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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슨 악도 선으로 바꾸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 이기우
  • 등록 2019-03-25 18: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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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 이사 7,10-14; 8,10ㄷ; 히브 10,4-10; 루카 1,26-38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구세주가 마리아의 태중에 들어오심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바로 칠일 전에 교회가 성 요셉을 기억하는 날을 대축일로 보낸 이유도 구세주를 잉태하신 어머니 마리아께서 그의 정혼자 신분임을 상기하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오신 구세주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시면서도 인성으로는 유다 지파에 속하는 다윗 가문의 후손이 되셨습니다. 구약의 하느님 백성을 통해 예고된 하느님의 약속이 바야흐로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이루어짐을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세상에 전하는 구원의 메시지는 크게 창조와 부활의 계시로 요약됩니다. 창조란,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인간도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운명과 인류의 구원과 세상 역사도 하느님께서 완성하시리라는 믿음이 담겨 있는 메시지입니다. 부활이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 죽음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 다시 하느님의 자리로 돌아가시어 나타나심으로써 창조된 피조물들이 드디어 하느님께서 완성하시는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음을 뜻하는 메시지입니다. 


인간의 운명도 세상의 역사도 현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세로 향해 있으며 또 그 내세의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활의 메시지로 인해서 인간과 세상은 보이는 그대로 현세의 한계 안에 갇혀 있지 않을 수 있고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한 생명의 넓이와 깊이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강생의 신비는 그 부활의 시작입니다. 


요셉과 정혼한 처지이기는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부부가 되지 않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전갈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갈과 함께 성령으로 구세주를 잉태하는 신비스런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일은 아무것도 없던 혼돈 상태에서 우주를 만드시고 그 우주 안에 생명이 살 수 있는 지구를 조성하셨으며 그 생명이 진화하여 인간이 출현하게 하신 창조의 신비에 맞먹는 신비입니다. 


여자가 남자 없이 성령으로 생명을 잉태하였다는 사실은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신비입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오신 구세주의 삶이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신 신비의 시작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심 깊은 유다인으로서 태어나 자란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느닷없이 찾아와서 전한 이 전갈을 듣고 몹시 놀라면서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명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이 태도는 언젠가 하느님께서 구세주를 보내주실 것을 믿어온 조상의 전통의 산물입니다. 또한 마리아가 그 부모로 인해 잉태될 때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도록 각별히 보호하신 하느님 섭리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오래 전부터 준비되고 믿음과 의지로 덕행이 되어 버린 생활태도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응답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지내는 취지는 첫째로 이 세상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온전히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결과임을 선포하는 동시에, 둘째로 예수님을 따라서 세상의 죄악에 맞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려는 교회 역시 하느님 섭리에 의탁하는 오랜 준비와 함께 믿음과 의지로 덕행을 쌓은 실천노력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리아는 교회의 원형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죄악의 풍조에 물들어간다 하더라도, 그리고 세상의 역사가 물질을 숭배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더라도 교회는 마리아처럼 성령으로 인한 새 역사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무슨 악에 대해서도 하느님께서 선으로 바꾸지 못하실 일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교회에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이 마리아를 본받아 하느님의 섭리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를 표명해야 합니다. 


사랑에 있어서, 진리에 있어서, 또한 정의와 평화에 있어서 성령께서 시작하시는 새로운 역사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응답으로 구체화됩니다. 삼종기도를 바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이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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