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올해 3월부터 가톨릭프레스는 매월 특집 주제를 선정해 주제와 관련한 내용을 취재하고 분석하여 연재 보도 합니다. 특별히 연재 마지막 편에서는 [마무리와 제안]을 보도 합니다. 특별보도팀 ‘저스티스(Justice)’는 가톨릭프레스만의 살아있는 언어로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될 것을 다짐했습니다. 첫 번째 특집 주제는 [교회의 권력구조와 폭력의 악순환]입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 체제(종교까지도)는 기득권층이 생기고, 그 기득권층은 민중(씨알)의 아픔을 풀어주고 수렴하기보다는 억압한다. 그중에서 종교권력이 가장 심하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의 격동기에서 긍정적인 일들도 많았지만, 종교권력은 정치권력보다 더 오래가고, 한민족의 정서에 밀착하여 우매한 국민을 만들고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종교 자체는 민주주의를 멀리하고 있다.” 함석헌 선생의 말이다.
지난 특집 2호에서 우리는 사제의 환속과 징계, 그리고 죽음에 대해 살폈다. 남북 분단의 특수성(피랍·행방불명)과 정보의 제한성을 고려할 때, 모든 선종 사제를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특정 기간을 전후해 급격히 차이를 보이는 사제 환속과 특정 교구에서 일어나는 젊은 사제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사제가 교회를 떠나고, 30대 청년 사제들의 죽음이 증가하는 상황은 개인보다는 조직에 대한 물음을 낳는다.
교회의 세속화가 진행됐다고 평가받는 2000년대 이후부터 교회가 사제인사권을 ‘보복성 징계’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교회 안팎에서 제기돼왔다. 사목을 위한 인사발령이 아니라 교회 지도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제들을 억압하고 축출하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2014년 9월 4일 오마이뉴스의 ‘사업가로 내몰리는 사제들, 누구 책임인가’ 기사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며 꽃동네 복지예산 문제를 제기했던 작은 예수회 박성구 신부는 2014년 8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교령에 의해 ‘휴직, 곧 정직 제재(교회법 제1333~1335조)의 교정벌’을 받으며 사실상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염 추기경은 박 신부가 교구 조사위원회의 명령에 불응하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불가피하게 정직을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교구장의 ‘사목적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신부는 그동안 조사위원회의 모든 요구에 순명했고 조사위원장인 조규만 주교와의 면담을 기다리는 도중에 염 추기경이 교회법을 내세워 자신을 정직에 처했다며 항변했다.
박 신부가 꽃동네 후원금 비리 의혹을 해결코자 요청했던 청주 교구장 장봉훈 주교와 오웅진 신부의 면담은 거부됐다. 이에 박 신부의 휴직 처분이 작은 예수회 자체의 문제보다는 꽃동네 문제를 들췄기 때문에 내려진 ‘괘씸죄’ 형태의 징벌이라는 해석이 교회 내부에서 제기됐다.
염 추기경은 박 신부에 대한 정직 처분은 공개적으로 밝히면서도 그가 제기한 꽃동네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는 430만 평에 달하는 꽃동네 부지, 사회복지법을 위반하면서도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이유, 85만 명의 후원자로부터 상당한 금액을 후원받고도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불투명한 재정 운영에 대해서도 답하지 않았다.
또한 삼성 비리를 고발하고 촛불 시국미사를 봉헌하는 등 사회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사제단에게 보복성 인사발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200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는 통상적인 인사 관례에서 벗어나 본당 발령 1년 7개월 만에 안식년 처분을 받았다.
‘한겨레’ 2008년 8월 21일 ‘사제단 전종훈 신부 이례적 안식년 발령’ 기사에 따르면 전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 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를 보호한 뒤 정 추기경으로부터 1차 소환을 당했고, 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촛불 시국미사를 연 뒤에도 소환을 받아 해외로 나갈 것을 종용받았으며, 이를 거부하자 안식년 발령이 내려졌다.
