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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움, 하느님의 일을 행하는 것
  • 이기우
  • 등록 2023-05-16 17: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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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화요일(2023.5.16.) : 사도 16,22-34; 요한 16,5-11


오늘 독서에서 필리피 감옥에 갇힌 바오로와 실라스는 그저 간절하게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만 했을 뿐인데 그 기도를 들으신 성령께서 보내신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간수는 분명히 자신의 손으로 발에 차꼬를 채웠고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는 등 간수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리자, 문책 받을 것이 두려워 칼로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본 바오로는 감방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탈옥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면서 자결하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것도 기적으로 보였지만, 죄수가 간수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도 기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서 저절로 감방 문이 열려버린 일도 기적이지만 탈옥할 수 있었는데도 죄수가 탈옥하지 않고 오히려 간수를 걱정해주는 아주 이례적인 호의를 바오로에게서 본 그 간수는 깍듯한 호칭으로 발 앞에 엎드려 빌면서 간청했습니다: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16,30).


그러자 바오로는 한 술 더 떠서, 본인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권하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오로는,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 16,31) 하고 권고했습니다. 그러자 그 밤중에 간수는 자신의 집으로 사도 일행을 모시고 가서 매질 당해 생긴 상처부터 치료해 준 다음,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필리피 감옥에서 사도 바오로가 겪은 매우 극적인 이 사건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미 가르쳐 주신 교훈대로 이루어 진 선교활동의 정수(精髓)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께 가서 진리의 영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과연 그 영이 진리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그릇되게 생각하는 것을 바로 잡아 주실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 바로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그릇된 생각입니다.


죄란, 세상에 오시어 우리 눈앞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요한 9,41). 이것이 왜 죄인가 하면, 하느님께 가는 길이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필리피의 군중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던 사도 일행을 공격하는 죄를 지었고, 필리피의 행정관은 사도들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피 감옥의 간수들은 그 지시에 따라 사도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었는데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발에 차꼬까지 채우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는 사도들에게 죄를 지은 것이기 이전에 하느님께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행한 죄만을 죄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필리피의 저 군중과 행정관과 간수는 사도 일행에게 대해서만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해서도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미사 때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오시는 성체를 받아모시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죄는 짓지 마십시오.


또 의로움이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하느님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바오로와 실라스도 필리피에서 리디아의 도움을 받아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에 대해 알려주고 믿기를 권고함으로써 의로운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을 행하거나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만 의로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저 필리피 군중과 행정관은 사도 일행이 사람들을 선동해서 무언가 나쁜 일을 꾸미지나 않을까 하고 지레 짐작하여 나름대로 의로운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의로움의 기준은 하느님과 그 나라입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의로운 일을 행할 때마다 하느님의 일을 행한다는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심판이란 하느님의 진리로 말미암아 스스로 밝혀지는 것으로서, 이 진리 편에 서면 비록 박해를 받을지언정 하느님의 나라가 설 수 있지만 이 진리 편에 서지 않거나 박해자의 편에 서면 하느님의 나라가 가로막히거나 지체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빛과 어둠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법정에서나 죽은 후 하느님의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일들만 심판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매 순간 어느 상황에서나 심판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진리의 성령에 의해서 그렇습니다.


이는 마치 지구상의 모든 물체와 생명체가 중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치와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에 빛이 아니면 어둠, 둘 중의 하나에 자리잡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매 순간 우리 마음의 양심에 느껴지는 소리로 심판의 말씀을 식별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러 오셨으며, 하느님의 의로움을 완성하고자 하셨고, 이 세상의 우두머리인 사탄이 부추기는 바람에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죽은 후의 심판을 앞당겨 실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지만 당신이 세상을, 즉 그 세상의 우두머리인 사탄을 이기셨다고 선언하셨고, 당신의 부활로 이를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도 그분의 부활을 믿고 거듭난 삶을 살아가게 되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 죄 대신 은총을 누리고, 의로움의 길을 걷게 되며, 지금 여기서 받는 심판의 상급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와 실라스가 보여준 선교 활동의 정수를 통해서, 이미 부활된 우리의 처지를 깨달으시고, 죄 대신 은총을 누리며, 양심을 통한 심판의 현실을 엄중히 느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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