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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에서 빵을 나눴던 미사는 큰 체험이었어요”
  • 문미정
  • 등록 2018-08-02 12:35:23
  • 수정 2018-08-07 11: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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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 예수회 사회사도직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소장 나카이 준 신부)에서 소임을 하고 있는 야마모토 기쿠요(Kikuyo Yamamoto, 원조수도회) 수녀는 지난 4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3개월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수도자이자 음악인이기도 한 야마모토 수녀는 50여 곡의 성가를 작곡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처음부터 수도자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이십 대 후반 어느날, 기도를 하면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다. 하느님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하셨고, 자신 역시도 하느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니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수도자의 길로 들어섰다면서, 하느님과 확실하게 연결되어 사는 건 기쁨 그 자체라고 말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과 함께 했던, 가깝지만 먼 나라에서 온 야마모토 수녀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야마모토 기쿠요 수녀 ⓒ 문미정


4월 26일 한국에 오셨습니다. 한국에 오신 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이 열리고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한국에 오니 어떻습니까? 


- 지난해에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그때 일어난 큰 물결 같은 변화를 일본에서 지켜봤어요. 일본은 아래로부터 시작해 위를 바꾸는 것이 정말 어려운 편이에요. 


한국에서 대통령이 바뀌지 않았다면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요. 27일에 TV로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도 회담이 잘 이뤄질지 반신반의하기도 했어요. 지금 같은 흐름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사실 이러한 흐름을 응원하는 일본인들이 많지 않지만 저는 계속 응원하고 있어요, 남북 대화가 계속 이어져서 평화가 실현될 수 있기를 바라요. 


응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속에서 혼자 응원하려면 힘드실 것 같아요.


- (탈핵문제도 그렇고) 언제나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기를 원하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 못지않게 행동과 결과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열정’과 ‘성의’가 중요합니다. 


현장에서 종종 일본사람들이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제가 히로시마에서 일할 때를 떠올려봤어요. 외국관광객들은 물론이고 일본사람들조차도 히로시마에서 있었던 일들을 잘 모를 수도 있거든요. 열정과 성의를 가지고 역사적인 사실들을 알려주려는 노력이 일단 중요하지요. 그러나 거기에서만 그치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히로시마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리면서 “다른 곳들은 어떨까요?”라는 의식을 나누어야 해요.  


단지 한 지역이나 자기 자신만의 아픔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아픔, 공동의 아픔을 이해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할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은 곳에 서 있을 수 있고, 평화를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오실 정도면 시모노세키에서 한국어 쓸 일이 많은 건가요?


- 시모노세키에 조선학교가 있는데 조선학교에서는 선생님, 학생들이 한국어로 말해요. 사실 시모노세키에서 소임을 하면서부터 재일조선인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 전에도 주위에 조선학교가 많았지만 제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어요. 유대인들이 잃어버린 나라를 찾듯이 재일조선인들은 어디서든 자신의 고향을 생각해요. 


현재 조선학교는 일본 외국인학교 중 고교수업료 무상화에서 배제됐고 지자체에서 지급되는 보조금도 받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조선학교들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야마구치현에 가서 함께 항의를 하고 있어요. 오사카에서 사는 동포들도 함께 해주고 있어요.


파인텍 노동자를 위한 미사,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조선학교 차별반대 고교무상화 적용을 위한 몽당연필행동 등 현장에서 약자들과 함께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지난 5월 26일 몽당연필 거리행동에서 야마모토 수녀는 기타를 치며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라는 노래를 불렀다. (사진제공=몽당연필)


- 몽당연필행동에 갔더니,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적용을 위한 바람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함께 하는 편이에요. 광화문광장 양쪽에는 차가 지나다니고 가운데 넓은 광장에서 한반도 평화 미사를 봉헌하면서 빵을 나눴던 것은 제게 큰 체험이었어요. 


그 곳이 어디든 아픔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시는 예수님이 연상되어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당 안에서 기도를 하는 것도 좋지만, 현장으로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 더 체험적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미사 안에서 수도자들과 신자들이 가까운 관계를 맺고 서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일본에는 길거리 미사가 드물어서, 아픔이 있는 장소에서 미사를 봉헌한다는 건 새로운 일이었어요. 예전에 제주도 강정마을 길거리 미사를 보고 배워서, 일본 시코쿠에 있는 핵발전소 옆에서 미사를 봉헌했던 적도 있어요.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면, 전부 다 가지는 못해도 아픔이 있는 장소로 달려가서 함께 할 거예요. 


현장에 나갔을 때 일본에서 온 수도자인 걸 알면 사람들 반응은 어땠나요? 


