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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성지, 기억도 하기 싫다”
  • 최진
  • 등록 2017-06-30 17:46:15
  • 수정 2017-07-03 12: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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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으려고 땅을 알아보던 중 서울 근교에 저렴한 땅이 경매에 나와서 사게 됐다. 땅을 사고 나니 천진암 측에서 다시 내가 산 땅을 사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니던 길에 철문이 놓여졌다. 통행을 막아놓고 땅 가격을 협상하려 했다. 종교가 이런 짓을 한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천진암 성지 성역화 사업의 건축법 위반 문제가 드러난 것은 성지 안에 토지를 구매한 김주석 씨와 천진암 측의 법적 투쟁이 시작되면서부터다. 현재 제기된 건축법 관련 위법 사항들은 김 씨가 담당 기관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14년간 교회와 싸운 사람


▲ 김주석 씨 ⓒ 최진


천주교 사람들은 내가 ‘알박기’를 하려고 성지에 땅을 샀다고 하는데, 나는 그저 전원생활이 가능한 땅을 경매에서 헐값에 산 것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싸게 땅을 산 것이 14년간 수모를 당할 죄인가.


김주석 씨는 지난 2003년 3월 24일 천진암 성지 안에 있는 농지 1,080평을 경매를 통해 3,421만원에 낙찰 받았다. 김 씨는 전원생활을 꿈꾸며 땅을 알아보던 중 경매에서 3차례 유찰돼 가격이 떨어진 밭을 알게 돼 땅을 구입하게 됐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김 씨가 땅을 구매하고 측량을 진행하자, 천진암 측은 김 씨에게 먼저 땅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 씨는 뒤 늦게 주민들로부터 천주교가 땅 주인들을 어떻게든 쫓아낸다는 소문을 듣고 땅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한국천주교회 창립사연구원으로 가는 길에 설치된 철문. 김주석 씨는 천진암 측이 김 씨의 통행을 막기 위해 철문의 위치를 옮겼다고 주장했다. 창립사연구원 입구 쪽에 있던 철문이 오르막길 시작지점까지 이동되면서 김 씨의 통행이 막혔다. ⓒ 최진


다시 땅을 사겠다고 해서 측량도 물리고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주변 시세를 말하자 천진암 측 남자들이 고함을 치면서 나를 땅장사 도둑으로 몰았다. 너무 분해서 땅을 안 팔겠다고 했다.


결국 땅 매입 협상은 결렬됐다. 김주석 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천진암 측이 땅 주인들을 쫓아내는 방식이 따로 있었다. 천주교가 이런 종교라고는 그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협상 결렬 이후, 김 씨는 천진암성지위원회와 14년을 싸우게 됐고, 그 분쟁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천진암 측이 김 씨를 비롯해 땅 주인들을 쫓아내던 방법은 사유지 출입을 제한하는 ‘통행방해’ 조치였다.


남의 땅으로 큰소리치는 천진암


내 땅에 가기 위해 천진암에 들어서면 직원들이 경찰을 불러 나를 연행해 가도록 했다. 땅으로 가는 길에는 철문을 만들었고, 돌아가는 작은 산길은 흙을 쌓아서 막아버렸다. 숱하게 벌금을 물면서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내 땅에 못 가는가’라는 분함이 밀려와서 더 내 땅을 찾았다.


김 씨는 길을 막는 수법으로 자신을 괴롭힌 천진암 측과 싸우기 위해 관련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또, 아직 천진암 안에 남아있는 땅주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사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천주교가 통행금지 방법으로 땅 주인들에게 토지를 기부하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김 씨는 “내가 산 땅의 주인도 몇 번이나 천진암 신부를 찾아가서 눈물까지 흘리며 땅을 사달라고 애원했다고 했다. 하지만 천진암은 길만 막을 뿐, 땅을 사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부하라고만 강요했다. 이런 천진암의 횡포에 당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라고 했다.


▲ 마을주민들이 이용했다는 산길. 김주석 씨는 천진암 측이 성인들의 묘 뒤편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 포크레인을 동원해 길을 망가트렸다고 했다. 현재는 산길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 최진


그는 천진암이 ‘통행방해’ 수법으로 그동안 많은 땅주인들과 사람들을 몰아냈다고 했다. 천진암 약수터 앞에 살던 공 모 씨와 비구니스님들이 모여 살던 영통사 등이 천진암의 ‘통행방해’ 수법으로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산기슭에서 멧돼지가 내려와 무덤을 파헤치니까 천진암은 자기 조상들 무덤 주변에 철망을 쳤다. 그런데 성지 안에 부모님 묘가 있는 사람은 벽돌 하나도 들고 가지 못하게 했다. 부모님 무덤이 파헤쳐지는데 가는 길을 막으니, 자식들은 땅에 대한 세금만 물면서 버텨야 했다. 사람들은 천주교가 자기 조상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종교라고 치를 떨었다.


김 씨가 땅 주인들과 연락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또 있었다. 천진암 측이 마치 자기 땅처럼 사용하고 있는 땅들이 사실은 주인이 따로 있는 사유지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천진암 측이 김 씨의 통행을 막았던 토지도 소유자가 따로 있었다. 


천주교의 통행방해 조치에 화가 나있던 땅 주인들이 김 씨와 합심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천진암 측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던 개인 소유의 땅들을 실질 소유자에게 알렸고, 소유자들은 천진암 측이 했던 방식대로 자신의 땅에 대한 통행방해 조치를 하기 시작했다.


