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8일, 충주성심맹아원에서는 열두 살 소녀 의문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5년째 길에서 호소하고 있는 엄마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2012년 11월 8일, 주희가 건국대학교 충주병원으로 이송됐을 당시 사지가 창백하고 안면 청색증이 관찰됐다. 검안서에는 ‘안면부 울혈 및 우측 경부에 눌린 자국’, ‘좌측 골반에 찰과상’이 기재됐으며 사망시간은 오전 6시 4분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감정서에는 ‘기도 안에서 소량의 거품’ ‘내부장기에서 울혈’ 그리고 몸 곳곳에 있는 상처들이 기재됐다.
건국대 충주병원 의무기록을 비롯해 이전 병원 의무기록까지 검토했는데도 불구하고, 국과수는 목에서 눌린 자국을 보나 얼굴과 목에서 특기할 손상을 보지 못했다면서, ‘갑작스런 사망을 설명할 만한 뚜렷한 소견을 보지 못한 바, 변사자의 사인은 불명’이라고 기록했다. 참고사항에는 ‘간질과 관련된 급사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기재했다.
재부검 승인은 아이를 화장한 후에야 떨어졌고, 시신이 없는 관계로 재부검은 사진 판독으로 이뤄졌다. 재부검을 맡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과 법의학연구소 이윤성 교수는 질식사의 일반소견으로 얼굴 울혈, 장기 울혈 등을 말하면서도, ‘부검감정서 기재 내용과 사진을 살피면 그와 같은 질식사의 일반 소견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사망원인이 ‘주희가 앓고 있던 간질 때문일 것’이라고 지목했다. 또한 사망의 과정이 매우 짧았다고 보기 때문에 ‘현장에 누군가 있어서 즉시 병원에 데려다 줬더라도 생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주희 주치의였던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신경계질환 고 모 교수는 발작 시 환자 상태를 발견하고 즉각적인 처치가 있었다면 사망할 확률은 적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외국의 소아청소년 간질환자 대상 대규모 연구결과에 따르면, ‘원인불명의 돌연사’는 매우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주희는 간질 약을 복용하면서 조절이 잘 되는 상태였고, 간질은 전조증상이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에, 당시 교사가 가까운 곳에서 아이를 지켜봤다면 응급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담당 교사는 주희를 의자에 무릎 꿇은 자세로 홀로 앉혀두고 다른 방으로 가서 잠을 잔 것이다. 적어도 담당 교사는 그렇게 진술하고 있다.
억울함이 풀릴 줄 알았는데…
이대로 끝낼 수 없었기에 엄마아빠는 대전고법에 재정신청을 한 끝에 2년여 만에 재판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냉정했다.
피고인 측은 꽃동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등이 법률자문을 구하는 로펌 변호인단을 선임했다. 원장수녀는 “저희가 2013년 3월 7일에 소장을 받았고, 주교님께서 변호사를 선임하여 답변서를 제출한 상태”라고 진술한 바 있다. 당시 대표변호사는 서울에서 충주를 오가며 재판에 참석했다.
재판 과정도 쉽지 않았다. 재판에 참관했던 시민들은 검사가 피의자를 대변하고 있어 피해자 측 검사는 없는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피고인 측의 증인 신청은 받아들여지는데, 엄마아빠가 내는 증인 신청은 ‘불허’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였다.
검사는 구형 내용을 서면으로 제출했고, 피의자에게 무죄를 내려야 한다는 내용으로 작성됐다. 2015년 4월, 1심에서 피고인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엄마아빠는 검사에게 항소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피고인 측에서 항소를 했다. 2심에서는 피고인 측이 또 다른 로펌을 추가로 선임하면서 엄마아빠는 더욱 힘겹게 싸워야 했다.
그 결과, 1심의 유죄 판결을 뒤엎고 ‘강 교사의 업무상 과실이 피해자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입증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이유로 2016년 4월,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났다.
(대한민국 법이) 있는 자의 법이지, 평범한 국민을 지켜주는 법은 절대 아니에요. 명백한 진실 앞에서도 하얀 것을 검다고 하니까 검게 됐잖아요.
무죄가 선고된 후, 엄마아빠는 전국을 돌며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도록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서명은 10만여 명을 넘겼다. 이 덕분인지 상고를 하지 않겠다던 검찰은 2016년 5월 대법원에 상고해, 현재는 대법원에서 쟁점에 관한 재판부 논의 중이다.
주희 몸에 난 상처는… 이유를 모르겠다
6월 말 즈음 어느 날, 맹아원 측은 ‘주희 상태가 안 좋다’는 전화를 했다. 그러면서도 괜찮으니 오지는 말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맹아원을 찾아갔고 당시 주희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너무 놀라 바로 업고 병원에 데려가니 급성폐렴이었다. 일주일 간 입원치료를 받고 난 후, 엄마아빠는 아이를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맹아원에 신뢰를 잃고 더 이상 아이들을 맹아원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원장수녀는 엄마에게 “믿고 다시 보내달라”며 연락을 했다. “왜 부모라는 이름하에 아이에게서 배울 권리를 박탈하느냐”고 강하게 설득하기도 했다.