-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서 한 봉사자가 저한테, 수녀님이 잘못한 건 아니지만 일본이 한국에 역사적 잘못을 저질렀고 그 아픔이 지금도 계속 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미안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사과했어요. 국가가 잘못을 했는데 반성을 하고 있지 않으니까 개인적으로라도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함께 한 야마모토 수녀 (사진제공=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현재 시모노세키에서 수녀님이 하는 활동에 대해서, “‘그저 그 장소에 있는 것’이에요. 시모노세키는 지방의 마을에 지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수도 적어서 큰 활동은 할 수 없지만, 그 땅에 주어진 숙제에 관여하면서 기꺼이 살고 있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장소에 있는’ 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 서울 홍대 앞, 도쿄 시부야에서의 촛불과 시모노세키처럼 작은 마을의 촛불의 의미는 다를 거예요. 빛으로 환한 거리에서는 누구도 촛불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어둡고 작은 마을에서는 하나의 촛불이라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이 작은 마을의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시모노세키에서 매주 금요일에 핵발전소를 반대하기 위해 10명 정도 모이고 있어요. 활동가들의 80~90%는 무신론자이지만 함께 잘 일하고 있어요. 단 1명이라도 현장에 간다면 그 1명의 존재에도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성가를 직접 작곡하시고 핵발전 반대, 평화를 바라는 노래를 부르시는데, 음악은 수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저는 제 음악에 대해서나 활동에 대해서 스스로 기대하거나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음악 자체가 힘이며 그 모든 것은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저는 도구일 뿐이에요. 


예를 들자면, 이른 아침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미사를 드릴 때면 어떤 노래도 원치 않는 상태이지만, 일단 노래를 시작하고 성가가 끝날 즈음에는 제 자신이 변화되어있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음악이 가지는 힘이지요. 


만에 하나 제가 음악에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각각의 음악의 힘이 하느님 뜻으로 개개인에게 고유하게 작용하리라는 것인데요, 일종의 화학작용처럼 말이죠. 똑같은 노래라도 각각의 사람들에게 다른 느낌을 주듯이, 제 목표나 기대가 아닌 하느님 뜻과 그분의 힘으로 저를 통한 음악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르게 ‘작용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과 일본은 지리상으로는 가까운 나라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얽힌 부분이 많아 마음의 거리는 꽤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쌓인 앙금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 (다른 질문과는 달리 야마모토 수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일본인이 역사를 계속 공부해야 돼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죠. 그렇게 함으로써 변화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돼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의지가 중요해요. 저도 조금밖에 알지 못하지만 친구(한국)에 대해,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서 마음 안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의지가 생기고 있어요.  


올해 2월에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에서 동아시아 평화와 화해를 위해 일본 청년들을 데리고 2박 3일 동안 한국에 머물렀어요. 마지막 날에는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다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했어요. 굉장히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었지만, 서로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니 의미 있는 대화였어요.


(야마모토 수녀가 퐁퐁 소리와 함께 손으로 꽃이 피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 순간 마치 꽃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어요. 내년 2월에 히로시마에서 청년대회가 열리는데, 그때도 꽃이 피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인으로서 꽃이 피는 장면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지난 2월 일본청년들과 한국 방문 당시, 주제가 ‘동아시아 평화와 화해를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 지난 2월 23일, 일본청년들과 야마모토 수녀(앞줄 가운데)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했다. ⓒ 곽찬


- 몇 년 동안 한·일 청년 교류를 보면서 느낀 것인데, 자주 만나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당연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먼저 서로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것이나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자세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자주 만나면서도 정작 알아야 하는 문제나 중요한 이슈를 번번이 넘어가거나 대화하지 않는다면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 표면적으로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앞서 말했지만 올해 초, 일본에서 청년들이 한국을 방문했어요. 평화에 대한 장소와 박물관, 정신대에 대한 이슈들이 있는 곳을 방문하고 예수회 마지스 청년 징검돌 미사도 함께 한 후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본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청년 중 한 명은, ‘자신이 같은 일정으로 일본에 간다면 관광지나 쇼핑장소를 갈 텐데, 일본인에게 불편한 역사적 이슈가 있는 장소를 방문하기 위해 개인 비용을 지불하고 시간을 내어 한국에 온 것은 놀랍다’고 이야기하는 등 솔직한 대화시간을 가졌어요. 그것이 저에게는 오랜 기간 보아온 일반적인 청년교류 프로그램, 서로가 같이 하는 레크리에이션 시간이나 다른 활동보다 훨씬 힘 있게 다가왔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야기하고, 질문이 있으면 묻고, 갈등이 될 만한 이슈가 있다면 서로가 피하지 않고 “함께” 현실을 직시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친구가 되는 것이고 평화의 시작이 아닐까요.


3개월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야마모토 수녀는 지난 27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픔이 있는 장소에서 하나의 촛불이 되어 있을 야마모토 수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년 2월 이후 탄생할 '꽃 피는' 음악을 기대해본다. 



※ 야마모토 기쿠요 수녀님 인터뷰 통역은 라종연(천주교더나은세상)과 최원, 김현주 선생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1) 몽당연필은 한국 사회에 ‘조선학교’를 알리고 일본시민단체와 함께 조선학교가 처한 차별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민간단체다. 일본 정부는 고교수업료 무상화 제도에서 조선학교를 제외시켰으며, 지자체에서 지급되는 보조금도 동결했다. 이에 몽당연필은 지난 5월 26일, 홍대입구역에서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적용을 위한 몽당연필 거리행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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