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8일, 충주성심맹아원에서는 열두 살 소녀 의문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5년째 길에서 호소하고 있는 엄마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우희랑 주희 둘이 별거 안 해도 잘 웃어요. 그런 아이들 보면서 저희가 더 웃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우희와 주희는 6개월 만에 세상에 태어난 미숙아 쌍둥이로,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동생 주희는 뇌병변4급, 간질을 앓고 있었다.
주희 가족은 1년에 한두 번 여행을 다녔다. 큰 저금통에 가족들이 함께 돈을 모으면 금세 저금통이 다 차곤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여행을 다니며 아이들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줬다.
2012년 8월에는 바닷가로 여행을 떠났다. 주희는 유난히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를 좋아해서 그때마다 까르르 웃곤 했다. 이 여행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다음에는 더 좋은 곳에 가자고 약속했었다.
처음에 엄마아빠는 사랑만 주면 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가 없어도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임을 깨닫고, 전국의 학교를 수소문한 끝에 충주성심맹아원을 만났다.
우희·주희를 위해 특별히 자리를 마련했다고 연락이 왔다
충주성심맹아원은 ‘천주교청주교구사회복지법인’ 시각장애인 생활시설로, 운영주체는 ‘사랑의씨튼수녀회’다. 이곳에 먼저 입소한 후 입학허락이 나야 충주성모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엄마아빠는 ‘24시간 3교대 근무를 하며 근접시야에서 아이들을 돌본다’는 점과 ‘조그만 상처만 있어도 부모에게 알리는 시스템’이 맘에 들었다. 또 천주교 수녀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더욱 믿음이 갔다.
제 딸 둘이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는 수녀님들밖에 믿을 사람이 없었어요. 그때는 수녀님들을 등산로에서 만나면 신비로워서 그림자도 안 밟았어요.
2011년 10월, 입소 시기는 아니었지만 우희주희를 위해 특별히 자리를 마련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우희주희는 11월 21일 충주성심맹아원에 입소했다. 엄마아빠는 매주 금요일 오후 아이들을 경기도 화성에 있는 집으로 데려와 주말을 함께 지내고 일요일 저녁 다시 맹아원으로 데려다 줬다.
입소 후 4개월이 지날 무렵, 한 교사가 주희를 돌보기 힘들다는 내색을 했다. 입소심사를 모두 거친 후 생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하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이후 원장수녀에게 “아이를 돌보는 게 힘드시면 데려가겠다”고 말하니, 원장수녀는 “주희보다 더 힘든 아이들도 돌봤다”면서 “어머니가 잘못 아신 것 같다”고 설득했다.
그러던 원장수녀는 주희가 사망하기 2주 전에는 갑작스럽게 “부모님이 너무 극성맞다”면서, “자주 오시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2주에 한번만 오라”고 전화를 했다. 그 말에 엄마아빠는 우희주희를 보러 맹아원에 가는 것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주희가 죽었다… 자다가 편히 죽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8일, 이른 아침 엄마아빠는 충주성심맹아원으로부터 날벼락 같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주희가 죽었다’는 전화였다. ‘자다가 편히 죽었다’고 했다. 엄마아빠는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고 딸아이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오후 1시경 건국대학교 충주병원에 도착했다.
이미 병원에 모여 있던 충주성심맹아원 관계자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자다가 편히 죽었다’고만 했다. 장례식장에 제출할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으려고 원무과에 가니 사망진단서가 아닌 검안서가 발급될 것이며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 받기 위해 움직이는데 맹아원 관계자들이 얘기 좀 하자며 아빠를 붙잡았다. 검안서가 발급되는 동안에는 더 많은 관계자들이 말을 걸었고, 몇몇 관계자들은 울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즈음 관할 경찰서 직원이 나타나 말을 걸었고, 신고 받고 출동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알고 오셨느냐 물었더니 답하는 것을 피했다.
이후 발급된 검안서를 확인하자 아이 상태가 이상했다. 분명 자다가 편히 죽었다고 했는데 아이 몸에 상처가 많다고 기재됐다. 게다가 경찰 신고도 안 하고 가족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아이는 이미 안치실에 안치됐고,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를 경찰서 직원이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맹아원 관계자들 말을 의심 없이 믿었던 아빠가 관계자들에게 재차 따져 물으니 죄송하다면서 뒤늦게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주희 시신 확인을 위해 안치실에 들어가니, 먼저 와 있던 형사들은 주희 아빠인 것을 알고는 강제로 끌어냈다. 하도 억울해 서울경찰청에 연락해 물어보니, 경찰 조사 전에 유족이 먼저 시신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의사 소견과 경찰입회하에 안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안치실 직원에게 아이를 보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직원은 곤란해 하더니 조용히 아빠가 아이 시신을 확인하고 상처를 사진 찍을 수 있도록 도왔다.
현장검증은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진행됐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아빠가 뒤따라갔다. 현장에는 폴리스라인조차 설치되지 않았고, 집기류는 정리돼 있었다. 아빠는 진실방 벽에서 핏자국으로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조사해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주희가 사망하던 날 새벽 119에 ‘아이가 실신했다, 심폐소생술 중이다’라고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희가 호흡, 맥박이 없는 상태였고 청색증과 목에 눌린 자국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아이는 외투까지 입혀져 있었고 그 상태로 구급차로 이동하던 중 뭔가 이상해 양말을 벗겨보니 발에 시반이 나타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반은 보통 사망 3~4시간 후에 생긴다.
