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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점치는 상술
  • 이기우
  • 등록 2021-03-11 17: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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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목요일(2021.3.11.) : 예레 7,23-28; 루카 11,14-23



▲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1. 오늘 독서 말씀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예레 7,23)는 계약 정신을 상기시키신 후에, 당신의 말씀을 전할 소명을 받은 예언자들을 그야말로 ‘끊임없이’(예레 7,25)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그 종들을 통해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습니다(예레 7,24).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왜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대적하게 되었을까요? 그 까닭은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궁정을 장악하고서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의 눈을 흐리고 귀를 막았기 때문이고, 그 결과 하느님과의 소통이 가로막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막힌 현실에 대해서 예레미야도 이렇게 한탄한 바가 있습니다: “나는 사마리아 예언자들에게서 고약한 일을 보았다. 그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잘못 이끌었다. 그리하여 아무도 제 악에서 돌아서지 않는다”(예레 23,13-14). 


2. 그런데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예레미야 이후 하느님께서 구세주로 보내신 예수님 당시까지도, 백성의 혼이 하느님의 영과 소통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거짓 예언자들이 계속해서 나타났으므로 이런 영적 단절 상태는 꾸준히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심각하게 도지게 되면 백성 안에서 유난히 혼이 취약한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증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에서는 그게 벙어리와 귀머거리입니다. 귀먹으면 말도 못하기 때문에 청각 장애는 언어 장애를 수반하는 이런 신체적 증상을 가진 사람에게서 예수님께서는 근본 원인을 마귀의 활약으로 진단하시고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셔서 간단히 고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악의에 찬 선동(煽動)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한 일부 군중은 감히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두고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모함하였지만, 사실은 그들이 마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벙어리 겸 귀머거리는 하느님과 영적 소통의 장애를 지니고 있었던 당시 이스라엘의 부마(付魔) 상태를 보여주는 표징이었던 셈이었습니다. 


3. 시대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이 부마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이 현상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닮아가려는 창조질서에 대해 악령이 도전하고 방해하는 간섭현상입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결합되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영육이 온전하게 결합된 상태에서라야 건강한 신체와 원만한 인격과 건전한 지성과 활달한 감성으로 하느님을 닮을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영혼이 건강하려면 사람의 혼(魂)이 하느님의 영(靈)과 온전히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문제는 이 시대 우리 사회의 무속(巫俗)과 역술(易術)에서 나타나는 샤마니즘과 기복신앙 현상입니다. 이 현상도 부마현상과 동일시할 수 있을까요? 우선 사실을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무속신앙 보존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 한국역술인협회 등에 따르면 현재 두 단체에 가입된 회원 수는 각각 30만 명이고 비회원까지 추산하면 무당(巫堂)과 역술인(易術人)은 약 100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무속 및 역술시장의 규모는 최소 4조원에서 최대 6조원대로 보고 있다.”(출처: 뉴스톱, 송영훈 팩트체커, 2020.01.06)는 보도가 있습니다. 이 보도대로라면, 천주교 사제 5천여 명보다는 훨씬 더 많은 셈이어서 무속과 역술에 의지하는 이들의 규모가 5백만 규모의 천주교 신자들보다 훨씬 더 많으리라고 추산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인 천주교 신자들의 생활과 의식 속에서도 무속과 역술의 영향인 샤마니즘의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고 이는 신자들 안에서 발견되는 기복신앙적 경향으로 넉근히 뒷받침되는 사실입니다. 이는 실상 천주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 들어온 모든 종교가 마주치는 일반적 현상입니다. 


5. 그래서 이러한 무속과 역술 현상은 우리의 혼이 하느님의 영과 소통해야 하는 당위성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온 모든 종교가 직면한 이 샤마니즘(Shamanism)과 기복신앙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여느 다른 민족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한민족의 종교적 심성 그 밑바탕에는 이 샤마니즘과 기복신앙과 관련한 종교성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우선 2백여 년 전 이 땅에 천주교 신앙이 들어올 때 조상제사 문제로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아 박해를 받았던 경험을 생각해서라도, 이 현상을 간단히 우상숭배와 미신의 부마현상으로 낙인찍어서는 안 될 줄로 생각합니다. 대홍수와 바벨탑 시대 이후에 아브라함 시대와 겹치는 이 땅의 역대 단군들도 샤만(Shaman), 즉 무당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그러했듯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늘의 뜻을 묻는 종교적 직분을 다른 모든 일에 앞서 중요시했고 이 흔적이 우리 민족의 종교적 심성과 전통 문화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6. 원래는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하늘에 묻고 이를 알아보고자 태동한 태극 사상에서 연원한 역(易)의 이치가 역술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점치는 상술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신년 운수(運數) 보기, 사주(四柱) 풀이, 이름 짓기, 관상(觀相), 궁합(宮合), 택일(擇日), 풍수지리(風水地理) 등으로 풀어 미래를 점쳐주는 역술인(易術人)들이 성업(盛業) 중입니다. 심지어 대학입시를 앞두면 ‘쪽집게 과외’까지도 고액으로 거래됩니다. 


