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가 서소문을 어떻게 성지로 조성해놓고 있는지 그 실태를 확인하고, 성지 성역화 사업이 진정으로 복음정신에 입각해 이웃종교와 역사를 배려하는 사업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 천주교 개혁연대 >는 지난 13일, 서소문 형장을 내려다보는 중림동 약현성당을 시작으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비롯해 성지 일대를 둘러보았다.
서소문은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당시 평신도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언한 44명의 성인이 순교한 장소인 동시에 한국 역사의 관점에서는 전봉준, 홍경래 등 동학 및 천도교 인물들과 허균 등 조선시대 개혁주의자들이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진 장소다.
2018년 9월 교황청 인류화복음성 장관이 한국을 찾아 서소문 성지의 교황청 공식 선포 미사를 봉헌할 당시에도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희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의 역사적 장소를 단독으로 점유해서는 안 된다는 시위와 의견이 줄을 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특정 종교의 성지를 조성하는데 있어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것 역시 큰 문제라는 의견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천주교 개혁연대는 김유철 시인(마산교구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의 안내를 따라 서소문 성지를 실제로 돌아보고 그 실태를 확인했다.
이미 성인 기리고 있었는데, 또 다른 ‘성지 박물관’은 왜?
김유철 시인은 이미 약현성당이 서소문 형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며 44위 순교자 현양탑도 세워져있고, 약현성당 내부에는 서소문 순교 성지 기념관까지 있는 마당에 무엇이 더 필요하기에 서소문 성지 역사 박물관까지 지었는가에 의문을 표했다.
특히, 성직자들이 주로 순교한 새남터 순교지와 달리 한문으로 된 교회 서적을 한글로 번역하고 평신도에 의해 ‘총회장’으로 선출된 최창현 요한, 명도회 초대 회장을 지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등이 순교하는 등 평신도가 교회의 토대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데 과연 서소문 성지 역사 박물관이 어떤 도움이 되는가에도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관점에서 천주교 개혁연대는 이미 서소문에서 희생된 성인을 기리는 약현성당의 ‘서소문 순교 성지 기념관’과 서소문 공원에 위치한 ‘서소문 성지 역사 박물관’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주목했다.
한국천주교회 홍보시설인가 신앙 지킨 순교자들 기리는 성지인가
서소문 성지 역사 박물관으로 향하기 위해 서소문공원에 들어서자 가톨릭교회의 상징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공공장소인 공원 내에는 가톨릭교회의 제대가 놓여있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노숙자 예수’라는 이름의 벤치에 누운 노숙자상이 있었다.
서소문 성지 역사 박물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위치한 건축물에는 대표적인 박해의 연도와 함께 박해를 상징하는 칼 조형물이 붙어있었다. 서소문 형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은 다양했지만, 이 칼은 십자가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를 두고 김 시인은 “(서소문) 전부가 전 국민의 10% 밖에 되지 않는 소수종교인 천주교 땅이 되어버렸다”며 “역사공원이라면 천주교, 동학이 다 같이 있어야 한다. 천주교는 이를 되돌아 보아야 한다”고 짚었다.
서소문 성지가 과연 한국천주교회 홍보 전시관인지, 아니면 초기 한국천주교회를 위해 자기 신앙을 목숨으로서 고백한 평신도를 기리는 성지인지를 알 수 없었다. 이런 혼란은 성지 역사 박물관 안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먼저 특별전시관에는 나전 칠화 특별전이 진행 중이었는데, 나전 칠화 전시관 벽면에는 서소문에서 죽음을 맞이한 평신도들을 고문할 때 사용되었던 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 사회에는 다양한 사상과 신념들이 존재합니다’라는 상설전시관 초입의 문구가 무색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동학과 관련된 기록물과 천주교와 관련된 기록물을 함께 두면서도 갑자기 당대 일반 역사에 관련된 사료가 함께 전시되는 등 전시에서는 순교자들의 모습도, 당시 조선 후기의 모습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전시관 출구에는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한다’는 의미의 ‘월락재천 수상지진’이라는 문구가 누구의 발언인지 명시되지 않은 채로 적혀 있었다. 이 말은 한국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 베드로가 신유박해 순교 전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시구였다.
어찌보면 ‘사학’으로서 탄압을 받은 조선후기의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오히려 천주교가 동학, 천도교와 같은 다른 종교와 한국 전체의 역사를 경제적, 문화적 자본으로 짓누르고 이 자리를 차지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이러한 ‘박해’에 국가자본이 들어간 탓에 한국천주교회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쉽게 드러내기 어려워 그나마 공공시설의 성격을 유지하고자 교회의 존재를 ‘희석’시키려고 한 티가 나는 전시 형태였다.
특정 종교가 역사적 장소의 상징성을 점유해서는 안 돼
참석자들은 서소문 성지 박물관을 살펴본 이후, 가톨릭여성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박물관의 실태를 확인한 소감을 나누었다.
김유철 시인은 2011년부터 한국천주교계 언론 측에서 서소문 성지에 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며, 한국천주교회가 서소문 성지를 얻기 위해 교계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참석자들은 전시 자체의 목적성과 국가예산이 투입된 공공장소를 특정 종교가 점유하는 문제, 이러한 성지 조성이 과연 실제로 가톨릭신자의 신앙을 고취시키고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 천주교회를 홍보하는 효과가 있는가라는 실효성의 문제, 전국에 불고 있는 성지화·성역화 열풍 등을 논의했다.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은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그 아픔을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있었던 인천교구의 가톨릭회관 철거 사례를 들면서, 서소문과 같은 역사적인 장소들은 그 상징성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천주교회가 서소문 형장과 같은 역사적 장소의 상징성을 단독으로 점유하는 것을 두고 이러한 결과에 이를 수 있었던 기제인 종교와 권력 사이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면서 “이미 (종교가) 더 나은 사회로 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삶에 부담만 주는 부담덩어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이날 서소문 역사 박물관 탐방에는 우리신학연구소, 종교투명성센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등 천주교 개혁을 위해 연대하는 단체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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