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르는 사람들
  • 이기우
  • 등록 2019-12-11 16:44:48

기사수정


대림 제2주간 수요일 : 이사 40,25-31; 마태 11,28-30


황금률에 대해 들어보셨지요? 황금률(黃金律)은 수많은 종교와 도덕, 철학에서 볼 수 있는 원칙의 하나로, ‘다른 사람이 해 주었으면 하는 행위를 하라’는 윤리 원칙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유다교의 근본 가르침으로 간추리신 바도 황금률입니다. 이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인격적으로 상정하고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는 능력, 행위를 한 후의 영향까지를 감안한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 등의 윤리적 요청을 전제로 합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관계적 진리입니다. 


이미 자연에서 이 황금률에 의한 질서가 나타납니다. 자연계의 동식물들은 약육강식의 무법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것 같아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놀라울 정도로 상호의존되어 있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현상을 관찰한 수학자들은 앵무조개의 껍질이라든가 해바라기의 디자인에서도 수학적 황금비율을 찾아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들에도 이 황금비율이 적용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자신의 그림에 이 비율을 적용했습니다. 


계산하기를 좋아하는 수학자들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이 황금비율을 재생산하여 응용할 수 있도록 연구했습니다. 그 비율을 따져보니, 1:1.618 정도가 나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처음 발견한 이 황금비율은 이를 활용하여 황금분할을 할 경우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신용카드, 주민등록증 등이 이를 응용한 사례입니다. 이를 적용하면 오래 바라보아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이 원리를 생활에도 적용하면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를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가 증언하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이자 진리에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지혜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받아들여서 편히 쉬게 해 줄 수 있는 안식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황금률은 신성에서 우러나오는 영성과 인성에서 우러나오는 투신의 조화와 안정입니다. 균형과 순환입니다. 역사상 알려진 성인들은 이 신비로운 이치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하고 자신의 삶에서 추구했던 선구자들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나와 깊은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힘과 기운을 얻어서, 세상에서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처럼 보잘것없는 이웃을 만나면 하느님을 대하듯이 정성을 기울여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가난한 이슬람 사람들 틈에서 더 가난하게 살아갔던 샤를르 드 푸꼬도, 캘커타의 길거리에서 이름 없이 죽어가는 힌두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모시는 정성으로 사도직을 수행했던 데레사도 그러합니다. 켄터키의 봉쇄수도원 안에서 담장을 나오지 않고도 뛰어난 글 솜씨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호흡하며 영성의 향기를 전했던 토마스 머튼도, 아르헨티나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로서 살아가던 체 게바라가 미국의 식민학정에 시달리던 쿠바의 가난한 민중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고 혁명의 와중에서 전투를 앞두고 말씀의 전례를 하고 나서야 총을 들었던 일도 그렇습니다. 그 기운으로, 체 게바라는 총을 들기만 했지 누구 한 사람 쏴 죽이지 않고도 그는 혁명동지들에게 총을 쏴 대는 정부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사회교리 주간의 셋째 날인 오늘, 영성과 투신의 황금률이 적용되어야 할 마당으로 사회의 공동선을 들고자 합니다. 


공동선은 하느님의 최고선을 깨달은 깊은 영성으로 보잘것없는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자기 일처럼 뛰어들 수 있게 하는 사회교리의 주요 원리입니다. 사람 누구에게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듯이 공동선의 혜택을 입을 수 있어야 하고 또 공동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수혜의 권리와 참여의 의무가 모두 하느님의 최고선에서 우러나올 때 사회는 황금분할로 구성된 기학학적 도형처럼 아름답고 안정되게 운영될 수 있습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자연의 동식물들이나 건축가와 화가의 뛰어난 작품에서만 황금비율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기도와 활동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순환될 때나,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고독과 만남이 또 그렇게 이루어지면 우리도 황금비율과 황금분할에 따른 활력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삶이 우리 안에서 이룩되기도 하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요청되는 혁명은 자기 안의 혁명입니다. 홀로 하느님과 만나는 고독을 배우고, 그 자체로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웃과의 관계를 진실하고 아름다운 만남으로 가꾸어가는 혁명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급진적이고 과격해 보일 수 있는 이 자기혁명은 예수님께서 물려주신 삶의 황금질서를 지키는 보수적 고집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 대해서 보수가 되고, 자기에 대해서 진보가 되어야 하는 필요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이나 삶의 모범에 대해서는 한 치도 양보함이 없이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그렇지 못한 자신의 품성과 습관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한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혁명적인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는 까닭도 그래서지요. 당연히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한껏 좋을 때나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때라도 더 좋아질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인 희망으로 진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컨대 공동선은 하느님의 최고선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모든 이에게 필요한 선익의 총합이어서, 그 혜택은 빠짐없이 골고루 모든 이에게 주어져야 하며, 또한 그럴 수 있도록 누구든지 자기가 가진 능력과 기회를 선용해서 그것을 증진시키고 수호하는 데 참여하는 것이 행복의 필수조건입니다. 이 조건을 깨닫고 실천하는 데 필요한 황금비율과 황금분할은 각자가 알아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