누구를 위한 경찰인가
수사가 진행될수록 ‘자다가 편히 죽었다’는 말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서 강 모 교사는 잠을 자지 않는 주희를 진실방으로 데려가 의자 위에 무릎 꿇은 상태로 앉혀두고 주희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줬다고 진술했다. 강 교사는 오전 5시 55분에 알람을 맞춰두고 잠이 들었는데, 알람소리에 깨서 진실방에 가보니 주희가 의자 위에 무릎 꿇은 상태에서 의자 팔걸이와 등받이 사이에 목이 끼어 죽어있었다고 말했다.
진술 그대로를 믿는다고 해도, 아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했다면서 의자에 무릎 꿇고 앉아있도록 한 점, 아무리 유연한 사람이라도 취하기 힘든 자세로 사망했다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현장재연 당시에도 의자에 무릎 꿇은 상태에서 의자 팔걸이와 등받이 사이에 목이 낀 상태를 재연할 수 없어서 무릎 꿇고 앉아있기만 했다.
강 교사는 처음 진술할 때 주희를 마지막으로 본 게 12시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저런 당시 상황을 묻던 형사가 다시 교사에게 ‘12시 30분이 맞느냐’고 했고 강 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주희를 마지막으로 본 시간이 점점 늦춰지더니 결국에는 오전 1시 19분경에 본 것이 마지막이라고 기록됐다.
주희 몸에 난 상처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생활지도일지에 주희 상태를 기록하고 조그만 멍 자국에도 연락을 준다는 맹아원에서 그 상처들을 모르겠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엄마아빠가 주희 몸에 남은 상처를 보고 학대, 타살 의혹을 제기했지만 경찰은 ‘충주성심맹아원 직원들이 학대는 없었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다, 증거를 갖고 오면 수사를 시작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던 경찰이 충주성심맹아원 원장수녀가 나타나자,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하며 수녀를 맞이했다. 엄마아빠에게는 욕설을 하고 아이 시신을 보지 못하게 끌어내던 경찰이었다.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하던 검찰마저도…
진실규명을 위해 엄마아빠는 약 4개월 동안 재부검을 요구하며 각 기관에 진정서를 보내고 1인 시위에 나섰다. 이후 이례적으로 검사가 직접 현장에 나와 맨 손으로 주희 시신을 살피더니, ‘학대나 타살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테니 저만 믿고 아이를 보내라’고 했다.
그때 일을 떠올리며 주희 엄마아빠는 “하늘에서 하느님이 내려온 듯 했어요”라고 말했다. 검사 말을 믿고 아이를 화장했다. 그런데 3일 뒤 담당검사는 바뀌었고, 시신이 없어진 그때서야 재부검 승인이 떨어졌다. 억장이 무너졌다. 검사에게 여러 차례 면담 신청을 했지만 모두 엄마아빠를 만나주지 않았다.
아이 시신이 없어서 재부검은 부검 중 찍었던 사진으로 판독했다. 2013년 3월 청주지검은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에게 이를 의뢰, 이윤성 교수는 ‘질식사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사망원인은 지병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 교수는 의견서에서 얼굴 울혈, 장기 울혈 등이 질식사의 일반 소견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감정서에는 ‘기도 안 소량의 거품’, ‘내부 장기 울혈’ 등이 나타났다고 기록, 건국대 충주병원 검안서에도 ‘안면부 울혈 및 우측 경부에 눌린 자국’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질식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소견을 낸 것이다.
이러한 의견에 검찰은 ‘과실로 인한 사망이라고 하기에는 인과 관계가 없고, 담당 교사가 본인이 잠을 잤다고 한 것은 양심선언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엄마아빠가 고소한 원장수녀를 비롯해 4명의 교사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에 엄마아빠는 대전고등검찰에 항고했지만 기각 당했다. 포기하지 않고 대전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했다.
2014년 7월 18일, 대전고법은 ‘피해자를 홀로 남겨둔 채 다른 방으로 가서 잠을 잤던 점’과 ‘상해나 눌린 자국, 울혈 등은 피해자 사망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이는 점’, ‘오로지 피의자 강 모 교사 진술에만 근거한 것으로서 그와 같은 자세가 형성되기 어려워 보이는 점’, ‘이윤성 교수 의견의 전제가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는 점’ 등을 들며 공소를 제기할 것을 명했다.
강 교사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만 인정받아 2년여 만에 재판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피고인 측에서 선임한 거대로펌 변호인들과 싸워야 했고, 피고인 측은 한 번에 되는 증인 신청도 엄마아빠가 하면 ‘불허’로 떨어졌다. 힘겹게 법정에 섰어도 번번이 큰 벽에 가로막혀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법 위에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이건 아닌 거예요. 억울함이 풀릴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더라구요. 힘이 들어요. 부모가 능력이 안 돼서….
▶ 주희의 죽음을 둘러싼 공방과 2년여 만에 이뤄진 재판 이야기는 3편에서 이어집니다.
5년째 길에서 호소하고 있는 주희 엄마아빠는 하나 있던 집을 팔아 전세로 옮겼고 얼마 후 전세금을 빼 월세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오천여 만원의 빚이 남아있습니다.
모바일 일시결제를 통한 이번 기사 후원금은 전액 주희 부모님께 전해집니다.
< 가톨릭프레스 >는 힘없고, 돈없고, 빽없고 그래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오늘도 겁 없이 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