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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르슈 공동체 창립자 장 바니에, 향년 90세로 별세 -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살기’ 실천한 철학자
  • 끌로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5-09 14:51:43
  • 수정 2019-05-09 14: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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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바니에 (사진출처=L`Arche Internationale)


장애를 겪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해온 국제 공동체 라르슈(L’Arche, 노아의 방주를 뜻함 - 역자주) 창립자이자 가톨릭 철학자 장 바니에(Jean Vanier)가 지난 7일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연민과 사랑은 바니에 삶의 동력이었으며 그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동안 장애를 겪는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장 바니에의 행적과 라르슈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바니에와 라르슈 공동체는 지적장애를 비롯한 여러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 폐쇄적인 병동의 격리수용에서 벗어나 사회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모토로 운동을 전개해왔다. 

 

바니에의 별세 소식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알렉산드로 지소티 교황청 임시 공보실장을 통해 “장 바니에와 라르슈 공동체 전체를 위해 기도한다”고 전했다. 


교황은 8일, 일반 알현 강론 때 프랑스 신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장 바니에는 교회의 위인”이라며 “가장 가난한 이들, 가장 버림받은 이들,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을 위해 일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가톨릭 주교회의 역시 “우리 중에 가장 약한 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몸소 증언한 장 바니에에게 감사를 표한다”며 “연민과 사랑은 바니에 삶의 동력이었으며 그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었다”고 메시지를 발표했다. 

 

장 바니에(Jean Vanier), 해군장교에서 철학자로 그리고 다시 인권운동가로

 

1928년 스위스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바니에는 캐나다 군인장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열세 살이었던 1942년 가족의 동의를 얻어 영국 다트머스 군사학교에서 해군 생활을 시작했다. 세계 2차 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4년 간 영국 해군으로 근무하며 독일 부헨발트, 다하우, 베르겐-벨젠 및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의 귀환을 도우며 “상처 입은 인류”를 보았다고 표현했듯이 세계 2차 대전의 경험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1948년에는 캐나다 해군 항공모함 장교로 취임했는데,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군대는 나약함이 배제되어야 하는 세상이었고, 언제나 효율적이고 승진해야하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1950년 스물두 살이 된 바니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라는 사랑의 초대”를 받았다며 군생활을 정리하고 공부를 시작해 1962년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박사 논문을 발표한다.  

 

이후 바니에는 토론토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이 때 당시의 경험을 “(군대에 이어) 또 다시 나약함과 무지, 무능은 배제의 대상이 되는 효율성의 세상”을 경험했다고 회고한다.  

 

바니에는 이렇게 사회가 효율적이지 못하고, 무능력하다고 바라보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폐쇄된 병동과 시설을 벗어나 ‘함께 살기’

 

▲ (사진출처=L`Arche Internationale)


나약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시는 예수를 바로 그곳에서 만나고자 한다.


바니에는 교수 생활 이후 사회적 약자, 특히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과 함께 지내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바니에가 특별히 지적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는 1964년 프랑스 북부 트로슬리-브뢰이(Trosly-Breuil)에 위치한 정신병원을 방문했던 일이다. 

 

지적장애를 부끄럽게 여기던 시절, 바니에는 이들이 병동에 갇혀서 사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이후 바니에는 부모가 죽거나 돌볼 사람이 없어 호스피스에 수용된 라파엘 시미(Raphaël Simi)와 필리프 쇠(Phillippe Seux)와 함께 근방에 집을 구해 함께 살기 시작했다. 바니에는 이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았고, 이는 라르슈 공동체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그는 이 경험에 대해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교육법이나 교육 기술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나의 태도였다. 이야기를 듣는 방식, 이들을 존중과 사랑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움과, 자신들이 소중하다는 것, 자신들의 삶에도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라르슈 공동체에도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2014년, 장 바니에의 영적 인도자가 되어주었던 토마 필리프(Thomas Philippe) 도미니코회 수사신부가 라르슈 공동체 장애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당시 공동체 지도담당 피에르 도르넬라(Pierre d’Ornellas) 주교가 지시한 조사 결과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바니에는 2015년 이 사건에 대해 “몇 년 전에 몇 가지 사실을 전달받은 바 있다”면서도 “그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라르슈 공동체에 대한 필리프 신부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6년 말에는 자신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빨리 깨닫지 못했다”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인종·종교·성별·나이 등 조건을 따지지 않는 라르슈 공동체

 

이렇게 만들어진 라르슈 공동체는 인종, 종교, 성별, 나이 등 모든 조건을 불문하고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한 공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조성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40개국 154개의 공동체에 약 10,000여 명의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특히 라르슈 공동체는 여러 문화의 교류점으로도 여겨지는데, 이는 라르슈 공동체에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이 자국 공동체뿐만 아니라 타국에 위치한 공동체에도 지원하여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라쉬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라르슈 공동체가 구성되어 있으며, 매월 둘째 주 토요일마다 서울 예수회센터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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