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간지 기자 겸 프란치스코 교황 자서전 작가로 널리 알려진 오스틴 아이버레이(Austen Ivereigh)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담집 “꿈을 꿉시다: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Let Us Dream: the Path to a Better Future)이 오는 12월 1일 발표되는 가운데, 책 내용 일부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신간 대담집에서 임신중절, 위구르족, 야지디족, 로힝야족 등 소수민족 탄압 같은 보편적 인권문제부터 가톨릭교회 내 여성과 공동합의성 등에 관한 구체적인 교회 문제들까지를 두루 다루었다.
이번 대담집은 가톨릭노동청년회(Jenesse Ouvrière Chrétienne, JOC) 창립자 조셉-레옹 카르댕(Joseph-Léon Cardjin) 추기경이 주창한 '관찰, 판단, 실천'이라는 원칙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인생의 “코로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기 삶 속에서 큰 위기로 다가왔지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어준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교황은 21살, 신학교 2학년 때 심각한 폐질환에 걸려 “내가 누군지, 죽을지 살지도 몰랐다”고 회고했다. 이로 인해 우측 폐 상단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며 “그래서 나는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호흡기를 착용하고 숨을 쉬려 애쓸 때 어떤 느낌인지를 안다”고 위로했다.
교황은 독일에서 학위를 위해 공부했던 시절과 코르도바 예수회에서 지낸 약 2년 간의 시간을 “실향이라는 코로나”라고 표현하며 이러한 경험이 “약자와 무력한 이들에 대해 더 큰 관용과 이해, 용서와 공감을 가질 수 있께 해주었다”고 말했다.
특히 “중요한 일에는 시간이 걸리고, 변화는 반드시 필연적이며, 모든 일에 한계가 존재하지만, 예수가 그러했듯이 언제나 지평선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교황은 “이러한 개인적인 세 개의 ‘코로나’를 통해 내가 이해한 것은 많은 고통을 받는 와중에도 이를 통한 변화를 받아들이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라며 “자기 안으로 도망치면,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교황, 처음으로 “신장 위구르족, 박해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외에도 전세계 인권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던 중국 정부의 신장 자치구 위구르족 탄압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위구르족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는 튀르크계 민족으로 주로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UN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위구르족의 독립을 막기 위해 강제 사상교육이나 강제 수용을 해 비판을 받고 있다.
교황은 소외받은 이들의 상황을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다며 특히 세계의 문제를 '특정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당면한 문제'로 바라볼 것을 촉구했다. 그 가운데 교황은 “나는 로힝야족, 가여운 위구르족, 야지디족을 생각한다”고 발언함으로서 교황청-중국 주교임명권 잠정협정을 유지하기 위해 인권탄압에 침묵했다는 논란을 종식시켰다.
< Asianews >에 따르면 24일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발언에 “전혀 사실적 근거가 없다”며 “모든 인종이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 Wall Street Journal >은 25일 이러한 중국 외교부 반박이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삭제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교황은 마스크를 불태우고, 봉쇄령을 거부하며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코로나19 방역조치에 극단적인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자기 상상 속에서나 피해자일뿐”이라고 비판했다.
교황은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것이 국가의 근거 없는 강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보장체계의 혜택을 받을 수 없거나 직장을 잃은 이들을 외면하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이기적인 사람들이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또는 식수, 교육을 누리지 못하는 판자촌 아이들과 수입이 끊긴 가정을 위해서는 시위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군수물자에 사용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인류 전체를 먹이고 모든 아동의 교육에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도 시위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라며 “이런 문제에는 절대로 항의하지 않는 것은 이들이 작은 자기 세상 밖으로 나설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러한 인종차별, 경제, 교육 등 사회적 불평등에 항의하는 것은 “건강한 분노”라고 말했다. 교황은 “우리를 한 민족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더욱 위대한 무언가, 즉 어떤 법적, 물리적 정체성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라며 “우리는 이를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시위에서 보았으며, 서로를 알지 못했던 이들이 건강한 분노로 하나되어 길거리로 나섰다”고 말했다.
보편적 기본소득(UBI)과 노동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과 노동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모든 사람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야 말로 완전 고용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황은 책 말미에서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개념을 탐구해볼 때라고 생각한다”며 보편적 기본소득이란 “모든 시민에 대한 무조건적인 평균 임금을 말하며, 이는 세제를 통해 분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전업주부 같이 임금을 받지 않아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는 이들과 정상적인 계약과 임금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임금을 지불함으로서 “사람들을 빈곤에 가두는 고용조건을 거부할 수 있는 존엄을 보장함으로서 노동시장의 관계를 재구조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황은 이와 더불어 “적정임금 보장을 포함한 노동시간 단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미 지난 4월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 교황은 팬데믹으로 인해 수입이 끊어진 이들, 특히 취약 계층에 대해 “아마도 지금이 여러분의 고귀하고 필수적인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고려해볼 때인 것 같다”며 “보편적 기본소득은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인다운 이상을 실현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편적 기본소득을 처음 언급한 교황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가톨릭교회는 노동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한 수입이나 필요한 것을 얻는 일을 옹호하고, 노동의 대척점에 게으름을 상정하고 이를 비판했다.
“인간의 노동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서로 함께, 그리고 서로를 위하여 땅을 지배함으로써 창조 사업을 계속하라는 요청을 받은 사람들이 직접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은 하나의 의무이다. (...) 노동의 수고를 견뎌 냄으로써, 인간은 하느님 아들의 구속 사업에서 어떤 의미로 그분의 협력자가 된다” (가톨릭 교리서, 2427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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