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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그리고 사랑의 방정식
  • 이기우
  • 등록 2020-02-03 15:55:27
  • 수정 2020-02-03 16: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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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월요일 (2020.02.03.) : 2사무 15,13-14.30; 16,5-13ㄱ; 마르 5,1-20 



소리는 파동으로 전해지고 거리가 가까우면 명확하게, 멀면 희미하게 들립니다.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입니다. 말은 소리에다가 의미가 더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크기만이 아니라 의미를 표현하는 발음도 중요해서, 발음이 명확할수록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실천력을 담보한 말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말의 의미를 실천하느냐에 의해서 그 울림 즉 파동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합니다. 


또한 그 실천의 내용이 사랑일 때는 말씀의 울림이 배가되지만, 그와는 반대로 죄에 해당될 때는 말씀의 울림이 반감됩니다. 마치 말씀의 효과는 소리의 크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듯이, 죄의 크기에 반비례하고 사랑의 크기에 정비례합니다. 


다윗에게는 그와 그의 왕조가 영원하리라는 말씀이 나탄 예언자를 통해 주어졌지만, 시온의 계약이라고도 부르는 이 말씀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윗의 믿음과 삶 그리고 통치 행위가 사랑으로 이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어렸을 적에 사무엘 예언자를 통해 기름부음을 받고 장차 왕위에 오를 가능성을 약속받았고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물리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워 백성으로부터 신망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을 해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덕행을 쌓았습니다. 거기에 사울왕의 아들 요나탄 왕자의 우정까지 힘입었습니다. 그런데 왕위에 오르고 난 말년에 충직한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쎄바를 취함으로써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의 벌은 그로 인해 태어난 아기가 죽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밧쎄바에게서 태어난 두 번째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가 돌아갈 것을 눈치 챈 맏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왕자의 난이 벌어진 것은 물론이고, 이 후유증이 계속 커져서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난 다음에는 아예 왕국이 두 동강이로 쪼개져버린 것입니다. 죄로 인한 벌이었습니다. 왕의 죄로 인한 벌은 백성 전체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결코 작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결국 다윗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말씀, 즉 시온 계약은 훨씬 더 후대에 다윗의 후손인 요셉에게서 실현되게 되는데, 그 실상은 이스라엘의 어느 누구도 상상도 못 했던 방식과 과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것인데, 그것이 성령으로 인한 잉태와 동정녀 출산입니다. 이제 이렇게 하여 태어나신 예수님에 의해서 다윗에게 주어졌던 말씀, 즉 시온 계약은 이스라엘 왕국이 아니라 그리스도 왕국으로 더 보편화되어 실현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동안에 도처에서 저항의 기운과 마주치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사람들 영혼 안에 들어가 암약하는 악령의 존재였습니다. 악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이나 선행을 실천하게 하는 깨끗한 영이 아니라서 더러운 영이라고도 불리는데, 그냥 악령 자신만 더러운 게 아니고 악령 들린 사람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아주 흉하고 더럽고 비참하게 망가뜨려놓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무덤 속에서 살고 있다고 나오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괴력을 발휘하여 난동을 부리기 때문에 쇠사슬로 묶어두기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어서 아예 공동묘지로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만 해치려 드는 것이 아니고 제 몸도 돌로 치는 등 자해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성을 상실한 비인간이었습니다. 이는 그 자신이 지은 죄와 다른 이들이 그에게 저지른 죄의 종합적인 결과로 주어진 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대대로 전해 받은 기준으로는 물론이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도 인간다운 품위로 살아가야 할 책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들려온 하느님의 말씀도 사랑에 정비례하고 죄에 반비례하여 그 울림의 파동이 동시대인들에게 전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면 가능한 한 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하되 이왕 저질러진 죄는 깨달은 즉시 뉘우쳐서 가볍게 해야 하고 그 벌을 자발적으로 받는 보속을 해야 합니다. 또한 가능한 한 사랑을 실천해야 하되 우리 자신에게서 시작된 그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진정성 있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의 파동이 세상 사람들을 비인간화시키고 있는 여러 악령을 쫓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파동의 크기는 우리가 말씀을 얼마나 명확하게 깨달았는지, 비록 작은 행위라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사랑으로 실천했는지에 비례하고, 우리가 지은 죄에 반비례할 것입니다. 이것이 죄와 벌, 그리고 사랑의 방정식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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