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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현이동훈] 자비의 희년 막바지에 접어들며
  • 현이동훈
  • 등록 2016-11-07 14: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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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며 2015년 12월 8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자비의 문을 열었다.


2016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희년’이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Misericordes sicut Pater(미세리코르데스 시쿳 파테르 : 아버지처럼 자비로이)를 부르며 자비의 성문을 열었다. 하느님이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자비의 희년, 우리는 자비의 희년을 제대로 살고 있었는지 반성해야겠다.


전 세계 곳곳 유감스럽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희년의 의미를 제대로 살지 못하는 곳이 많다. 필리핀의 경우, 두테르테 정권이 들어서서 범죄율을 낮춘다는 명목으로 형벌이 강화되었다. 얼마 전에는 마약사범 몇 명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살인혐의로 기소된 왕족에게 참수형이 집행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 동안 전 세계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길 바랐지만 여전히 사형은 집행되고 있었다.


난민과 이주민 문제, 중동과 북핵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무자비성은 어찌 보면 잘못된 국제정치질서 때문이다. 부유한 국가들은 식민지배 책임을 회피한 채 자기 국가 안에서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 자본은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와 자국의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박근혜 정권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지금도 무자비하다. 양극화는 여전하고 재벌기업에 의해 벌어지는 폭력도 여전하다. 정권과 한패인 공권력도 여전히 무자비하다.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에게 사과하고 있지 않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뻔뻔한 태도는 대한민국 정부의 무자비함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삼성과 옥시사태에 대해서도 역시 자본과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덮으려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무자비한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 역시 여전하다. 일부 혐오세력에 의한 성적소수자들과 장애인 그리고 폭력 희생자들의 고통도 여전하다. 강남역 사건에서 보여준 여성에 대한 대한민국 사회의 폭력, 구의역 사건에서 보여준 젊은 세대에 대한 폭력은 대한민국 사회의 무자비함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9명은 여전히 진도 앞바다에 있다. 그곳에서 잘못된 인양작업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선체절단 문제인데 이것은 세월호의 진실을 은폐할 수 있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올해 옥시사태로 시끄러웠다. 많은 어린 생명들과 사람들이 죽어갔고 가족들은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영국 다국적 자본 옥시와 보건복지부의 책임 떠넘기기와 은폐, 법적 회피는 자본과 국가가 얼마나 희생자들을 고통으로 내모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삼성도 여전히 백혈병 희생 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삼성 스마트폰 폭발사태는 어찌 보면 희생당한 노동자들의 영혼이 절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여름에 일어난 사드 정국은 대한민국과 미국이 평화에 대해 얼마나 무자비한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한미동맹이란 이유로, 군수자본의 이익을 위한다는 이유로, 북핵문제에 대한 대처를 이유로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사드를 배치한다고 한다. 이는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평화로운 농촌을 전쟁 위기로 시끄럽게 만드는 사드배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희년의 의미를 실천해야 할 가톨릭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은 신앙에 회의가 들 정도였다. 대구대교구에서 일어난 희망원 사건은 사회에서도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129명이 희생되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비리와 폭력은 사회적 약자에게 헌신한다고 알려진 가톨릭교회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희망원 사건은 그 동안 일제와 독재에 부역한 대구대교구를 쇄신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이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대구시민사회는 11월 3일과 4일, 일박이일로 대구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함께 1주교좌 계산성당, 대구대교구청, 대구시청에서 집회와 문화제를 열었다. 계산성당 추모문화제는 저녁미사가 거의 끝마칠 때쯤에 시작되었다. 필자도 문화제에 참가했는데 계산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듯 회피하며 떠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여전히 대구대교구는 그저 말로만 사과했을 뿐 행동으로는 사과하지 않았다.


한국교회의 이런 무자비한 만행에 대해 침묵하는 교황대사는 뭐하고 있었단 말인가. 자비의 희년을 선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오스발도 파딜랴 교황대사의 무책임하고 오만한 태도는 주교라는 자질이 의심스럽다. 그는 백남기 유족,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려 하지 않았을 뿐더러, 경찰을 불러 장애인들을 내쫓아버렸다. 심지어 희망원 희생자들도 외면했다.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서울대 병원에 옮겨졌다. 많은 사람들은 깨어나길 바랐지만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검찰과 경찰은 자신의 죄는 반성도 하지 않을 채 뻔뻔스럽게 부검을 하려고 했다. 백남기 형제의 주치의였던 서울대 백선하 교수는 검찰과 경찰의 편에 서서 부검을 가능하게 하는 사인을 주장했다. 심지어 어느 대학교수란 사람도 부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영안실에 몰래 들어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내가 백남기다!”를 외치며 항의했다. 주교들도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경찰은 두 손을 들었고 순교자 백남기 임마누엘 어르신의 장례는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한 장례미사와 시민사회장으로 무사히 치러졌다. 이제 남은 것은 물대포를 쏜 경찰과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진심어린 사과다.


작년 12월 자비의 해가 선포됨으로써 한국 가톨릭교회도 자비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자비의 문은 형식일 뿐이었다. 한국교회는 마음의 자비의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이다. 여전히 장애인 등 가난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 부유한 사람들과 가까운 주교들과 일부 사제들, 인권감수성이 약한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하다.

 

대구대교구 1주교좌 계산성당의 자비의 문으로 사용되는 옆문 입구는 계단으로 되어 있다. 이 문은 휠체어 장애인들은 오르내릴 수 없고 연세 많은 어르신들에겐 불편한 것이다. 이것을 보고 대구대교구는 장애인들에게 무슨 차별과 폭력을 가하고 있는가 우려스런 생각이 들었다. 그 우려가 결국 자비의 희년에 희망원 사태라는 모습으로 대구대교구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자비의 해를 마치면서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자비를 잊었는가 싶은 생각으로 말이다. 자비의 해는 끝났지만 자비만은 교회에 남아 계속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필진정보]
현이동훈 (안토니오) : 가톨릭 아나키스트로 아나키즘과 해방신학의 조화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과 생태주의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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