전 신부는 “원하지 않는 안식년을 떠나게 됐지만 인사 결정 권한은 교구장님께 있다”며 “사제단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라는 뜻으로 안식년을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사제단 총무를 맡았던 김인국 신부는 “지금까지 교단 지도부가 사제단 소속 신부를 외곽으로 돌리긴 했지만, 현장에서 들어내겠다는 식의 인사를 단행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사제단은 ‘이러한 인사 결정은 유신 때도 없던 일’이라며 교구 인사발령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도대체 ‘교구’라는 조직은 어떤 기준으로 형성되고 관리·운영되고 있는 것일까. 그 거대한 조직 속으로 문을 열고 한번 들어가 보자.
가톨릭 교계제도 “탄탄한 중앙집권체계”
우선 가장 기본이 되는 가톨릭교회의 조직 구조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가톨릭교계제도에서 가장 최상위에는 로마교구의 교구장 주교인 ‘교황’이 있다. 교황은 또한 로마 시 안에 있는 작은 독립국인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기도 하다. 이런 교황의 최측근에서 가톨릭교회의 모든 업무를 관리 담당하는 중앙 기구가 ‘교황청’이다.
‘추기경’은 교황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고위 성직자들로서, 주로 주요 도시를 주교좌로 두고 있는 주교들이나 저명한 신학자 중에서 교황이 직접 서임한다. 교황이 선종하거나 사임할 경우, 추기경단 가운데 80세 이하의 추기경들이 후임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 선거인 콘클라베에 참석한다. 교회법으로는 남자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라도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지만, 1389년 이후로는 오직 추기경들 가운데 한 사람을 선출하고 있다.
개별 국가 및 지역 또는 주요 도시는 교구 또는 대교구로 알려진 개별 교회가 관리한다. 각 교구는 교황으로부터 교구 관할권을 부여받은 ‘주교’가 ‘교구장’이 되어 다스린다. 이처럼 한 교구의 사목을 맡은 주교를 ‘교구장 주교’라 하고, 교구장 주교를 보필하는 주교를 ‘보좌 주교’라고 한다. 이러한 몇 교구가 모여 관구를 이룬다. 관구의 중심 교구를 대교구라 부르며 대교구의 교구장은 대주교이다.
각 교구는 다시 좀 더 작은 신자 공동체인 본당구로 나뉘어, 주교들의 대리자인 ‘사제’들이 직접 신자들을 보살핀다. 각 본당은 한 명 이상의 사제와 부제 또는 평신도 사도직을 두고 있다. 주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주교의 협조자인 사제는 본당에 상주하면서 주교에 의해 정해진 관할 구역의 공동체를 위해 사목해야 하며 성사를 집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결국, 개인 신자가 속한 지역구의 교회는 교구장 주교에 의해 관리, 운영되고 있다. 생각보다 ‘주교’는 개인과 멀리 있지 않고, 그러나 또 생각만큼 (교구나 본당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지도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역교회를 책임지는 교구장 선발 기준과 과정은 공개되지 않는다. 교구 사제들조차 해당 교구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선발된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물론 ‘교구장이 교구 사제들 가운데 보좌주교 후보자를 3명 선택해 교황청 대사관에 청원하면 교황청 대사관은 이 후보자에 대해 나름의 조사과정을 거처 교황청에 보고한다’ 라든지 ‘보좌주교 가운데 한 명을 부교구장으로 임명해달라고 교황청 대사관을 통해 교황청에 청원할 수 있다’는 등의 포괄적인 명시는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조사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조사기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개별교회에서 주교 “막강한 주교의 권한, 어디까지 알고 있나?”
어떤 기준과 과정에 의해 선출되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일단 주교로 서품되고 나면 주교에게 부여되는 권한은 일반 신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막강하다.
