가,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장과 6개 형사재판부의 부장대법관과 일반대법관 1인씩으로 구성된 대재판부가 운영된다. 다른 전문재판부와도 관련 있는 복잡한 사건의 경우 2,3개 재판부의 합동재판부를 운영한다.


퇴직대법관에 대한 전관예우관행을 근절해야한다


사법개혁의 두 번째 목표는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이른바 전관예우 관행을 근절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계급사법 극복과 함께 이 부분을 사법개혁의 최우선과제로 인식할 개연성이 높다. 형사사건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 경향은 배심제만 잘 가동돼도 상당부분 억제된다. 전관예우 관행도 마찬가지다. 보는 눈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나쁜 짓을 하기 어렵다. 최근 들어 전관예우 관행은 대법관 출신한테 집중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본안판단을 받아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심리불속행 결정으로 끝나는 상고사안이 70%나 되기 때문에 대법관출신을 변호사로 써야 예비심사를 통과하는 데 유리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전관예우 관행을 없애는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가 대법관 임기연장이다.


지금의 임기 6년은 너무 짧다. 대법관들이 대부분 임기를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에 마치기 때문에 변호사 개업의 금전적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대법관의 임기가 임명권자/제청권자의 임기와 상당부분 겹치는 것도 문제다. 퇴임 이후를 걱정하는 대법관은 알게 모르게 대통령과 재벌, 로펌의 눈치를 볼 수 있고 이는 대법관의 독립성에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국입법례들이 대법관 임기를 대부분 10년으로 정하거나 아예 정년까지 보장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대법관임기를 최소한 10년으로 늘리든가 정년(70세)까지 보장해서 대법관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 대신 대법관 임기를 마치거나 정년퇴임한 후에는 변호사 개업을 금지하고 중재조정활동, 공적조사활동, 학술연구활동, 공익봉사활동으로 제한해야 한다. 대법관 경험을 변호사시장에서 현금화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규율하는 것이 국민의 사법신뢰를 높이는 지름길의 하나다.


제왕적대법원장 시대의 종식과 법관의 내부독립 보장


사법개혁의 세 번째 목표는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담당할 가칭 최고사법위원회를 헌법기관으로 신설해서 제왕적 대법원장시대를 확실하게 끝내고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데 있다. 대법관 제청권과 헌법재판관 지명권, 법원장 임명권 등 법관인사권을 최고사법위원회에 줘서 대법원장으로부터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한다. 


최고사법위원회가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갖는 새로운 헌법기관으로 구성되면 대법원장이 아니라 최고사법위원회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법원장 등을 임명한다. 이렇게 되면 중진법관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법원장이 되기 위해 중대한 사안에서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는 일이 사라진다. 대법관이 자신을 대법관으로 제청해준 대법원장에 대한 보은차원에서 민감하고 중대한 사안에서 은근슬쩍 보조를 맞추는 일이 사라진다. 법관이 재판도중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다른 법원으로 전보되는 일도 사라진다.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독점해온 제왕적 대법원장의 존재만큼 한국사법부의 갈라파고스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제왕적 대통령은 직접 발탁한 제왕적 대법원장을 통해서 정권적 차원의 중대하고 민감한 사건에서 본인의 뜻을 관철할 수 있었다. 과거의 군사독재정권과 권위주의정권은 제왕적 대법원장제도를 통해서 말 안 듣는 일선법관들을 솎아내고 순치시켰다.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선진국 대한민국의 사법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치스런 사법제도이자 한국사법사의 불명예로 남은 중대한 정치판결들의 배후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장의 법관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가칭 최고사법위원회로 넘겨주는 것은 최우선순위 개헌사항이다. 최고사법위원회의 권한과 구성,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검토와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다. 핵심쟁점은 사법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어디까지 보장할지, 다시 말해서 대통령과 국회의 관여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비법조인이나 비법률가 출신을 얼마나 포함할지라고 할 수 있다. 판사임용위원회와 판사징계위원회를 따로 떼어내서 별도로 두는 분권형 입법례도 없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각 심급별 판사대표들이 최고사법위원의 과반수를 구성한다. 여기서는 외부의 관여를 최소화해서 사법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수록 더 엄격한 법관윤리가 요구되고 그를 위반할 경우 더 강력한 법관징계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국시민의 3중 사법참여통로 : 배심제, 참심제, 치안판사제


