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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야 믿겠다던 토마스, 과연 불신앙의 표본일까
  • 이기우
  • 등록 2019-07-03 12:38:14
  • 수정 2019-07-03 12: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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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사도 축일 : 에페 2,19-22; 요한 20,24-29



오늘은 성 토마스 사도 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갈릴래아 출신이 많고, 갈릴래아 지방은 비옥했으면서도 바로 그 때문에 로마로부터의 억압과 예루살렘 부재지주들의 착취가 심했던 까닭에 자생적 혁명성을 지녔던 이 지방 출신 제자들은 무력으로라도 로마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고 하던 혁명당원의 기질이 농후했으며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따르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토마스는 그 중에서도 특히 열혈 기질이 다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그가 지리적으로도 머나먼 지방이요 종교적으로도 이질적인 힌두교와 불교의 고장인 인도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이슬람 세력이 중근동과 소아시아 지방까지 세력을 넓혀 차지하게 되자 아시아로부터 유럽으로 물자를 교역하던 실크로드가 막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수백 년 동안 탈환해 보려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15세기에 포르투갈 사람들은 먼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항해술을 연구하고 큰 배를 연구하여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까지 가는 항로를 개척했습니다. 그들이 인도 남부 고아에 도착했을 때 이미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인도 사람들을 발견했는데, 그들은 이미 천오백 년 전에 토마스 사도가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다고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토마스 사도는 보고서야 믿을 수 있었던 불신앙의 표본으로 알려지고 있어서 바로 잡고자 합니다. 


이러한 불신앙의 이미지는 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서야 삼 년 동안이나 함께 지내며 가르치셨고, 또 족집게 과외라도 하듯이 세 번씩이나 수난과 부활을 미리 예고해 주셨으니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부활하실 것을 토마스를 비롯한 제자들이 보지 않고도 믿기를 바라셨던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진복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론입니다. 믿는 이들 모두가 신앙생활의 최종 목표로 할 수 있는 결론이라는 뜻입니다. 


목표와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로서는 토마스 사도가 보고서야 믿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제자들의 부활신앙이 맹목적이지 않았음을 보증해주는 사례를 얻었습니다. 어찌보면 토마스의 신앙은 확인하고서야 믿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에 합리적입니다. 확인하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말은 확인을 할 수 있으면 믿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모든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은 토마스 앞에서 억지 주장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을 체험한 후 역시 사도로 부활한 듯한 토마스의 선교와 순교생애를 보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채점기준으로는 만점이 아니었을지언정, 확인과정을 거쳐서 믿고자 했던 토마스가 낙제생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 ⓒ 가톨릭프레스 자료사진


부활은 소생이나 환생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거룩한 변화.


세상의 사람에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매사에 자기 이익을 추구하던 이기주의자에서 이익이 없어도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리스도의 몸으로, 욕심을 따르던 속물에서 성령을 따르는 새 사람으로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 부활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그리스도 신앙의 기반이자 핵심인 것이요, 신앙인들이 매일 매순간 호흡하는 성령의 공기와도 같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부활 덕분에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믿고 산다는 평정심에서 살아갈 수 있고, 부활 덕분에 전례와 미사에서마다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것이며, 부활 덕분에 일상의 생활과 세상에서의 전투와도 같은 활동을 성령의 이끄심에 이끌려 함으로써 세상을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지 않고도 믿을 목표를 가지고 부활을 믿고 있는 기존의 신앙인들은 토마스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 부활을 선포하면서 자기 일생을 선교에 바침은 물론 목숨까지 바쳤다는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부활을 믿을 이유는 충분합니다. 이렇게 기존의 신앙인들이 부활에 관한 신앙적 확신을 굳게 하며 살아갈 때 자신의 삶에서도 거룩한 변화는 보이지 않게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되돌아올 수 없는 정도로 꾸준히 이룩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기존의 신앙인들이 부활 신앙에 입각하여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고 확인한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이 믿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거룩한 변화를 보면서 그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게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믿는 이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께서도 이런 방향의 변화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활신앙을 일깨우려 노심초사하셨고, 그래서 절친했던 벗 라자로가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은 후에도 일부러 며칠을 기다리셨다가 죽은 후에 가셔서 소생시키셨습니다. 이 때문에 파스카 축제에 참가하러 예루살렘에 모였던 군중에게 그분에 관한 명성이 급속도로 퍼져서 사실은 신변이 위험할 지경이 되었을 때,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용감하게 나섰던 유일한 제자가 토마스였습니다. 토마스의 합리적 부활 신앙은 이런 인간적 의리의 산물이기도 한 것입니다.


거룩한 변화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 나중에 가서는 굳이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원숙한 부활신앙도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리고 대부분의 신앙인들을 위해서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예수님과의 관계를 지키려는 의리, 확인되는 변화는 과감히 인정하는 합리성이 원숙한 부활신앙을 위해서도 먼저 필요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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