엄마는 원장수녀의 설득에 마음이 약해져 다시 아이들을 맹아원에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보낸 맹아원에서 주희 사망 2주 전, 갑작스러운 말을 했다. “부모님이 너무 극성맞다”며 “자주 찾아오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2주에 한 번만 오라”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하니 눈치가 보였다. 맹아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한 주를 거르고 2주째 주말을 기다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주희 사망 하루 전에 맹아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주희 골반에 쓸린 상처가 있다, 경미한 상처지만 규정상 말씀드리는 것이다”고 했다.
아빠는 어쩐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어차피 이번주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로 했으니 그냥 지금 바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간다며 엄마아빠를 만류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오전, 엄마아빠는 주희가 자다가 편히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주희가 사망한 후 맹아원 근처 병원을 모두 찾아다니며 혹시 주희의 진료기록이 남았는지 알아봤다. 어렵게 주희가 치료받은 병원을 찾아냈다. 진료기록을 보니, 단순히 쓸린 정도가 아닌 ‘복부에 열린 상처’로 기재돼 있으며 항생제 3일치를 처방 받았다.
‘복부에 열린 상처’로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5일이 지난 후에야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쓸린 상처’라고 말했던 것일까. 조그만 상처가 있어도 부모님에게 바로 연락 하는 시스템에, 24시간 아이들을 보살피는 곳이라면서 주희 몸에 난 상처는 왜 생겼는지 모른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충주성심맹아원은 방문 시 미리 연락을 해야 하고 다른 학부모와 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했다. 1년 동안 맹아원을 방문하면서 다른 학부모를 본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마저도 스쳐지나가면서 본 것이 고작이었다.
우희와 주희가 충주성심맹아원 이전에 다녔던 학교나 현재 우희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학부모가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으며 서로 연락처도 공유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맹아원은 ‘매우 폐쇄적’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돈은 필요 없다, ‘진실규명’이 우선이다
수사가 진행될 당시 원장수녀는 “아빠를 수차례 찾아갔더니 큰 금액을 요구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정작 아빠는 사건 이후 원장수녀를 따로 만난 적이 없었다.
충주성심맹아원 측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다면서 장례를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례식 후 맹아원 측에서는 조의금을 확인하더니 ‘장례비용도 안 되겠다’고 말했다. 장례비용을 조의금으로 충당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어 기가 막혔다. 4개월이 지난 후에야 잘못했다면서 장례식 때 들어온 조의금을 들고 찾아왔다.
장례식 즈음 맹아원 측에서 위로금 이야기를 꺼내 엄마아빠는 화를 내며 ‘진실규명’이 우선이라고 못 박았다. 엄마아빠는 선생님들이 반성문을 써서 장례식 때 낭독한 후 아이를 보낼 때 같이 태워줄 것을 요구했고 맹아원 측에서는 이를 약속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일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원장수녀는 “이 사건으로 담당 선생님이 수면장애, 불안장애로 3주 진단을 받아 휴가를 주었다”며,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아직 담당 교사를 징계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 검찰 조사가 마무리 되면 그 때 결정하기로 했다”고 진술했다. 해당 교사는 충주성심맹아원에서 현재까지도 근무 중이다.
가톨릭프레스 취재진은 충주성심맹아원을 방문해 김주희 양 부모님에게 사과할 뜻이 있는지 물었다. 맹아원 측 관계자는 “사과는 충분히 했지만 그쪽에서 못 받았다고 한다”면서 “지금 저희가 말씀드릴 게 없다”고 말했다. 이후 취재진은 김주희 양 사망 사건 관련 질문을 몇 차례 더 했고 대답 대신 “더 물어보시면 영업방해로 신고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아빠는 “대한민국 법이 ‘평범한 국민을 지켜주는’ 법이 아니라는 가슴 아픈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주희를 강에 뿌려주던 날, 금방 진실이 밝혀질거라는 생각에 ‘진실을 밝히고 곧 오겠다’고 인사했지만 벌써 5년이 지났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직도 주희를 보러가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 떳떳하게 그 강에 갈 수 있을까, 얼마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엄마아빠는 꼭 약속을 지키겠다고 마음을 다 잡는다.
▶ 4편에서는 ‘주희 엄마아빠의 희망’과 길에서 호소하는 긴 시간동안 ‘이들에게 손 내밀었던 시민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5년째 길에서 호소하고 있는 주희 엄마아빠는 하나 있던 집을 팔아 전세로 옮겼고 얼마 후 전세금을 빼 월세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오천여 만원의 빚이 남아있습니다.
모바일 일시결제를 통한 이번 기사 후원금은 전액 주희 부모님께 전해집니다.
< 가톨릭프레스 >는 힘없고, 돈없고, 빽없고 그래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오늘도 겁 없이 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