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위안부 문제를 다룬 ‘전쟁과여성박물관’에 갔었다. 그곳 나비배지가 너무 예뻐서 여러 개를 샀는데, 친구들에게 나눠주니 엄청 좋아했다. 기념품을 주면서 위안부 문제도 전할 수 있었다. 사려는 친구들이 많아서 나중에는 나비배지를 더 사와서 친구들에게 팔았다.
‘구매대행’처럼 나비배지를 전하던 고등학생은 어느 날 자신이 직접 기념배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자, 학생 때는 할 수 없었던 기념배지 제작에 들어갔다. 그렇게 이해나 씨는 사회인이 된 첫해에 안중근 의사 기념배지를 세상에 공개했다.
이해나 씨(21세)는 한국 정부가 중국 상하이에 있는 임시정부를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곤 의아해했다. 대한민국이 헌법을 통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면서도, 건물운영을 비롯한 모든 관리를 중국에 의존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대한민국의 독립을 꿈꾸며 임시정부에 삶을 바치셨던 독립운동가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삶을 바쳤지만, 조국은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이해나 씨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자 고민 했고, 그 고민 속에서 떠오른 것이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이다.
이해나 씨는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은 조국 독립에 대한 간절함이 담긴 상징”이라며 “그 간절함을 배지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 돈으로 임시정부를 후원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해나 씨의 고등학교 선생님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자신의 제자에게 소개했다. 이해나 씨의 첫 작품은 그렇게 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 전달됐고, 이를 계기로 안중근기념사업회와 연이 닿았다.
“손바닥은 물론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독립운동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배지는 독립운동가 한 분의 활동을 적은 종이와 함께 포장 했다. 그렇게 80분의 독립운동가가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과 함께 세상에 전해졌다”고 덧붙였다.
“역사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해나 씨는 부모님의 교육으로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됐다. 부모님은 두 딸을 학교에 바래다주며 시사 위주의 라디오를 듣게 했다. 박물관은 가족 여행의 단골집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역사 선생님과의 만남이 이해나 씨의 삶을 바꾸게 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단지,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지만,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역사를 기억하고 알리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가르침이었는지 묻자, “선생님은 역사를 가슴 속에 지녀야 할 것으로 말해주셨다. ‘역사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라고 늘 강조하셨다. 특히,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사를 마음에 담아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이 역사교육이 나를 바꿨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잘못을 기억해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훌륭하고 멋진 역사를 마음에 담아 삶을 바꾸는 것도 역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위안부처럼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것과 독립운동처럼 자부심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나 씨는 또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훼손하자, 어른들은 한겨울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어 민주주의를 지켰다. 잊지 못할 광화문의 역사가 마음에 남았다”라며 “청년들의 마음에 담긴 광화문 역사는 적폐가 청산되면 세상이 바뀐다는 희망으로 남아있다. 민주적인 나라를 지켜주신 어른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역사적인 적폐청산에 대해서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친일의 잘못된 역사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독립운동가 후손은 가난 속에 살지만, 친일파 후손은 권위를 누리고 산다. 역사 적폐 청산은 친일의 역사를 밝히고 청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올바른 기부는 ‘가치를 나누는 것’이라 생각”
이해나 씨는 안중근 의사 기념배지에 이어, 최근에는 안중근 의사 물병을 판매 중이다. 한정판 물병은 이미 완판 됐고, 남은 물병도 청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판매되고 있다.
물병 겉면은 안중근 의사의 손을 꽃다발이 둘러싸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손에서 대한민국이 독립과 자유라는 꽃을 건네받았다”라는 뜻이다.
물병 판매금은 단 1원도 남기지 않고 모두 안중근기념사업회에 기부된다. 물병 가격은 8,000원이다. 이 중 5,500원이 물통 구매자 이름으로 기념사업회에 기부된다. 물병 제작비는 이해나 씨가 사비로 해결하므로, 물병 원가 등이 포함된 제작비 2,500원도 모두 기부다. 이번 안중근 물병을 통해 기부되는 액수는 총 80만 원가량이다.
기부는 어떤 방식이라도 소중한 행위지만, 그냥 돈을 기부하는 것과 물건을 사면서 기부에 동참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기부는 ‘가치를 나누는 기부’라고 생각한다. 기부하는 사람도 기부의 가치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가치가 나눠질 때 그 의미가 더 커진다고 확신한다.
이해나 씨는 그러면서 “인맥도 없는 평범한 내가 100개나 되는 물병을 팔 수 있던 것은 이러한 뜻에 함께해주시는 기적 같은 분들이 계셔서다”라며 “물병의 의미를 듣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해주시는 분도 많다. 구매를 안 하시더라도 격려해주시는 따뜻한 분들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이해나 씨는 다음 기부 물품으로 에코백을 생각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의미가 꽃피는 시대인 만큼, 이한열 열사나 전태일 열사 등 민주 투사들의 역사를 마음에 담는 활동도 해보고 싶다며 다부진 꿈을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