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석달째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교황청은 외무장관을 현지로 파견해 본격적인 외교적 해결에 나섰다.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교황청 국무원 제2부서인 외무부 외무장관 폴 갤러거(Paul Gallagher) 대주교는 교황 사절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리비우를 찾았다. 20일에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 만남을 가졌다.
갤러거 대주교의 이번 순방은 교황청과 우크라이나 외교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왔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갤러거 추기경이 코로나 확진을 받는 등 여러 이유로 미뤄진 바 있다.
교황은 이전에도 두 명의 교황특사를 우크라이나와 주변 국경으로 파견하여 전 세계를 향해 인도적 지원을 촉구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과 교황청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함께 해”
교황청 외무장관의 우크라이나 순방은 직전 특사와 달리 예정된 방문이기는 하나, 시기가 시기인 만큼 메시지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방문은 교황의 ‘영적 공세’와 더불어 통상 국가와 동일하게 외무장관을 파견해 국제 외교에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갤러거 대주교는 20일 드미트리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방문 목적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운데 우크라이나 국민과 교황청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침공’이라고 명시한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갤러거 대주교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우크라이나인들의 상처”이자 “잔인한 분쟁”, “파괴와 죽음”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기도, 그리고 말과 행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황청의 역할을 두고서는 “진실된 협상 과정이란 공평하고 영속적인 해결을 위한 정도”라며 “이를 도울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갤러거 대주교는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18일, < Vatican News >와의 인터뷰에서 침공의 종식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음을 강조하며 “교황청은 계속 인도적 지원을 권장하고 국제 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군비 지원에 대한 교황청 입장은…
20일 갤러거 대주교는 우크라이나인 수백 명이 학살당한 부차, 보르젤, 이르펜을 방문했다. 키이우 성 안드레아 성당 앞에는 러시아군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이름 없이 죽은 이들이 묻힌 임시 공동묘역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중에는 아동들도 있었다. 갤러거 대주교는 이곳을 방문해 평화를 촉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이날 공동묘역을 방문한 이후 인터뷰에서 갤러거 대주교는 “러시아와의 평화를 찾는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평화와 화해를 말하기가 어렵다. 마음의 고통과 상처가 너무도 깊어 시간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주고 사람들이 이를 털어놓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많이 표현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순방에 앞서 교황청은 우크라이나 군비 지원에 긍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13일 이탈리아 채널 < TG2 >와의 인터뷰에서 갤러거 대주교는 ‘방어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는 것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답했다.
갤러거 대주교는 “(무기 지원은) 상황에 비례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시 군비 경쟁에 들어서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를 위한 군비 지원에는 찬성하나 이것이 군수산업에 호황을 가져다주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핵무기라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전쟁이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방식에 있어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한 갤러거 대주교 발언이 있고 하루 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Pietro Parolin) 추기경도 같은 맥락에서 입장을 밝혔다.
지난 14일 요한 바오로 1세에 관한 콜로키움이 끝나고 기자들과 가진 질의응답에서 파롤린 추기경은 “무기 지원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했던 얘기를 다시 드린다”며 “침공의 경우에는 무력을 통한 방어권이 존재한다. (가톨릭) 교리도 그렇게 말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비례성이 있다. 다음으로 침공에 대한 대응이 침공 자체보다 더 큰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이때 우리는 ‘정당한 전쟁’이라고 말한다. 무기 지원 문제는 이런 틀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과는 대비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군비 경쟁을 비롯한 무기 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최근 인터뷰에서 교황은 “전쟁은 무기를 실험하기 위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프랑스 일간지 < La Croix >는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두고 교황청 내부의 여러 입장이 충돌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어떤 의견을 따라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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