국민의 재판참여와 사법감시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본격적인 사법개혁의 네 번째 목표이자 방향이다. 우리나라처럼 사법부가 직업법관만으로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나라는 드물다. 국민의 사법주권을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보장하는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과 영연방의 대부분 나라들은 비법률가 출신의 일반시민을 치안판사로 임명해서 경미한 형사사건과 가족법사안을 맡긴다.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에서만 2024년4월 현재 14,576명이 치안판사로 일한다. 웬만한 도시에는 치안판사법원(magistrates court)이 따로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액심판판사와 형사단독판사가 수행하는 재판업무의 90%이상을 영국에서는 치안판사 3인 합의부가 수행한다고 보면 된다. 놀랍게도 치안판사법원이 형사사건의 95%를 처리한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선 고용, 사회보장, 의료, 이민, 조세 등의 특정분야를 다루는 전문분야 심판소(tribunal)가 많은데 여기에는 해당분야의 비법률가출신 전문가들이 참심원으로 참여한다. 전문심판소 판사 1인과 시민전문가 참심원 2인이 함께 사건을 심리,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다양한 전문심판소에서 비법률가 참심원 역할을 수행하는 시민전문가가 2022년 현재 3천3백 명에 달하고 민사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한 시민도 11만 명이 넘었다. 요컨대 영국의 시민들은 배심원이나 치안판사, 참심원으로 사법과정에 깊숙이 관여한다. 극소수의 형사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해서 권고적 효력을 가진 사실관계 평결만 가능한 우리나라 시민들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영미법계 국가들은 배심제와 치안판사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독일을 위시한 대륙법계 국가들은 시민의 사법참여방식으로 배심제보다 참심제를 더 활발하게 사용한다. 사실관계만 판단하는 배심제보다 사실관계에서 최종판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법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참심제가 더 적극적인 시민참여방식으로 여겨진다. 


참심원은 일정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는 전문가들이다. 주로 노동, 사회보험, 조세, 가사, 이민 재판에서 전문성을 보탠다. 그때그때 무작위 추첨으로 뽑히는 배심원과 달리 참심원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일정한 절차를 거쳐 임명되고 보통 3,4년의 임기가 있으며 명예법관이나 시민법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2020년 기준 참심원 수가 123,126명에 달했고 스웨덴에서도 2022년 기준 참심원 수가 9,035명이나 됐다. 전문가 참심제가 몹시 활성화되고 뿌리내렸다는 얘기다.


미국배심제는 누구에게나 살아있는 현실이다


배심제가 가장 활발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헌법에 따라 형사소송 뿐 아니라 민사소송에도 배심재판을 요구할 수 있고 중범죄인의 경우 기소여부 판단에도 배심재판을 요구할 수 있다. 기소판단에는 12인~23명의 대배심이, 민형사소송에는 9인으로 구성된 소배심이 붙는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미연방과 50개 주에서 배심재판에 무작위로 소환되는 시민 숫자가 연간 1천만 명이 넘는다고 추정된다. 소환장을 받아든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면제사유에 해당하거나 선발과정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실제로 배심원으로 활동하는 숫자는 이보다 작겠지만 배심원 복무는 일반시민에게 체감되는 시민적 의무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미국연방법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4회계연도에 민형사소송의 소배심원으로 255,335명이 소환돼 163,083명이 복무했으며, 형사기소 대배심원으로 98,324명이 소환돼 78,398명이 복무했다. 이 정도라면 미국 50개 주의 주 법원과 지방법원이 연간 1,0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을 배심원으로 소환한다는 통계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미국에서 시민의 배심원 참여는 살아있는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참여 재판이 2008년부터 도입돼 사안에 따라 5인, 7인, 9인 배심재판이 열린다. 그러나 매년 150건을 넘지 못하고 배심원으로 참여한 시민 수도 1천500명을 넘지 못할 만큼 실적이 저조하다. 형사소송에서 일부범죄에만 허용되고 평결에 구속력이 없는 탓이 크다.


