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할매’로 불리는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eger) 수녀가 26일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일생 처음 기자간담회를 했다. 마리안느 수녀는 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인 소록도 자혜의원 개원 100주년을 함께하기 위해 지난 13일 방한했다.
마리안느 수녀가 소록도 땅을 다시 밟은 것은 11년 만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며 지난 2005년 홀연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마리안느 수녀와 함께 소록도 환자들을 돌보았던 마가렛 피사레크(Margreth Pissarek) 수녀는 경증치매 증상으로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어 이번 방한에 함께하지 못했다.
“간호사로서 예수님의 복음대로 하루하루를 살았을 뿐”
소록도에서 40여 년간 봉사의 삶을 살았던 두 수녀의 감동적인 사연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국내 언론사들은 수녀들에게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단체와 정부가 주는 각종 상과 지원금도 거절했다.
마리안느 수녀는 인터뷰를 거절했던 이유에 대해 “제가 한 보잘것없는 일로 칭찬받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자신이 한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인데, 이상하게 기사가 나가면 특별하게 보이고 너무 지나치게 평가되는 것 같아서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0여 년간 소록도에서 보낸 봉사의 시간을 ‘특별하지 않은 곳’에서 보낸 ‘알릴 필요가 없는 일’이라 평가했다.
마리안느 수녀는 다시 소록도를 방문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며, 현재 소록도의 병원과 집이 새로 깨끗이 지어지고 좋은 상황이 되었다며 되레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소록도가 앞으로도 환자들을 위해 좋은 곳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봉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간호사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복음대로 하루하루를 살려 했을 뿐,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복음이 자신을 이끈 하나의 동기였고 전부였다고 밝혔다.
그는 한센병 치료를 끝낸 환자들이 상태가 좋아져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때가 가장 기뻤지만, 수술이 끝나 병이 완치돼도 세상의 편견으로 가족들이 받아주지 않아 집에 가지 못했던 환자들이 많아 너무 안타까웠다고 회고했다.
수녀는 소록도를 떠날 당시를 회상하며 “소록도를 떠나는 배에서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돌아가서도 이곳 친구들을 그리워했다”며 “여기 있는 환자들은 내게 있어 아들처럼, 친구처럼 별명도 붙여주고 이름도 많이 외웠다. 늘 언제나 곁에 있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소록도 생활이 행복했냐는 질문에 마리안느 수녀는 “하늘만큼 행복했다”며 양팔을 벌렸다. 마리안느 수녀는 “하느님은 우리 가까이 있고, 우리는 그분의 힘으로 살고 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박히는 고통으로 살았으니, 우리도 신앙 안에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며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미운 사람도 그 안에 예수가 있다고 생각하며 도와야 한다”며 사랑의 실천을 거듭 강조했다.
소록도 떠나며 ‘감사’와 ‘용서’를 청했던 수녀들
마리안느 수녀는 다음 달 17일 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인 소록도 자혜의원 개원 100주년 행사에 참석한 뒤 6월 초 오스트리아로 돌아갈 예정이다.
‘사단법인 마리안느·마가렛’은 소록도 한센인들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두 수녀의 삶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올 연말에 개봉할 예정이다. 또한, 고흥군은 두 수녀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다. 2018년에는 소록도성당과 한센인들의 헌금으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마리안·마가렛 기술학교’가 설립된다.
소록도는 한때 한센인을 포함한 6,000여 명의 거주민들이 눈물과 절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죽음의 섬이었다. 의사들조차도 한센인과의 접촉을 피하던 이 섬에 간호대학을 졸업한 그리스도 왕 수녀회 소속 20대 두 명의 수녀는 환자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맨손으로 그들을 진료했다.
두 수녀는 소록도에서조차 천대받던 한센인들에게 존중과 친절의 자세로 대했다. 환자들에게 반말 대신 존댓말을 썼고, 가족조차 거부했던 그들의 등을 어루만졌다. ‘저주받은 날’로 여기던 그들의 생일을 위해 소록도 두 수녀는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함께 축하했다. 자신의 존재가 절망이라고 여기던 사람들에게 생명의 존귀함과 삶의 희망을 전했다.
그러나 두 수녀는 정작 자신들을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았다. 가족에 돌아가는 한센인에게 정착금을 쥐어주면서도 부러진 빗자루에는 테이프를 감았다. 옷이 해지면 죽은 환자들의 옷을 수선해서 입었다. 습한 환경 탓으로 숙소에서 지네에 물렸지만 낡은 숙소는 한 번도 고치지 않았다. 소록도를 찾은 두 청년 수녀는 ‘소록도 할매’로 불릴 때까지 그렇게 그곳에서 한센인들과 함께했다.
소록도에 들어와 꼬박 43년간을 한센인을 위해 살았던 두 수녀는 지난 2005년 11월 22일 편지 한 통을 남기고 홀연히 고향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여행 가방 한 개씩이 짐의 전부였던 두 수녀가 남긴 편지에는 오히려 한센인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용서를 청하는 글이 적혀있었다.
“우리는 친구들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없고, 오히려 부담이 될 때는 본국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왔습니다. 이제는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저희 부족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항상 기도 안에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