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성역화 사업의 국고 지원 문제를 점검하는 토론회가 12일 오후 2시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렸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과 한국납세자연맹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행정학 전문가와 법률전문가, 역사학자 등이 모여 현재 진행 중인 종교예산 지원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종교 성역화 사업, 국고 지원 타당한가’란 이름으로 열린 이 날 토론회에는 이찬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을 좌장으로 김정수 한양대 교수,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채길순 명지전문대 교수, 김형남 신아법무법인 변호사,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등이 참여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대한민국 국가 예산에서 종교예산은 매우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토론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대한민국이 국민 복지를 실현해 선진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종교 예산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종교와 정치의 잘못된 만남”
김정수 한양대학교 교수는 ‘종교적 성역화 및 시설건립에 대한 국고 지원의 타당성 검토’ 발제를 통해 종교 분야에서 일어나는 예산집행의 문제점을 행정학자로서 분석했다.
김정수 교수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이 종교마다 있지만, 오늘날 종교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나는 기독교인이면서 행정학자인데, 종교 분야에서 잘못된 행정 집행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이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예산집행에서는 각종 국고보조금을 통해 정치와 종교가 은밀한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나면 안 될 사람들이 만나는 것을 불륜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정치와 종교는 이같이 떳떳하지 못한 불륜 관계를 맺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와 종교의 대표적인 불륜관계 예시로 천주교가 연루된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과 대한불교 조계종이 연루된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사업’을 들었다.
국비 230억‧시비 137억‧구비 93억이 지원된 서소문 역사관광자원화 사업의 경우, 사업의 주요 내용이 천주교 박해에 편향돼 있다며, 특정 종교의 성역화 사업을 ‘관광자원’으로 포장한 종교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견지동 역사문화 관광 사업은 정확한 예산 내용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불투명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수 교수는 이러한 종교 성역화 사업에 대한 국고 지원의 문제점을 합법성, 효과성, 형평성, 투명성, 민주성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먼저 김 교수는 일반 국민에게 걷은 세금으로 특정 종교 건축을 돕는 것은 헌법에 나온 정교분리 원칙을 어긋나기 때문에 합법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성역화 사업의 정책 목표는 국민의 문화생활 증진인데, 종교건물을 짓는다고 해서 국민의 문화생활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효과성 차원의 문제를 지적했다.
특히 신도 수나 교세에 따라 종교별 보조금 지원 규모가 다르다며,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 종교를 지원하는 사업이 각종 문화 개발 사업이란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점에서 투명성 차원의 문제도 제기했다. 끝으로 국민적 동의 없이 정치‧종교인의 합의로 사업이 결정된다며, 민주적 차원에서도 종교에 대한 국고 지원 사업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아무리 공익을 위한다고 해도 국가가 세금을 많이 걷으면, 국민은 누릴 것이 줄어든다. 그래서 국가는 세금을 징수하고 집행하는 것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며 “문화를 운운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특정 종교의 건축비를 지원하는 것은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종교는 돈이 모이면 본질이 훼손되고 출발점을 잃어버린다. 역사적으로도 그래왔고, 오늘날에도 그것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정치와 종교의 불륜관계가 지속된다면 나라도 망하고 종교도 망할 것이다.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서는 정부는 정부답게, 종교는 종교답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법‧불법 난무하는 종교지원 사업”
김형남 변호사는 ‘법난기념관 건립사업’ 재정지원 문제를 설명하며,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가 편법을 능가하는 불법적인 행위로 종교의 성역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법률상 국가가 토지매입비를 지원할 수 없고, 역사상으로도 이 같은 선례가 없지만, ‘법난기념관 건립사업 재정지원 협약서’ 내용은 ‘명의신탁약정’을 통해 정부가 조계종단에 토지매입비를 지원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협약서 내용은 조계종단이 매도자로부터 토지를 구매한 뒤, 일정 기간 후 정부가 이를 다시 구매하는 협약을 하고 있다며, “이는 부동산 실거래법에 따라 매도자가 나중에 계약 자체를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협약서를 작성하면서 법률적인 검토를 어떤 식으로 진행 했느냐도 문제지만, 정부가 특정 종교를 위해 이런 편법적인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또한 조계종이 토지를 임시로 가지고 있을 때 취득세를 감면하기 위해서는 특별법도 개정해야 하는데, 정부는 종교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법률적인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정부가 토지매입을 지원할 수 없다는 원칙을 어기면서 종교 사업을 지원하려다가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종교 성역화 사업에 대한 정부의 심사를 더욱 신중히 하고 편법이나 불법으로 국고보조금을 집행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단체, 세금 혜택 받을 시 재정정보 공개해야”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종교시설에 대한 지방세 감면이 서울시만 1,000억, 전국적으로 3,000억이다. 연간 종교에 지원되는 세금만 1조4,000억 원”이라며 “하지만 납세자연맹이 이에 대한 세부 내용을 알아보려고 해도 자료가 없다. 엄청난 세금이 감면돼, 일반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부담이 높아지지만, 그에 대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의 세금운영이 선진국의 모습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세금이 사용되거나 감면되는 종교단체의 재정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성역화사업에 대해서도 국고 지원 타당성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그 사업에 대한 정보공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길순 명지전문대 교수는 발제를 통해 “국가의 불의함에 저항하며 서소문 처형장에서 죽어간 백성들의 참혹한 역사가 천주교의 성지화 사업 때문에 ‘관광 상품’으로 바뀌고 있다. 천주교 성역화 사업은 항상 ‘관광자원’이라는 키워드를 달고 다니는데, 역사학자로서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종교 관련 예산은 매우 증가한 점,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종교 사학재단의 정보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 등을 지적하며, “종교가 아무리 자신을 투명하다고 주장하더라고, 그것은 개인적인 의사 표현일 뿐, 투명한 정보공개 없이 예산이 집행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들은 종교 성역화 사업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에 대한 논의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또한, 종교예산의 증가에 대한 경각심을 호소하며,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