우선 「교구장 주교는 자기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를 입법권과 집행권과 사법권으로써 법규범에 따라 통치하는 소임이 있다」(교회법 제391조) 말 그대로 삼권통합이다. 교구의 규모와 사정에 따라 총대리와 교구장 대리를 선출하고 교구장 주교의 사목활동을 보좌하도록 한다. 그러나 「총대리와 교구장 대리는 교구장 주교에 의하여 임의로 임명되고 또 그에 의하여 임의로 해임될 수 있다」(교회법 제477조)
그 밖에도 개별교회의 특성과 사목 방향에 따라 교구는 다양한 기관과 협의체를 통해 교구를 운영한다. 사무처, 재무평의회, 사제평의회, 참사회, 사목평의회 등이 그것이다.
먼저 「교구마다 교구장 주교 본인이나 그의 대리자가 주재하는 재무평의회가 설치돼야 한다. 이 평의회는 주교에 의해 임명되는 적어도 3명의 재무와 국법에 참으로 정통하고 뛰어나게 청렴결백한 그리스도교 신자들로 구성된다」(교회법 제492조) 그러나 재무 담당을 임명하는 권한 역시 주교에게 있다.
또 교구마다 사제평의회를 설치해야 한다. 사제평의회는 교구 사제단을 대표하는 사제들로 구성하며, 교구 직권자의 자문기관이다. 그러나 「이의 소임은 주교에게 맡겨진 하느님 백성의 한 부분의 사목적 선익이 최대한으로 향상되도록 교구 통치에서 법규범에 따라 주교를 보필하는 것」(교회법 제495조)으로 규정하면서 어디까지나 ‘주교 보필’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제평의회를 소집하고 이를 주재하며 또한 거기서 다룰 문제들을 정하거나 위원들의 제안을 채택하는 것은 교구장 주교의 소임이다. 사제평의회는 ‘건의 투표권’만을 가지며 교구장 주교는 중요한 업무에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지만 그들의 동의는 법으로 명시된 경우에만 필요하다. 사제 평의회는 교구장 주교 없이는 결코 행위를 할 수 없고, 규범에 따라 정해진 것들을 공포하는 것도 교구장 주교에게만 속한다. (교회법 제500조)
이때 교구장은 해당 교구 사제평의회 회원 중에서 6~12명을 참사로 임명하여 교구 참사회를 구성한다. 참사회의는 본 교구의 인사위원회를 겸하고 교회법이 규정한 사안에 관하여 교구의 재산 관리 운영에 참여한다. (교회법 제502조)
그러나 참사회 소속 사제들은 참사회가 부여하는 인사권과 재무권외에도 여러 핵심 업무들을 중복으로 수행한다. 자료조사 결과 각 교구 참사회 회원은 참사회와 사제평의회, 사제인사위원회, 재무평의회의 역할을 제외하고도 1명당 평균 3.9개의 업무를 중복해 수행하고 있었다. 구성원 전체가 참사회 업무 이외에 추가로 담당하는 직무는 최소 11개에서 최대 26개이다.
참사회 사제들이 추가로 담당하는 직무에는 성직자의 장례를 담당하는 성직자장의위원회, 성지개발권을 검토·진행하는 성지관리위원, 성당건축을 주관하는 건축위원회, 사제연금기금을 관리 운영하는 사제연금위원회, 본당 구역을 확정하고 분쟁을 조절하는 본당관할구역 조정위원회, 재판관, 학교법인이사회, 가톨릭의료원장 등이다. 즉 교구장이 선발한 참사회 소속 사제들이 교구의 모든 주요사항을 심의·결정하는 것이다.