무죄주장사안과 정치범죄사안은 반드시 배임재판으로!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무죄주장사안, 정치범죄사안, 명예훼손 등 표현의 자유 사안 등에는 필수적 배심제를 도입하고 웬만한 형사범죄사안에 대해서는 선택적 배심제를 도입해서 시민의 배심참여를 활성화해야한다. 아동, 노동, 사회보장, 상사, 지적재산권, 의료, 이민, 조세 등 전문분야에서는 참심제를 도입해서 전문가의 사법참여를 실질화해야 한다. 사실인정 권한만 독립적으로 갖는 일반시민 배심제에 비해 전문가 참심제는 법률해석과 평결과정에도 참여하기 때문에 사법과정에 통합정도가 높고 배심제에 비해 인원이 적어서 비용 효율적이다. 영국식의 치안판사제는 매우 강력하고 독특한 시민참여제도이지만 이미 변호사 공급과잉 현실에서 비법률가 치안판사제를 도입하자는 방안은 당위성과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배심제나 참심제를 통한 시민의 사법참여는 사법과정에 일반시민의 상식과 전문가의 식견을 보탤 뿐 아니라 외부의 사법감시를 가능하게 한다. 시민의 사법참여가 활성화되면 법관이 조금 더 신중하고 책임 있게 처신할 수밖에 없다. 계급사법과 전관예우도 상당부분 제어될 수 있다. 시민의 사법참여는 주권자를 주권자답게 만든다. 국가의 입법권이나 집행권과 마찬가지로 사법권 역시 국민에게서 나오는 권력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국민의 사법참여 활성화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제도설계에는 많은 검토가 필요하지만 그 방향만큼은 의심할 이유가 없다. 국민발안권과 국민거부권 개헌으로 시민의 입법참여와 정책참여를 활성화해서 주권자를 주권자답게 만들어야하듯이, 대법원 개혁과 배심제/참심제 개헌으로 시민의 사법적 권리를 강화하고 시민의 사법참여를 활성화해서 주권자를 주권자답게 만들어야 한다.


법원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도입해야한다


본격적인 사법개혁의 마지막 목표는 법원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함으로써 개인의 기본권보장에 만전을 기하고 헌법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공권력의 작위 또는 부작위로 말미암아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은 누구든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대원칙이다. 법원판결은 사법공권력의 작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헌법소원 대상이 되는 데 문제가 없지만 국회가 헌법재판소법을 만들 때 대법원의 강력한 반발로 ‘법원의 재판은 제외한다’는 명시적인 문구를 삽입해서 재판소원을 금지했다.


재판소원은 현재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 몇 나라에서 시행중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2023년 한 해 동안 4,296건의 재판소원을 받았으나 55건(1.16%)만을 인용했을 만큼 까다롭고 엄격하게 재판소원제를 운영 중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원심법원이 기본권의 의미와 중요성을 간과했거나 기본권의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경우 등 명백한 헌법위반이 있는 경우에만 개입한다. 단순한 법률적용 오류나 사실인정 오류는 심사대상이 아니다. 재판소원을 인용하는 경우에도 원심법원을 대신하여 사실관계를 확정하거나 유무죄나 손해배상 등 사건의 실체에 대해 직접 판단하지 않는다. 원심판결의 기본권침해를 확인하고 올바른 헌법해석에 부합하게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환송할 뿐이다. 이는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일반사건의 제4심으로 기능하는 최고항소법원이나 초상고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재판소원 인용률이 1%대로 매우 낮은 편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런 결과는 한편으로는 재판소원 심판권한 행사에 대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강한 절제력과 엄격성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헌재의 재판소원 심판권한 덕분에 일반법원의 헌법감수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경험은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재판소원제를 도입해도 헌재가 하기 나름으로는 이른바 제4심이나 초상고심으로 남용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개인의 기본권보장과 헌법의 실효성강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지적해야할 사항은 헌재가 위헌법률심사권에 의한 입법통제권을 넘어 위헌판결심사권에 의한 사법통제권까지 가질 경우 헌재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헌재의 구성을 3부 구성주의라는 미명아래 대통령이 직접 3인, 대통령의 여당이 1.5인, 그리고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3인을 지명하는 지금의 제왕적대통령 주도방식은 곤란하다. 이는 헌법재판관 9인 중 대통령과 정치성향이 비슷한 헌법재판관을 7.5인이나 포진시킴으로써 자칫 헌재판결의 정치편향성으로 귀결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6년밖에 안 되는 점도 헌법재판관이 지명권자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크게 걸린 중대사안에서 지명권자를 의식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요인이다.