이렇게 궁금한 미래에 대해서 역술에 의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불행한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무속의 힘을 빌리기도 합니다. 꼬이거나 맺힌 개인사를 풀고자 씻김굿(解怨祭)이나 기복제(祈福祭), 위령제(慰靈祭) 등을 전문적으로 드리는 무당(巫堂)들이 그래서 많습니다. 무속과 역술에 대한 이 같은 현실은 윤리적으로 판단하기는 매우 조심스럽지만 다른 나라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현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적어도 혼이 영과 만나고 소통해야 하는 당위적 현실에 있어서 우리 사회의 일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영적 갈증을 보여주는 징표이며, 민족 단위의 사상에 있어서나 개인 차원의 가치관에 있어서도 혼과 영의 결합은 더욱 절박한 과제임을 말해주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7. 2백여 년 전 이 땅에 복음진리를 들여와서 전해준 신앙선조들도 단군 이래 명맥을 이어오던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에 대해 그 종교적 맥락은 물론 미신화의 피해까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서양 신학이 반영된 천주교 교리를 우리 민족의 정서에 맞게 토착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인데, 이 토착화의 노력을 우리도 계승하여 민족 복음화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서양에서 들어왔다는 외래 종교의 인상을 졸업하여 민족 복음화의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불교도 유교도 외래 종교였습니다만 토착화의 노력 덕분에 우리 민족의 사상으로 들어오게 된 교훈에서 배워야 합니다. 


단지 오늘날의 무속과 역술이 미신화된 요소가 있다면 창조 신앙에 입각하되 삼재 및 태극 사상의 본래 취지에 비추어 질서있게 정돈하면 됩니다. 특히 신자들에게 천지신명(天地神明)의 실체를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알려주는 한편 조상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공경의 대상으로 삼게 하는 영적 위계질서를 가르치는 일은 십계명의 제1계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고 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를 매우 엄격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8. 민족 복음화의 중차대한 과업에 있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대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어 예언자들도 보내시고 구세주까지 보내시어 인류 전체가 하느님의 빛을 받게 하셨듯이, 우리 한민족도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비슷한 시기, 즉 대홍수와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 문명의 여명기(黎明期)에 하느님의 빛을 받아 천지인 삼재 사상과 태극 사상으로 홍익인간을 실현하라는 소명을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우 오랜 세월 동안 그 소명과 역사는 외세에 부역하던 세력에 의해 핍박을 받고 가려져 왔고 그래서 중화사관(中華史觀)과 식민사관(植民史觀)의 음험한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이 그늘진 역사에는 구세주 예수님을 믿는 천주교 신자들도 중화사관에 빠진 유림세력에 의해 박해를 받았던 역사도 포함됩니다. 일제는 총칼로 우리 민족을 노예로 삼으면서 한민족의 혼까지 빼앗으려고 식민사관을 강요하며 민족 사상의 원류도 신화(神話)나 미신으로 격하시키고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해방 이후에도 무속과 역술이 천하게 취급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때 조상을 공경하는 제사에 조상을 신으로 간주하고 불러내는 초혼(招魂) 의식 등에 미신적 요소가 있어 교황청에서 금지했다가 호된 박해를 받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교황청에서도 조상공경을 표현하는 제사에서 미신적 요소를 배제하고 오히려 권장하고 있으며, 천주교 신자들은 조상께 공경의 예로써 절을 하며 연도까지 바쳐드리게 된 과정이 좋은 거울이 됩니다. 이런 좋은 선례에 따라서 전통적인 문화와 사상을 미신화시키지 말고 복음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셔서 귀먹은 벙어리를 치유해 주셨듯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제대로 소통시켜주는 예언 활동이 필요합니다. 원래 예언은 하느님의 말씀을 맡아서 전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맡길 예’(預)자를 써서 예언(預言)입니다.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미래의 일을 함부로 점치는 ‘미래 예’(豫)자를 쓰는 예언(豫言)이 아닙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공동선에 있어서 시대의 징표를 통해 나타나는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 예언활동도 필요하지만, 개인사에 있어서도 성숙한 신자들이라면 무속이나 역술에 의지한다든지 기복신앙에 머물지 말고 예언의 은사를 발휘할 필요도 절실합니다. 이 은사는 온전한 영혼, 원만한 인격 그리고 건전한 영성을 갖출 때 주어집니다. 또한 서로 간에 빚어지는 갈등으로 인한 한(恨)과 상처를 보듬어 치유하자면 우리네 인간관계가 좀더 정이 넘치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질 필요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혼이 하느님의 영과 소통하게 됨으로써 부마현상에 빠지지 않고, 우리 교회와 민족이 하느님께 충실하고 인류에게 빛을 비추는 백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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