사제평의회가 사제단을 대표하는 사제들의 회합이라면, 일반 신자들이 포함된 대표회합으로는 사목평의회가 있다. 사목평의회는 교구마다 주교의 권위 아래 교구 내의 사목 활동에 관한 것을 조사하고 심의하며 이에 대한 실천적 결론을 제시하는 소임을 가진다. (교회법 제511조)
그러나 이 사목평외희 역시 ‘건의 투표권’만 가질 뿐 사목평의회를 소집하고 주재하는 것은 교구장 주교에게만 속하고 또 그 평의회에서 다룬 것을 법으로 공포하는 것도 그에게만 속한다. (교회법 제514조)
한국 주교 재임 기간 들여다보기 “대통령도 5년이면 새로 선출하는데...”
교구장 주교는 75세를 만료하면 교황에게 직무의 사퇴를 표명하도록 권고된다. (교회법 제401조 1항) 또한 교구장 주교가 건강 악화나 그 밖의 중대한 이유로 자기 직무를 수행하기에 덜 적합하게 되면, 직무의 사퇴를 표명하도록 간곡히 권고된다. (교회법 제401조 2항)
다른 말로 하면, 75세 이후 본인 스스로 사퇴를 표명하기 전까지는 몇 년이고 교구의 최고 책임자 역할을 계속할 수 있다. (물론 최근에는 범죄행위에 연루돼 부득이하게 파면당한 주교도 있다. 그러나 중대범죄를 확인하고 책임을 묻기까지 현재의 교회 구조는 매우 폐쇄적이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자료에 따르면 1942년 11월 10일 한국인 최초의 주교로 수품된 노기남 대주교부터 2016년 3월까지 사망, 은퇴 등으로 교구장, 보좌주교에서 사임한 한국인 주교들은 모두 30명이다. 평양 6대 대목구장이었던 홍용호 주교는 피랍으로 인한 행방불명 전까지를 임기로 계산했다.
60년대 이전까지 평균 주교 서품 연령은 44.5세였으나 이후부터는 점차 높아졌으며, 전체 평균은 50.2세이다. 주교 서품 당시 나이가 가장 낮은 주교는 홍용호 주교로 1943년 6월에 37세의 나이로 주교가 됐다. 서품 당시 나이가 가장 많았던 주교는 이한택 주교로 2002년 68세에 서울교구 보좌주교가 됐다.
가장 짧은 임기를 보낸 주교는 최덕홍 주교로 1949년부터 1954년까지 5년여 동안 대구교구장으로 재임하다가 암으로 투병 끝에 선종했다. 가장 오랜 임기를 보낸 주교는 정진석 추기경으로 1970년 청주 교구장을 시작해 42년 동안 교구장을 역임했다. 또한 정 추기경은 가장 늦은 나이(81)까지 교구장 직을 맡은 주교이기도 하다.
교구장과 보좌주교 등 사목 전선에서 활동한 주교의 임기를 계산한 결과 한국인 주교들의 평균 임기는 18.5년이다. 그러나 질환·사망이 아닌 주교 자신의 결정에 의한 은퇴 평균은 23.1년이다. 즉, 주교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평균적으로 20년 이상 한 교구의 교구장이나 보좌주교 직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권력 앞에서 작아지는 개인... “어른들께서 결정하실 일이다”
우리는 이번 취재과정에서 사목평회의, 사제평의회, 참사회 등 교구 협의체의 구성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했고 부족한 정보를 취합하기 위해 교구 사무처에 관련 문의전화를 했다. “보도를 위해 각 교구의 조직도를 비교 분석하고 있다, 교구 위원회 및 단체지도 사제 명단공개가 가능한가?” 라고 서울교구 사무처에 문의하자 “내용을 공문으로 보내라, 결재를 올리면 어른들께서 결정하실 일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평신도들에게는 주교의 선출방법이나 과정뿐만 아니라, 교구의 주요 사안들을 결정하는 위원회 담당자가 누구인지조차 공개되지 않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교회의 이러한 불투명한 행정 체계가 사제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얼마 전 마산교구에서는 한 사제가 직무상의 ‘면직처분’을 받고 2015년 7월 10일 인사발령 시행공문이 공개됐다. 그러나 해당 사제의 인사발령을 두고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퍼지자 교구에서는 이례적으로 ‘인사발령에 대한 보충 서한’을 공문으로 내고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공개된 보충 서한에는 해당 사제의 면직처분 과정과 사유를 교회법에 근거해 명시했다.
