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간 목요일 : 로마 6,19-23; 루카 12,49-53
특별 전교 성월로 지정된 금년 10월도 어느덧 하순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저도 선교라는 주제로 독서와 복음 말씀이 이끄는 데 따라서 강론을 말씀드려왔습니다만, 오늘은 복음이 이 주제에 적중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불은 당연히, 사랑의 불입니다. 하느님의 불입니다. 그래서 선교의 불이기도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로마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인간의 현실과 운명에 대해 계속해서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가 보는 인간의 현실은 ‘육의 나약성’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그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마귀의 종이 되어 버리는 것이며 생명의 기운은 사라지고 죽음의 기운이 덮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이 기막힌 현실과 슬픈 운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수님께 있다고 그는 보았습니다.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육의 나약성 탓으로 자꾸만 죄로 기울어지는 자유를 그분의 모범을 따르는 선택으로 승화시키고 그분께서 보내시는 성령으로 선행을 실천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을 믿는다고 해서 의식을 예수님께 고정시키지 않고 성령을 따르지도 않으면 현실도 운명도 달라질 것이 없지만, 의식과 실천을 통해서 삶을 전환시키면 현실도 운명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은사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육의 나약성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그분은 온갖 터무니없는 모함을 받고 시기중상을 당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 그것이 또한 그분이 받아야 할 세례라고 믿으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세례로 말미암아 그분은 부활하셨고 믿는 이들을 비추시는 빛이시오 이끄시는 등대가 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10월을 특별 전교의 달로 반포한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서 허락된 하느님의 선물을 강요했던 선교의 슬픈 역사, 그리고 복음화보다 식민지화가 자행되었던 불행한 선교 역사 때문입니다.
교황은 백 년 전 베네딕토 15세 교황이 반포한 ‘가장 위대한 임무’라는 교황 교서를 온 세상 신자들이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난 10월 6일 아마존 지역을 위한 주교대의원회의 특별 회의 개막 미사 강론에서 선임 교황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불은 태우지만 태워 없애지는 않습니다. 그 불은 사랑의 불로서 빛과 온기와 생명을 주지만, 세상의 불은 사람들과 문화를 태워 삼킵니다. 얼마나 자주 하느님의 선물이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강요되었는지, 또 얼마나 자주 복음화보다는 식민지화가 자행되었는지! 하느님, 새로운 식민주의 행태들이 불러일으키는 탐욕에서 저희를 지켜주소서!”
우리는 육의 나약성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길 때 참으로 온전한 인간이 되며,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눌 때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은 선교에 담긴 진리입니다. 그러자면 편안하기를 바라거나 자족하기를 바라기보다는 밖으로 향하여 나가야 합니다. 세례받은 우리는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사제로부터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하는 권고를 듣지만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다른 귀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선교가 가장 위대한 임무인 까닭은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이 선물을 그분의 바람대로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줄 때, 하느님의 이름과 영광이 빛나게 되고 그분의 나라가 오시게 되며 우리를 통해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얻는 영원한 생명은 덤으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선교는 가장 위대한 임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을 자유도 가로막혀서 박해를 받던 시대를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믿을 수 있게 된 이 평화스런 시대에 신자들이 늘어나고 성당도 곳곳에 세워져 있으며 성직자와 수도자들도 많아진 지금의 현실은 분명 선교를 위해 주어진 축복입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행위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신앙 선조들에 비해 우리는 박해가 종식되어서 다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그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자유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다른 은총들 즉 건강과 재능과 지식과 기술과 경험을 사랑의 불을 타오르게 하는 데 봉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대의 공동선에 따라서 진리를 전하고 정의를 행하며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은 모두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선교사들입니다.
이 임무야말로 성체성사의 정신과 은총에 따라서 거룩한 변화를 이룩하는 일이며 또한 세상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