헌법재판소를 명실상부한 헌법수호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헌법재판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첫 걸음은 헌법재판관 지명권을 국회로 통일해서 정당별 의석수에 비례해서 지명권을 나눠주는 데 있다. 이렇게 해서 헌재구성의 정치적, 사회적 다양성을 강화하고 임기를 10년으로 늘려서 지명권자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줘야한다. 모두 개헌사항이다. 이것이 최소한이라면 최대한은 일정자격을 갖춘 헌법재판관을 국민직선으로 뽑는 방안이다. 교육감을 무당적 선거로 뽑듯이 헌법재판관도 무당적 선거로 뽑으면 된다. 참고로 이미 미국에서는 50개 주 가운데 대법관을 정당선거로 뽑는 주가 7개, 무당파 선거로 뽑는 주가 13개나 된다.


사법개혁은 정치권이나 대법원이 주도해서는 안 된다


사법개혁의 큰 방향으로 이 글은 하급심재판 충실화를 위한 법관 대폭증원과 상고심재판 충실화를 위한 대법관 대폭증원, 제왕적 대법원장제 혁파, 시민의 사법참여 활성화, 재판헌법소원 도입, 일정직위 이상 법관의 변호사개업금지 등 전관예우 근절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조정과 화해, 중재 등 대안적 분쟁해결방법 확대와 하급심 판결 전면 공개처럼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언급조차 못한 대형 개혁과제들이 여럿 더 있다. 


사법개혁 논의는 최소한 위의 일곱 주제는 물론이고 법관에 대한 징계와 손해배상책임 인정 등 법관책임 강화방안을 종합적으로 다뤄야한다. 최근 민주당의 주도로 진행되는 대법관 증원 중심의 사법개혁 논의는 하나하나는 충분히 타당하더라도 종합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대법원 장악 목적을 의심받는다는 점에서 국민주권정부의 본격적인 사법개혁안으로 자리매김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건 대통령이나 국회, 또는 대법원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사법개혁논의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본래 사법개혁방안을 논의할 때는 사법전문가인 판검사들과 변호사들, 법학교수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대법원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문제는 대법원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이해충돌문제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서 대법원은 국민의 입장보다 판사직역주의를 앞세우며 판사들의 입장, 그것도 대법관의 입장을 대변할 가능성이 높다. 최고의 사법전문가인 대법원의 입장을 경청하되 결코 결정력을 줘서는 안 되는 이유다.


종합적인 사법개혁에 필요한 개헌과 입법은 거대양당과 국회가 주도하기 때문에 국회가 사법개혁특위를 만들어서 사법개혁을 주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거대양당과 소속의원들은 형사소송이 이것저것 많이 걸려있어서 대법원에 대해 약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대법원이 강하게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웬만하면 들어주게 돼있다. 그나마 대법원과 법조직역주의의 강한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통령직속으로 판검사와 변호사, 법학교수 외에도 사법이용자대표, 사법피해자대표를 포함하는 범국민적 사법개혁위원회를 설치해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쉽게도 노무현 정부 이후 지금까지 본격적인 사법개혁위원회가 가동되지 못했다. 지금이 다시 본격적인 사법개혁을 추진해야할 최적기다.


내가 보기에 조희대 대법원과 지귀연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특검 수사와 국회 탄핵소추를 통해서 응징하고 사법제도 개혁과 별개로 접근해야 맞다. 나는 이재명 정부가 대통령직속으로 사법개혁위를 설치, 운영해서 종합적인 사법개혁을 완수할 시대적 책임을 다해야한다고 믿는다. 향후 대통령직속 사법개혁위는 중대한 쟁점들에 대해 추첨시민의회를 운영하거나 숙의공론조사를 실시해서 학습과 토론, 숙의를 충분히 거친 일반시민의 의견을 알아보고 최대한 존중해야 바람직하다. 


공정하고 신속한 심리와 판결은 법조계에는 의무이지만 시민에게는 권리다. 최종결정권은 위임받은 권력에 지나지 않는 대법원이나 사법개혁위가 아니라 언제나 주권자 시민의 집단지성과 집단의지에 맡겨져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인권위원회>에도 실렸습니다.


[필진정보]
곽노현 : 전 서울시교육감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