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2020.10.15.) : 에페 1,1-10; 루카 11,47-54
오늘은 10월 15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백 년 전인 16세기 스페인에서 활약했으며 흔히 ‘아빌라의 데레사’로 알려진 성녀는 1622년에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으며 1970년에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박사’라고 불렀지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평신도로서 율법에 관한 지식으로나 사회경제적 지위로나 또는 종교적 영향력으로 볼 때 지도적 위치에 있던 바리사이들에 대한 날선 비판이 이어집니다. 루가 복음사가가 정리했던 여섯 가지 불행선언의 마지막 두 가지 비판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저지른 다섯째 악행은 그들의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듦으로써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반성하지 못하고 되풀이하고 있다는 역사의식 망각의 죄입니다. 오늘날 군국주의로 회귀하지 못해서 안달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연상시키지요. 여섯째 악행은 지식의 열쇠를 지녔으면서도 그것을 치워 버리고서,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린 죄입니다. 여기서 지식이란 율법에 관한 지식으로서 본래는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줌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지혜의 도구인데, 그 자체를 율법을 완벽하게 알 수도 지킬 수도 없었던 민중을 죄인으로 낙인을 찍어서 소외시킴으로써 율법을 권력의 도구로 삼았던 공동선 의식이 결여(缺如)된 무책임의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 선비들을 연상시키지요.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이 거룩한 지식의 열쇠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그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이며,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그분 안에서 선택되었으며 세상에 태어나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세상 사람들에게 섬김으로써 나누어주어야 할 의무이기도 하지요. 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연상시킵니다.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라고 부르는 말은 부와 존경을 겸비한 귀족이 사회에 대해 행해야 할 책임을 말하는데, 이런 세속적인 이치는 종교적으로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귀족들이 자격이 있어서 그러한 부를 차지하고 존경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전적으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분으로 인한 특권인 것처럼, 신앙인들 역시 자격이 있어서 그런 구원의 특권을 받은 것이 아니고 오로지 은총으로 받은 것이므로 다른 이들에게도 섬김으로 그 자격을 입증해야 하는 도덕적 책임이 있는 한편, 다른 이들도 그렇게 섬김의 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라는 사회적 임무가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대데레사 성녀가 ‘교회박사’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여성으로서는 교회역사상 처음으로 받은 까닭도 이 점을 깊이 깨닫고, 실제 수도원 개혁으로 실행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데레사 성녀는 먼저 깊은 관상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로 시작하여 그 다음에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살아가는 삶과 활동으로 나아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기도와 활동으로 하느님과 합일하려는 신비 체험으로 교회를 쇄신하는 길이 세상을 복음화시키라는 하느님의 섭리임을 깨달았습니다.
데레사 성녀가 수녀원에 입회할 당시에 유럽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여서, 왕정이 귀족 세력과의 경쟁관계 속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루터로 인해 교회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갈라진 혼란에다가, 남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정복함으로써 막대한 양의 은이 왕실로 유입되어 흥청망청 사치와 향락이 흘러넘치는 분위기에서 극소수의 선각자들이 개인의 존엄성을 깨우치려던 인간 의식의 맹아기였습니다. 세르반테스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쓴 때도 이 무렵이지요.
그런데도 가톨릭교회 내부의 분위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왕실의 호사스런 타락과 세상의 혼탁함에는 무관심한 채 그저 강화된 왕권에 힘입어 정복된 대륙에서 신자들을 늘리려는 교세 확장이 선교라고 생각하는 안이한 자세를 지니고 있었으며, 따라서 교회 쇄신의 모범이 되어야 할 수도원조차도 귀족화되어 있었습니다. 기부금을 내고 입회한 이들의 영향력이 수도원 분위기를 좌우하는가 하면, 귀족 입회자들은 하녀를 데리고 수도원으로 들어와서는 세속에서 귀족이 누리던 특권을 유지하려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을 개혁하기 전에 기강부터 바로잡기 위해서 데레사 성녀는 1562년에 규칙을 엄격하게 보완한 ‘맨발의 가르멜회’를 창설하였습니다. 한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않고 맨발로 샌들만 신고 다녔던 데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자 기존의 회원들로부터 온갖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1579년에 교황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독립하기까지 18년 동안 데레사 성녀에게는 ‘영혼의 어둔 밤’이 지속되었습니다. 마침내 수녀원장으로 취임하던 날 데레사 성녀는 원장석에 예수님의 상을 모셔 놓고, 이분이 이 새 수녀원의 원장님이시라고 선언함으로써 리더십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 봉쇄수도원의 수도자에 대해서 세상을 멀리하려는 은둔자의 이미지로 바라보지만, 데레사 성녀는 ‘수도적 관상 생활과 사도적 활동의 조화와 일치’를 추구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가 데레사 성녀의 영적 여정과 투쟁에 동반해 준 것도 이 조화와 일치로 복음적 섭리와 교회적 신비를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은총의 조건이었을 것입니다. 마흔 살에 이르러 하느님의 신비를 더욱 깊이 체험할 수 있었던 데레사 성녀는 기도와 활동의 조화와 일치를 통한 영혼의 변화를 기록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후배 수도자들을 위해 기록해 놓은 글들, 즉 영성 훈화라든가 주의 기도를 주해한 ‘완덕의 길’이라든가 또 신비체험에 이르는 인간의식의 일곱 단계를 기록해 놓은 ‘영혼의 성’ 같은 저술을 통해서 데레사 성녀는 당대는 물론 후대의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귀중한 지혜의 열쇠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가르멜산에서 바알의 수백 명 거짓 예언자들과 대결했던 엘리야 예언자의 영성으로 사회악을 대적하여 공동선으로 변화시키고 최고선에로 나아가기 위한 ‘관찰-판단-실천’의 지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가톨릭 사회교리의 방법론이 된 이 지혜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에 의해 전면적으로 수용되고 나서 바오로 6세가 데레사 성녀를 교회박사로 선언한 이유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상으로 베푸신 은총을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그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만 우리는 거저 얻은 그 믿음이라는 특권을 세상에서 봉사라는 책임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이며, 세상이라는 거친 들판을 맨발로 또 낮은 자세로 걸어가면서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섬기는 체험을 통해서 더욱 하느님께 합일할 수 있는 더 큰 은총을 얻을 수 있다는 지식의 열쇠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믿는 이들의 도덕적 책임과 의무가 어디서 오는가 하는 물음의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