이 같은 일이 있고 난 뒤 해당 사제는 개인 SNS를 통해 “교구는 나에게 정직 이유가 내연관계라는 말을 한 적이 없고, 면직사유서에도 상주의무 위반과 교회 재산 양도, 교구장에 대한 불순종이란 내용이 없다. 그런데 보충 서한에는 왜 그렇게 썼는지 이해할 수 없고 교구 문서인 보충 서한을 교구장이 아니라 총대리 신부 이름으로 올린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번 보도를 통해 새삼스럽게 과거를 들추고 해당 사제의 인사발령이 적절했는지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인사발령 과정과 그 과정에서 조직이 개인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했다.
적어도 인사발령과정은, 더욱이 그것이 징계에 해당할 때는 본인과 인사에 관여한 참사회 위원들 사이에서 투명하게 진행돼야 하며 그 절차와 징계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최종 결정 사항에 대해 당사자에게 우선하여 알려야 할 것이다. ‘의혹’에 의한 징계과정이 진행된다면 객관적인 사실관계 확인을 통해 사실여부를 가리고 당사자에게는 충분한 ‘소명’과 ‘해명’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전제되었을 때 비로소 징계 당사자는 위원회의 결정에 순명할 수 있고 위원회는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고 부당한 처분을 방지하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교구에서는 교구장과 교구장이 선출한 참사회 소속 사제들에게 교구의 주요사안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집중돼 있고 권한행사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이 교구장 주교에게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은 통제되기 어렵고, 통제되지 않은 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개인 희생자들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교직은 ‘봉사’의 직함입니다. ‘명예’가 아닙니다”
이제민 신부는 저서 「교회-순결한 창녀」에서 “한국교회는 철저히 성직자 중심의 교회이다.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는 공의회의 정신은 이미 빛바랜 사진 속으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순명’이라는 대의(?)로 강요되는 중세의 상명하달식 명령체계와 교구장 주교의 막대한 통치권은 하위 성직자들의 자율성과 함께 신자들의 창의성과 역동성을 가로막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교회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신자들은 교회에 대한 봉사를 자못 성직자에 대한 봉사로 착각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해 나간다. 한국교회는 전근대적인 권위주의체계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며 현실의 제도 안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노출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가톨릭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지는 역사성과 정통성을 강조한다. 어쩌면 이러한 교회의 지침에 따라 ‘순명’은 교회 구성원이 지녀야 할 필수 덕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가 변함에 따라 교회구조 쇄신에 대한 요구는 이제 더는 새롭게 들리지 않는다. 교회는 스스로 처한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사회적 차단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비판적 자극을 수용하는 용기를 통해서 본래의 순수성을 되찾고자 노력해야 한다.
“주교직은 봉사의 직함입니다. 명예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직무는 스승님의 명령에 따라 ‘지배’하기보다 ‘봉사’하는 일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은 가장 작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형제적인 사랑으로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특히 사제와 부제들 말입니다. 어떤 사제가 주교와 대화하고 싶다고 요청했는데 비서를 통해 ‘지금은 할 일이 너무 많아 다음에나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주교의 첫 번째 이웃은 자기 사제입니다. 첫 번째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관련기사보기)
지난 3월 19일,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주교 서품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교들에게 전한 이 말은 마치 한국천주교회 주교들을 향한 것처럼 들린다.
※ 참고문헌
- 「교회-순결한 창녀」, 이제민 신부 저
- 「교회통계연감 2014」, 교황청
- 「교회법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저
-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저
- 「전광진 신부의 교회이야기」, 평화방송
-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저
- 「한국 천주교회 총람」,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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