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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도들처럼 부활하는 자리가 될 것
  • 이기우
  • 등록 2023-04-14 15: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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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2023.4.15.) : 사도 4,13-21; 마르 16,9-15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기쁨을 노래하고 축하하는 팔일 축제 기간 동안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발현하시는 장면이 주로 소개되었고, 독서에서는 발현 체험을 한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 복음을 선포하는 장면이 주로 소개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발현하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이미 가르치셨던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확신시켜주셨고, 이 확신을 얻어 사도가 된 제자들은 예수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르코 복음사가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그리고 열한 제자에게 차례로 나타나신 일들을 보도합니다. 발현을 목격한 이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처음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알아보고 나서는 돌아가셨던 분이 부활하셨다는 데 놀라고 나서야 비로소 기뻐하며 그분의 부활을 믿는 것은 물론 자신도 부활할 수 있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겪은 발현 체험은 스승이 돌아가시기 전에 삼 년 동안 가르치셨던 바를 상기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이 진리라는 확신을 들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었고, 이것이 참된 진리임을 확신하게 된 계기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이었기에 사도가 된 제자들은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가르침이었고, 부활의 복음은 이 새 세상을 열 새로운 인간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인간에 관한 이 복음은 무식하고 평범한 어부 출신 제자들을 담대한 용기와 믿음을 지닌 사도들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불구자도 치유할 수 있을 정도로 기적 능력마저 갖추게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 당돌한 저항자들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기적의 증거가 살아있는데다가 이를 찬탄하는 군중 앞에서 감히 어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사도들은 당당하게 이렇게 반박하고 나왔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19). 이렇게 해서 예수 부활을 믿게 된 제자들이 사도들로 부활했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도들이 보고 들은바 즉 발현체험에 입각한 신앙 증거의 행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땅에 들어온 천주교 역시 새 세상과 새 인간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선 지배층이 주자학을 국교처럼 신봉하던 탓에 억압받던 민족의 종교심성은 겨레가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종교적 희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한 유학 고전에 대해 주자가 달아놓은 해석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는 바람에 당쟁(黨爭)과 사화(史禍)의 계엄령에 숨죽여 살던 양반 선비들도 드디어 조선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돌파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정신적 희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더욱이 양반 선비들에 비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 차별당하던 중인 신분 이하 상민들은 물론 사고 파는 짐승처럼 부림을 당하던 천민 출신들은 천주교 교리에서 하느님 앞에서 만민이 평등하다는 복음을 듣고 감격해 마지않았습니다. 양반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남존여비의 굴레에 매여 있던 여성들도 그 복음적 감격의 정도는 천민들에 비해 전혀 못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워진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으리라는 사회적 희망이 강력하게 불타올랐습니다. 


그리하여 탄압이 더욱 잔학해져 가던 19세기 중반 이후에 천민 출신과 여성들의 입교가 더 늘어났습니다. 박해 속에서 교세가 늘어났던 이 현상은 세계선교역사상 한국에서만 일어났던 기현상(奇現象)입니다. 


이러한 점이 보편 초대교회의 현실과 정확하게 상통하는 한국 초대교회의 현실이었습니다. 이를 아주 대표적으로 대변한 인물이 황일광 시몬(1757~1802)입니다. 그는 천민 출신으로 태어났으나, 타고난 지능과 열렬한 마음과 명랑한 성격을 타고 났습니다. 그는 1792년 무렵 홍산으로 이주하여 살던 중에 권일신의 제자 이존창이 천주교 교리에 해박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배운 후 교우촌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내가 천한 신분임에도 양반 교우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더 있음이 분명하다.”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1800년에는 경기도 광주로 이주하여 여러 교우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특히 ‘주교요지’를 짓고 있던 정약종과는 막역하게 지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황일광은 유학자의 언어에만 익숙하던 정약종에게 민중의 언어와 그 안에 담긴 민족의 종교심성을 그 특유의 뛰어난 지능과 솔직함으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주교요지’는 ‘천주실의’보다 더 뛰어난 교리책”(주문모 신부)이 되어 신유박해 이후 지속된 백년 동안 교우촌의 신자들로 하여금 박해에 대항하는 사상적 방패가 되어 주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보편 초대교회에서나 한국 초대교회에서나 기적 같은 선교활약을 펼친 신앙 선조들은 모두 다 발현 체험을 겪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사도 4,20) 발현체험은 부활 신앙의 기반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성찬으로 이루어지는 미사는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교회의 발현 양식입니다.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 미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도들처럼 부활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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