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주교 서명이 진실보다 우선인가”
  • 최진
  • 등록 2017-11-27 13:01:57
  • 수정 2017-11-28 13:05:13

기사수정


▶ 1편 보기 / 2편 보기



▲ 미리내 성지 103위 시성 기념 성당(좌)과 대건 기도원 성당(좌). 기도원 성당은 한때 미사가 집전됐던 곳이지만 현재는 건물 노후로 방치되고 있다. ⓒ 최진


천주교 수원교구 김남수 주교가 대건 기도원을 상대로 벌인 명도소송에서 패소하고 최덕기 주교가 벌인 건축법 관련 소송도 패소하면서 교구장 주교가 평신도를 상대로 벌인 소송 모두가 무고로 끝났다. 


이후 수원교구는 2000년 3월 교구 고문변호사의 이름으로 ‘(가칭)대건 수도원 문제의 올바른 이해와 수원교구의 입장’이라는 출판물을 작성해 교구 내 각 본당에 배포하면서 교구 측 주장을 신자들에게 알렸다.


고문변호사가 신자들에게 교구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입장문에 담긴 내용에서 사실왜곡과 거짓으로 주 막달레나와 대건 기도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계속됐다. 결국, 수원교구의 태도를 보다 못한 유현석 변호사가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섰다. 


인권 변호사가 나서 ‘주교님 결단’ 촉구했지만


▲ 고 유현석 변호사 (사진출처=평화방송)


유현석 변호사는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회장과 천주교인권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고문 등을 역임하며 교회 안팎에서 인권과 민주화 발전을 위해 헌신한 한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다.


앞서 유 변호사는 1998년 11월 교구장 최덕기 주교에게 대건 기도원 관련 분쟁 해결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었다. 서한은 교구가 30년간 끌어온 대건 기도원과의 분쟁을 최 주교가 교구장으로서 책임지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최 주교는 이를 외면했다.


유 변호사는 2001년 11월 20일 제일합동법률사무소 이름으로 2차 서한을 교구청에 보냈다. 그는 미리내 분쟁에 대한 내용을 조사·정리해 수원교구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법리적으로 지적했다. 특히, 교구의 입장문이 기도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가 있으므로 성역화 사업 불법 문제와 더불어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짚었다.


유 변호사는 먼저 미리내 성지 부동산 8,500여 평에 대한 명의등기이전이 매매를 원인으로 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교회에서 관행처럼 이어져 온 수도회 설립 과정일 뿐, 교구가 땅을 매입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교구는 등기부상 매매를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됐다고 하지만, 교구는 이를 매수한 일이 없다. 매수했다면 매매계약서와 영수증을 제시해라. 법인이 부동산을 매수하는데 매매계약서가 없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1972년 작성된 합의문에서 ‘헌납’이라고 적힌 증여 내용도 무조건적인 증여가 아니라, 조건부·부담부 증여기 때문에 합의 사항이 지켜지지 않거나 증여자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법적으로 증여 자체를 취소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렸다.


거짓·왜곡된 교구 입장문


또한, 입장문에서 “주 막달레나가 ‘주부로서 가정을 떠나 은수 생활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주변에서 말렸다’는 내용은 기재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간 주부’로 인식하게 해 돌아간 이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주 막달레나는 자궁암에 걸려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한 상황이었는데 기도를 통해 병이 완치됐고, 이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겨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 후 은수자 생활을 시작했다. 가족을 비롯해 주변인들이 이러한 사정을 알고 주 막달레나의 은수생활을 격려했는데, “도대체 어떤 주변인이 주 막달레나의 은수 생활을 말렸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 주금순 막달레나


유 변호사는 ‘교구에서 채무만 갚아준다면 모든 부동산을 교구에 바치겠다고 교구청 신부에게 밝혔다’는 내용도 거짓이라고 했다. 윤공희 주교가 주 막달레나에게 수도회 설립과 관련해 ‘도와줄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 60만 원을 지원해줬을 뿐, 교구가 나서서 채무를 청산해준 일이 없다고 했다. 주 막달레나가 교구청 신부에게 채무해결을 호소한 적도 없고, 교구가 채무상환을 한 적은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수원교구는 1972년 12월 부동산매매계약을 채무상환으로 갈음하기로 대건회와 계약을 맺고 마을 채권자 18명에게 부채를 갚아서 영수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법리적으로도 맞지 않았고 명도소송 당시 교구는 매매계약서와 대금을 지불했다는 영수증을 법원에 제출하지도 못했다. 


