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지구촌은 끝이 보이지 않는 비극의 늪에 빠져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은 종전의 기미 없이 장기화의 길을 걷고 있다.
매일같이 무고한 민중의 피가 대지를 적시고, 평범한 이들의 삶의 터전이 잿더미로 변해간다. 전 세계 시민들은 묻고 있다. 왜 이 참혹한 전쟁은 끝나지 않는가?
현상을 도덕이나 명분이 아닌 '자본의 흐름'과 '구조적 역학관계'로 바라볼 때, 우리는 냉혹하고도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압도적으로 이기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패배하지도 않도록 약한 쪽에 끊임없이 자금과 무기를 대며 전쟁을 질질 끄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 전쟁의 장기화를 통해 자신들의 무력정치체제를 공고히 하고 막대한 부를 챙기는 자들, 이들이야말로 평화를 방해하고 인류의 미래를 인질로 잡은 '지구촌 공공의 적'이다.
이러한 의심은 결코 철없는 음모론이 아니다. 일찍이 세계 최고 강대국의 정점에서 이 거대한 괴물의 탄생을 경고한 군인이 있었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미국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다.
그는 1961년 퇴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위험성을 역사에 선명히 각인시켰다.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거대 군사 조직과 방위산업의 결합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적 절차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그는 피를 토하듯 예언했다.
그 예언은 65년이 지난 지금, 잔인한 현실이 되었다. 최고의 지식인 노암 촘스키가 평생을 걸쳐 폭로해 왔듯, 전쟁이 길어질수록 가장 크게 웃는 자는 전쟁터의 군인이나 민중이 아니다. 워싱턴의 로비스트들과 거대 방산 기업들이다. 그들에게 전쟁은 인류의 재앙이 아니라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게 해주는 '비즈니스'이자 기회의 시장이다.
그들은 평화를 '위협'으로 여긴다. 진정한 평화가 오면 거대한 군사 예산을 편성할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체제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적을 만들고 공포를 조장하며 '통제된 혼란'을 획책한다.
국제정치학의 거두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분석처럼, 강대국은 결코 도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미국과 서방이 약소국을 앞세워 대리전을 치르게 하고 무기를 대는 본질은, 자신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라이벌 국가의 국력을 소모시키고 자국의 군사적 헤게모니를 공고히 하려는 냉혹한 계산이다.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 짚었듯, 이 자본주의 세계 체제는 강대국 중심부의 이익과 체제 유지를 위해 주변부 민중의 희생을 당연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평범한 민중에게 전쟁은 절대적 비극이지만, 군산복합체와 이에 기생하는 정치·자본 카르텔에게는 권력과 부를 증식하는 수단이다. 아이젠하워가 말했듯, 이 파괴적인 체제에 투입되는 모든 총과 로켓은 결국 굶주리는 이들의 배를 채우고 추위에 떠는 이들에게 입혀야 할 민중의 복지와 의료, 교육 예산을 훔치는 행위와 다름없다. 전 세계 시민들이 고물가와 식량 위기, 에너지 폭등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는 동안, 그들은 안전한 후방에서 타인의 피를 자양분 삼아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돌이켜보면 역사는 언제나 같은 패턴을 반복해 왔다. 권력자가 도발하면 민중이 응징했다. 로마의 폭정에 맞선 평민들의 성산(聖山) 철수,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식민지 민중의 독립운동, 핵 공포에 맞서 국제 규범을 만들어낸 반핵 시민운동까지 — 도발하는 권력에 맞선 민중의 응징이 역사를 전진시켜 왔다. 지금 이 순간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오늘의 적이 국경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군산복합체와 전쟁 자본은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 카르텔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응징 또한 지구적이어야 한다.
유엔은 강대국의 거부권 앞에서 이미 무력함을 드러냈다. 유엔만으로는 안 된다. 유엔과 쌍으로 작동하는, 국경을 넘는 민중의 강력한 연대체가 필요하다. 전쟁 비즈니스의 수혜자를 감시하고, 그 이름을 기록하고, 그 자본의 흐름을 추적하며, 전쟁을 부추기는 자들에게 정치적·경제적 대가를 치르게 하는 상설적 연대 구조 — 이것이 오늘의 민중이 역사 앞에 세워야 할 응답이다.
권력자의 도발에 민중이 응징으로 답하는 것, 그것이 역사의 문법이었다. 이제 그 문법을 지구적 차원에서 다시 써야 할 때다.
올해는 마침 6.10만세운동 100주년이자, 6월민주항쟁 39주년이다.
▲ 100년 전, 일제강점을 규탄하는 6.10만세운동이 글은 <불교닷컴>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