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월간지 편집장들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크라이나 사태, 교회 쇄신 등 여러 주제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해당 대화 전문은 지난 14일 예수회 월간지 < La Civiltà Cattolica > 에 게재되었다.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의도적으로 유발된 것, 혹은 예방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분쟁이 벌어질 징후가 충분히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분쟁은 선과 악을 명확히 가르는 ‘빨간 두건’ 우화와 같지 않다면서 교황은 “(이번 침공에는)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선과 악이란 것이 없다. 여러 요소가 서로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더욱 전반적인 무언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침공이 일어나기 몇 달 전 “말수가 아주 적으면서도 아주 현명한” 국가원수를 만났던 사실을 언급했다.
해당 국가원수는 미국을 주축으로 한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움직임이 우려된다고 말했고, 교황이 그 이유를 묻자 “나토가 러시아의 문 앞에서 크게 짖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가 제국주의자이기 때문에 외세가 접근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던 일을 언급했다.
교황은 “지난 2월 24일 전쟁이 벌어졌다. 그 국가원수는 벌어지고 있던 일의 징표를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이미 한차례 언급한 바 있다.
우리는 러시아가 고용한 용병 부대들이 수행하는 전쟁이 얼마나 잔혹하고 냉혹하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위험은, 아마도 이 전쟁의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 전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비극은 누군가 유발했거나 예방하지 않은 것이다.
교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에는 군수산업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비치는 듯 “무기 실험과 판매가 주는 이득을 생각해보라. 슬프지만 결국 그것이 핵심”이라고 규탄했다.
선과 악을 명확히 나누지 않았다는 지적에 교황은 “누군가는 내가 ‘친푸틴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친푸틴이 아니다”라며 “그저 이런 복합적인 문제를,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로 치부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게 되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우리와 더욱 가까워 우리 마음에 더 와닿기 때문일 것”이라면서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여러 먼 나라들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나이지리아, 콩고, 미얀마를 언급했다.
교황은 “몇 해 전 나는 인류가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제3차 세계 대전을 체험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 제3차 세계 대전이 이미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며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외에도 지난번 불발되었던 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 총대주교와의 만남이 오는 9월로 예정된 카자흐스탄 순방에서 성사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는 9월 카자흐스탄에서 키릴 총대주교를 만나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사목자로서 그와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교황의 카자흐스탄 순방의 핵심은 세계 종교간대화 회의에 참석하는 것인데, 별도의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푸틴의 측근인 키릴 총대주교와 만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교황은 지난 4일 “우크라이나에 가고 싶다”며 “그저 우크라이나에 갈 적절한 때를 기다려야 하는 일만이 남았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직접 주교황청 러시아 대사관을 찾아가는 등 영적, 외교적 조치들을 통해 러시아 설득에 나선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게도 위로를 전하며 이들에게 인도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아조우스탈 출신의 여성 두 명이 교황청을 찾아 교황에게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편, 교황은 우크라이나 방문뿐만 아니라 ‘푸틴을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러시아 방문에도 긍정적인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 방식을 쇄신해야
교황은 교회 쇄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철지난 기준을 활용하며 영적 쇄신을 이루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는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 방식, 현실을 평가하는 방식을 쇄신해야 한다.”
교황은 이 같이 말하며 “일부 사목자들이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공의회는 트리엔트 공의회라고 한다. 내가 하는 말이 이상한 말이 아니다”라며 꼬집었다. 이는 라틴어 미사, 과거 전례양식을 우월하다 여기는 가톨릭교회 내 일부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 전례형식을 선호하는 것이 분열을 일으키고 이념적 목표를 추구한다고 판단해 이러한 전례를 제한하는 자의교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교황은 이런 ‘복고주의’(restorationsm)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재갈을 물리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이런 ‘복고주의자’들의 수는 상당하며, 이를테면 미국에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는 가톨릭교리에 위배되는 정책을 펼친 이들에게 성체성사를 거부하겠다거나, 라틴어 미사 등 여러 전례, 교리 측면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부하는 미국 가톨릭교회의 보수 고위성직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황은 “문제는 어떤 곳에서는 아직까지도 공의회가 수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어떤 공의회가 뿌리를 내리기까지 백 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뿌리를 내리려면 40년이 더 걸리는 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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