또한 미리내 수도회들의 설립자 정행만 신부가 신자들을 부추겨 기도원에 무단 침입하게 만들고 기도원 짐을 빼라고 사주했다가 경찰이 출동해 신자들을 연행했던 일을 ‘이사하기로 합의했던 것을 주 막달레나가 하루 만에 번복하고 다시 기도원으로 들어왔다’로 각색한 것은 명예훼손이라고 꼬집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풍삼 대건 기도원장은 “사람들이 갑자기 기도원에 몰려와 마음대로 기도원 짐을 밖으로 끌어냈다. 모친은 놀라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경찰이 이들을 연행해 조사했고 이후 경찰은 ‘정행만 신부라는 사람의 지시로 기도원에 침입했다고 사람들이 진술했다. 신부를 고발할 것이냐’라고 물었다. 하지만 모친이 성직자를 고발하는 것에 반대해서 그냥 넘어갔다”고 말했다.  


▲ 김풍삼 씨 ⓒ 최진


수원교구와 대건 기도원 사이의 해묵은 분쟁을 해결하는 것은 교구를 위해서나 기도원을 위해서나 좋은 일이다. 주교님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미리내 성지 분쟁은) 앞으로 교회 역사에 불미스러운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던 유현석 변호사는 대건 기도원과 교회의 앞날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법률가 지적에 태도 바꾸는 듯 했지만


입장문으로 사태를 정리하려했던 수원교구는 유 변호사의 일침에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미리내 분쟁이 법리적으로 교구에게 불리할 뿐 아니라, 민형사상 문제로 처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최 주교는 교구 총대리 신부와 관리국장 신부를 파견해 자세한 세부 조사에 들어갔다.


이들은 72년 당시 교구청에서 재정을 담당했던 신부를 비롯해 당시 관련 성직자들을 만나 사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매매관련 문서와 증거가 있다던 교구청 관계자들은 합의 관계자들을 만나 사실을 확인하면서 태도가 변했다. 결국, 교구는 윤 주교와 합의됐던 수도원 육성을 지원하겠다며 2차 합의서를 작성하자고 제안했다.


2002년 12월 11일 수원교구청 총대리 집무실에서 첫 토의가 이뤄졌다. 이후 2003년 10월 24일 총대리 이용훈 주교의 이름으로 ‘(가칭) 대건 기도원을 교구립 수도회로 육성하기 위한 방안 검토 요청’ 공문을 대건 기도원에 보내며, 영적 지도신부 임명을 위해 3명의 후보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이후 고건선 신부가 대건 기도원 지도신부로 임명됐고, 고 신부는 2007년 8월 선종 전까지 대건 기도원 지도신부를 맡았다. 2004년 2월 11일 국장신부들이 모여 미리내 사태 해결을 위한 국장회의를 했고, 이후 김풍삼 원장에게 결과를 알리며 과거청산과 수도회 육성 방향을 논의했다.


국장회의에서 과거청산 내용으로는 ‘대건 기도원이 주장하는 8,500평을 원하는 대로 명의이전 시켜주고, 땅을 팔 경우엔 교구에 팔아 달라고 할 것’으로 정리됐다. 또한, 수도회 육성에 대해서는 ‘대건 수도회 설립을 위해 2억 원을 지원할 것’, ‘기도원과 교구와의 소통은 지도신부로 일원화할 것’, ‘수도회로 인준되면 미리내 땅 8,500평을 돌려줄 것’ 등이다.


▲ (자료제공=김풍삼)


2004년 3월 24일에는 총대리 이용훈 주교와 지도신부인 고건선 신부, 그리고 김풍삼 원장이 협의해 합의서 초본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최덕기 주교가 합의서 일부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이를 보완·수정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2004년 7월 1일 전 총대리 신부와 사무처장 신부, 관리국장 신부, 지도신부, 그리고 김풍삼 원장이 미리내 분쟁 해결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한다. 앞서 3월에 작성된 합의서와 내용은 비슷하지만 서명에서 총대리 이용훈 주교 이름이 빠졌다.



