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가톨릭네트워크준비위원회 포럼, “한국가톨릭교회 어디로 갈 것인가” 내용을 5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 편집자 주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의 고질병으로 ‘성직자 특권의식’, ‘권위주의’, ‘자기 비판력 부재’, ‘관료주의’, ‘동맥경화증’, ‘공감 능력 상실’, ‘사이비 신비주의’, ‘마피아적 권력 파벌’, ‘형식주의’, ‘세속주의’, ‘영적 치매’, ‘실존적 정신분열’, ‘위선적인 이중생활’ 등을 열거했다. 한국가톨릭교회와 무관한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1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한국 가톨릭교회, 어디로 갈 것인가’ 포럼에서는 대구시립희망원을 운영해왔던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희망원 사태 처리과정에서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구 희망원 사태에는 ‘마피아적 연결고리’가 작동했다
정중규 국민의당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진상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교구가 ‘소명의식’을 이유로 운영권을 반납하지 않다가, 의혹이 커지자 ‘정상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대구시에 운영권을 반납한 상황을 지적했다.
정중규 위원장은 2년 동안 128명의 생활인이 죽고 인권유린과 성추행, 생활인 식대 횡령이 일어난 사태가 교구의 ‘소명의식’이 반영되어 ‘정상운영’이 됐던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한국 장애인복지사업의 문제가 한국 가톨릭교회의 문제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조환길 주교와 희망원 측은 사과문에서 ‘희망원 문제에 대해 밝혀지는 대로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희망원은 교회의 소명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굉장히 분노했다”라며 “어떤 소명의식이 2년 만에 128명의 생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 7일 대구대교구가 희망원 운영권을 반납한 결정에 대해서는 “앞서 사과문에서 장애인과 노숙인의 탈 시설, 지역사회의 정착을 약속했던 가톨릭이 이번에는 무책임하게 운영권을 반납했다”며 “소명을 가진 교구는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가”라고 개탄했다.
특히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희망원 문제와 관련해 활동한 정평위 신자들에게 ‘정평위 활동을 그만두라’고 통보했다”라며 “교구설정 100주년을 맞아 부활했던 정평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희망원 사태가 관료적인 대구교구 특성과 대형 거주시설이 지닌 폐쇄성, 그리고 공무원과의 유착관계가 복합적으로 섞여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구가 < 매일신문 >을 경영하면서 ‘마피아적 연결고리’를 만들었고, 이번 희망원 사태에서 이것이 작동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이중장부 작성 의혹이 있는 회계과장 수녀가 국감의 증인으로 채택돼 언론에 공개됐다. 하지만 대구지역 여당 국회의원이 증인채택을 무산시키겠다고 압력을 넣어 결국 다른 증인으로 교체됐다”라며 “지금도 희망원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 국민의당을 향해서 끊임없이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수의 사회복지는, 창설자 신부 이름만 남고 수천 명의 장애인은 이름도 없이 살다 죽는 꽃동네와는 다르다”
정 위원장은 천주교 운영시설의 비리와 그를 둘러싼 정치·종교의 유착관계가 대구교구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위로자로 알려진 인천교구가 인천·국제성모병원 문제에서 보여준 태도나 꽃동네를 둘러싼 청주교구의 문제점도 희망원 사태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는 가톨릭 사회복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교회의 뿌리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는 장애를 합법적으로 차별했던 사회 속에서도 장애인들을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 일원으로 복원시켰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예수는 격리되고 소외당한 장애인들을 찾아가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복음 선포와 함께 핵심 과업으로 삼았다”라며 “그분은 소외된 이가 없는 공동체를 하느님나라라고 했다. 자캐오와 라자로, 바르티매오와 같은 숱한 장애인이 예수와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가 실천한 사회복지의 모습은 창설자 신부의 이름만 남고 수천 명의 장애인은 이름도 없이 살다 죽는 꽃동네와는 완전히 다르다. 교회와 성직자들은 장애인복지를 격리해 수용하는 것으로 왜곡시켜 왔다”라며 “장애인을 가두고 격리하는 ‘꽃동네 사회복지’는 예수가 보여준 실천과 전혀 다른 반(反)복음적 모습이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병자와 장애인들을 안 보이는 곳에 숨기거나 수용소에 가두지 말고 사회에서 함께 살도록 하라’고 말해”
정 위원장은 개인주의와 양극화 등 반(反)공동체적 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 한국 가톨릭교회가 복음적 사회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를 ‘사회정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5월 국제 카리타스(Caritas Internationalis) 제20차 총회에서 로메로 대주교가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와 콜카타의 성녀 데레사와 함께 가톨릭 사회복지의 공동 수호자로 추대된 점을 주목했다. 가톨릭 사회복지가 자선사업 수준에서 사회정의 차원으로 진보했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사회정의를 위해 투쟁하다 암살당한 로메로 대주교가 카리타스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의미가 깊다”라며 “교회가 지금까지는 사회정의를 소리로만 외쳤는데, 이제는 사회복지를 사회정의와 함께 보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께서 그리했듯이 교회의 사회복지는 빈익빈·부익부를 낳는 구조적인 악과 실제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카리타스가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며 정의와 해방을 위해 싸운 로메로 대주교의 삶을 모범으로 받아들인 것은 교회가 지난 2,000년 동안 잃어버렸던 예수의 마음, 즉 사회악과 구조적 모순을 혁파해 소외된 이들을 사회로 통합시키는 마음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이는 교황청이 정의평화평의회와 사회복지평의회, 이주사목평의회, 보건사목평의회를 ‘인간발전성’으로 합친 것과 같은 의미다”고 덧붙였다.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12일 장애인과 병자들을 위한 자비의 특별희년 주일 강론에서 ‘병자와 장애인들을 안 보이는 곳에 숨기거나 수용소에 가두지 말고 사회에서 함께 살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희망원 사태의 원인과 해결책이 여기에 있다”며 “희망원 사태는 장애인과 노숙자를 사회에서 배제하고 격리하려는 한국 사회의 복지정책이 문제의 근원이다”라고 짚었다.
희망원 사태, ‘잃어버린 공동체 정신 회복’으로 해결해야
사례발표 결론에서 정 위원장은 한국교회 전체로 시선을 확대했다. 그는 한국 가톨릭교회가 희망원 사태의 궁극 해결책을 ‘잃어버린 공동체 정신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노숙자와 장애인을 수용시설에 가두기보다 우리 사회로 다시 끌어안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세월호와 쌍용자동차 투쟁현장에는 사제들이 나서지만, 장애인의 인권투쟁 현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장애인들은 사제들을 시설장 관리로만 만나게 된다”라며 “이 시대 예수가 온다면 그분은 시설장 보다는 장애인 인권을 위한 시위현장에 계실 것이다. 그리스도교 장애인 사업의 미래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교회가 대규모 시설 위주의 수용적 장애인 사업을 지양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그리스도교적 장애인 사업의 본 얼굴을 되찾아야 한다. 이제껏 사회복지 분야에서 쌓아온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과 경험으로 장애인과 노숙자들이 삶의 선택권과 인간 존엄성을 되찾을 수 있는 ‘탈시설 전환 운동’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