▲ 천진암 성지 입구에서 정하상 성인의 묘소로 향하는 길에 놓인 사유지 출입금지 현수막(좌). 길 중간이 파이프와 그물로 막혀있다. 천진암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 놓인 사유지 출입금지 현수막(우). 김주석 씨는 소송을 통해 사유지를 관통하는 길을 막을 예정이라고 했다. ⓒ 최진


그는 “결국 천진암 측은 자신들이 뿌린 대로 거둔 셈이다. 천주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성지라면 그 땅을 개발하는 과정도 신중해야 했다. 7,80년대 재개발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쫓아내면서 무슨 성스러운 땅이라고 고상한 척을 하는가. 짐승들이 부모님 산소를 파헤치는데도 그것을 가로막는 인륜도 없는 땅이 어떻게 종교의 성스러운 땅이 되겠는가”라고 일갈했다.


사유지뿐 아니라, 국유지도 내 맘대로


사유지를 찾기 위해 지적도를 분석하던 김주석 씨는 천진암 측이 사유지뿐 아니라 국유지까지 무단으로 점거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천이 있어야 할 땅에는 도로가 만들어졌고, 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길이 났던 것이다.


▲ 천진암 성지와 경기도 청소년 야영장 사이에 놓인 철문. 천진암 측이 설치한 철문이지만, 도로 부지와 임야를 침범해 설치돼 있다. ⓒ 최진


김 씨는 “처음에는 지적도와 실제 땅을 측량하면서 발생하는 오차인 줄 알았는데, 오차 범위를 벗어난 것뿐 아니라, 주변 환경 전체를 바꾸고 있었다. ‘지적불부합’이 아니라, 땅 자체를 자기들 멋대로 부수고 만들었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적도를 분석해 국유지 무단점거와 건물 용도변경 등 건축법 위반 사항을 담당 지자체에 신고하기 시작했다. 특히, “새 민주정부가 출범하면서 잘 안 움직이던 정부 기관들이 이제는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법 위에 군림하던 천진암 측이 이제는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진암 성지, 기억도 하기 싫다”


천주교가 무슨 잘못이고 성당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사람이 문제다. 신부라고 사람을 믿은 내 잘못이고 성당을 다닌 내 잘못이다. 이제는 아이들도 컸고 다 지나간 일이다.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싫다.


최근 천진암에 땅을 팔게 된 한 마을주민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A 씨는 천진암 성역화 사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퇴촌면에 살면서 온 가족이 성당을 다녔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사업이 진행되면서 마음이 멀어져 10년 이상 냉담 중이라고 했다.


A 씨는 과거 자신의 땅에서 남편과 함께 새로 집을 짓고 여섯 자녀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천진암 성지개발을 담당하던 B 신부가 찾아와 ‘집과 땅을 다 보상해 줄 테니, 성지개발을 위해 이주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성지개발을 위해 천주교 신자가 희생해야 겠다는 정신으로 A 씨와 그 가족들은 B 신부의 약속을 믿고 차용증이나 계약서 없이 이주제안을 승낙했다. 


하지만 A 씨의 남편이 죽자, 상황이 달라졌다. B 신부는 ‘내가 언제 집까지 보상해준다고 했느냐. 증거를 가져와라’며 토지보상만을 고집했고, 결국 A 씨는 은행 빚을 얻어 새로 집을 지어야 했다. A 씨 가족들은 성역화 사업을 위해 땅과 새집을 내어놓았지만, 돌아온 것은 낯선 이주정착지 한 칸이었다.


B 신부는 남편의 장례미사를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미사에 안 왔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살던 남편은 그렇게 장례미사조차 못 드리고 저 세상으로 갔다. 살던 새집과 땅에서 이주했는데 남은 것은 땅 밖에 없었다. 나와 어린 자식 여섯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 죄인이 됐나 싶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A 씨는 집과 땅이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터 값만 받고 이주할 수 있었겠느냐며 천진암 측이 이주를 시킨 사람들 중 제대로 살 집을 마련한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나중에 자식들하고 산소에 가려는데 천진암 직원들이 차로 길을 막았다. 그래서 ‘내가 내 땅에 가려는데 왜 막느냐, 원래 있던 길을 왜 막느냐’하고 따졌다. 결국 그날 산소를 못가고 내려와야 했다. 정이 떨어져서 산소를 아예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천진암 때문에 땅이 팔리지 않고, 그렇다고 천진암이 땅을 사주지도 않았다. 10년 동안 제발 땅을 사달라고 사정했다. 그런데 김주석 씨한테 땅을 팔겠다고 하니, 천진암 측이 갑자기 그 두 배 가격으로 사겠다고 해서 팔았다”


식당에서 만난 마을주민도 천진암 성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천진암 성지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곳은 약수터로 유명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마을 입구까지 차가 줄서 있었다. 수개월씩 이곳에 머물면서 약수를 마시는 환자들도 있어, 민박도 많았다. 그런데 천주교는 약수터를 보존해주겠다고 우리와 약속한 다음날 시멘트로 약수터를 없앴다. 천진암 성지가 들어오면서 마을은 더 황폐해졌다”고 했다.



▶ 천진암 성지 측의 입장과 광주시 관계자에 대한 이야기가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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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nomem2017-07-14 10:12:46

    천진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불교꺼에요.
    천주교 양심불량.
    지구상에서 없어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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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mem2017-07-08 23:48:51

    타락한 종교의 실상 !!!

    위 기사가 사실이라면

    더 이상 천주교는 종교의 이름으로 혹세무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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