새 합의서는 총 8개의 약속이 들어있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교구는 윤공희 대주교의 뜻에 따라 대건 기도원을 교구립 수도회가 되는 것을 돕는다.

② 교구는 대건 기도원과의 과거청산과 수도회 설립 지원의 일환으로 2억 원을 대건 기도원에 준다. 

③ 수원교구장은 대건 기도원이 성좌의 인준을 받아 교구립 수도회가 될 때까지 교구 내 후원회 활동과 은인의 도움을 허락한다.

④ 대건 기도원이 8,500여 평 토지를 매각할 경우 수원교구로 매각해야 한다. 

⑤ 교구가 입장을 바꾸는 이유는 미리내 성지를 지키려는 것이고 기도원을 돕겠다는 베려와 의지 표명이다.

⑥ 교구와 대건 기도원이 협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 공동체가 소멸할 경우 기도원(수도회) 재산은 교구로 귀속된다.

⑦ 대건 기도원이 성좌로부터 수도회로 인준을 받게 되면 교구 명의로 된 대건 기도원 소유의 땅을 (가칭)미리내 성 김대건 선교봉사회 재산으로 이전한다.

⑧ 육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지도신부와 상의해 해결한다.


이처럼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던 미리내 분쟁은 그러나 2017년 11월 현재까지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다. 유현석 변호사가 2004년 5월 패혈증으로 갑자기 별세한 후 교구가 또다시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교구장 서명 없으니, 공식 합의서 아니다”



유 변호사의 별세 후 교구 측은 합의서에 대해 주교님 서명이 없으므로 교구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며 합의내용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총대리와 사무처장, 관리국장 신부가 서명을 했어도 최종적으로는 교구장의 서명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미리내 분쟁 때문에 최덕기 주교를 교구청에서 만났는데, 그때 최 주교가 ‘나는 미리내 일을 자세히 모르니, 총대리와 이야기해라. 총대리가 결정한 것이 내 결정과 다름없고 그 권한을 내가 일임했다’고 했다. 그래서 총대리 신부와 이야기했고 합의서가 작성됐는데 이제는 주교 서명이 없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한 “2차 합의서가 작성될 당시 최 주교는 관련 내용을 모두 보고 받았고, 기도원에 불리한 조항(6번)을 자신이 직접 명령하기도 했다”며 “그런데도 자신은 이번 합의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행동한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주교 서명이 없어서 합의서가 무효라고 한다면 1972년 합의서도 주교 서명이 없기 때문에 증여 자체가 무효라고 했다. 또한 교구의 논리대로 주교 서명이 없는 모든 공문이 무효라고 한다면 이는 수원교구가 교회법을 거스르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엉터리 영수증을 가지고 채무를 해결해 줬다며 매매계약이라 주장했던 교구청 신부들이 사실을 확인하고는 새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런데도 교구장 서명이 없다며 이를 외면한다는 것은 교구장 서명이 진실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인가”라며 “교회법이든 사회법이든 수원교구는 사기행각을 저질렀다는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수도회법과 관련해 자문을 청했던 교구 관계자는 “2004년 합의서에서 ‘기도원이 이 땅을 팔 때는 수원교구에 판다’라고 돼있다. 이 내용만 봐도 부동산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하다”며 “합의서에 서명한 것이 그냥 교구 신부도 아니고 교구장의 권한을 위임받은 교구청 신부들이다. 그런데도 ‘교구장 서명이 없으니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수원교구가 마치 원칙처럼 주장하는 것은 전혀 교회법상 통용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범죄를 저지른 사회기관에서 책임을 피해보려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 변호사 사망 후 수원교구가 너무 노골적으로 태도를 바꿨다며 ‘적어도 교회행정에는 자존심이 있는데, 수원교구는 그것이 결여됐다’고 일갈했다.



▶ 4편에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리내 성지 분쟁과 이를 통해 드러난 교회 권력 구조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